다들 하나쯤 가지고 있잖아요
예전에 쓴 글에서 엄마가 크게 아픈 후에 정리를 시작하면서 처분한 물건들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내 사이클. 계절에 상관없이 적당한 운동량을 유지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 드린 거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사이클 페달을 굴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이클은 비록 운동 기구로서의 쓰임을 다하지 못했지만, 우리 엄마는 다른 용도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사이클 왼쪽 손잡이에는 엄마가 외출할 때 자주 메고 다니는 가방이 걸려 있고, 오른쪽 손잡이는 모자 두어 개로 덮여 있다. 안장 위에는 몇 벌의 옷이 겹쳐져 축 늘어져 있다. 한때 엄마의 사이클은 이런 모습으로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거실 한쪽을 위풍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안방 문을 열면 침대가 보이지 않게 세워둔 파티션이 하나 있는데, 거기엔 늘 아침에 벗어둔 잠옷, 목도리 같은 것들이 걸려있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집에서 제일 비싼 옷걸이는 안마 의자다. 아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패딩을 벗어 거실에 있는 안마 의자에 툭 던져둔다.
"아들아, 잠바 옷걸이에 걸어 놔라."
"10분 후에 학원 가요. 어차피 다시 입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학원에 다녀와서 다시 나갈 일이 없는데도 아이는 또다시 제 옷을 안마 의자에 벗어둔다는 거다. 옷 한 벌이 자리를 잡으면 그 위로 나의 외투와 남편의 점퍼가 의기투합하듯 쌓이는 건 시간문제다. 겨우내 우리 집 안마 의자는 나의 뭉친 근육을 한 번도 풀어주지 못하고 패딩 무덤 터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정리도 결국 습관이다. 물건에 제자리를 지정하면 여기저기에 흩어지지 않는다. 잠옷과 외투는 옷장에, 목도리는 방한 용품을 모아둔 상자에 넣으면 된다. 사이클은 운동할 때 올라타고, 안마 의자는 피로를 풀 때 누우면 된다. 이 단순하고 당연한 행위가 몸에 붙지 않으면 옷가지는 제 갈 곳을 잃고, 기구들은 제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 옷과 기구의 만남은 정리에 있어서 최악의 콜라보다.
1인 가구가 아니라면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단정한 집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함께 지내는 공간인데 늘어놓는 사람과 수습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만 애쓰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가족 구성원들이 누구 한 명을 돕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각자 1인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저녁에 가족회의를 열어 정리 기준을 함께 만들어야겠다. 각자의 소중한 소유물이 엉뚱한 장소에 유기되는 일 없도록 물건이 안락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찾아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