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도 좋지만 명품 처분은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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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볼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그 아무리 명품이라도 내 인생에서 정리해야겠어.'
그때 우연히 소유물을 개인 간 거래로 쉽게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당근마켓 초창기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물건을 대체 얼마에 내놓아야 할지 감이 전혀 없었던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 여행을 앞두고 덜컥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여행 전날 밤에 술을 잔뜩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이까짓 거, 빨리 없애버리자'는 생각으로 셀린느를 단돈 2만 원에 올렸다. 잠수 이별을 택했던 전 남친을 향한 복수심이 셀린느의 가치를 하락시켜 제멋대로 값을 책정한 것이다.
물건의 진가를 단번에 알아본 사람들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단시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앞다투어 자기에게 팔라는 사람들, 진짜 2만 원이 맞냐고 거듭 확인하는 사람들 중에 제일 먼저 구입 의사를 밝힌 사람과 채팅으로 대화를 했다.
'판매할게요. 그런데 제가 여행 일정이 있어서 내일 새벽에 집을 나가야 해요. 여행 갔다 온 후에 뵈어도 될까요?'
'아닙니다! 새벽이라도 제가 댁까지 갈 수 있어요!'
(이렇게까지 구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을 때 눈치챘어야 한다. 그리 헐값에 팔아버릴 물건이 아니었음을.)
'그럼 내일 네 시까지 저희 집 주차장으로 오세요.'
'꼭 시간 맞춰 갈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묵은 과제를 끝내 홀가분한 마음으로(는 아니고 술기운에 뻗어) 잠들었다.
다음 날 새벽,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는 예상과 달리 내 또래(당시 30대)의 여자가 아닌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그는 내게 만 원짜리를 두 장 냉큼 건네고 물건을 받아 들었다.
"저희 와이프 선물하려고요. 아이구, 물건 상태도 좋고, 아내가 정말 좋아하겠네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목인사를 꾸벅하고 검정색 SUV를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순간, 간밤에 마신 술이 확 깼다. 괜한 사족을 늘어놓은 것으로 보아 그 남자는 아내를 주려고 이 가방을 산 게 아니라고 직감했다. 소위 말하는 '꾼'이 확실했다. 뒤늦게 당근에 들어가 그의 중고거래 내역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그는 명품 가방이나 지갑 같은 것들을 헐값에 사들여 고가에 되파는 사람이었다. 어제는 취해서 이런 것까지 꼼꼼히 살펴볼 정신조차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2만 원에 팔기로 했으면 그만이지 누가 사가든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나와 거래한 사람이 가방을 예쁘게 들고 다닐 적임자이길 바랐다. 앞으로 셀린느에게 자주 바깥공기를 쐬어줄 새 주인을 직접 만나 전해주고 싶었다. 내게 큰돈은 안 되어도 그것으로 보람 있는 거래가 될 것 같았다.
한때 나를 빛내주던 셀린느가 되팔이 업자에게 넘어가 그의 수익 창출을 위해 쓰이리라고 상상도 못 했기에 맥이 빠졌다.
이 정도로 명품의 가치도, 사람도 알아보는 안목이 없으니 애초에 좋은 물건 가질 자격이 없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면 홀가분했을 텐데.
'내가 경솔했어, 괜히 팔았어, 물건 자체의 값어치를 간과했구나,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한 후에 팔았다면 내 비상금이라도 두둑이 챙길 수 있었는데' 같은 후회에 도돌이표가 달려 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었다.
때마침 내 마음을 반영하듯 남해에 몰아친 폭우와 풍랑으로 우리 가족은 섬에 고립되어 여행 일정보다 긴 시간 동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5일 동안 하늘도 울고 나도 울었다. 값을 잘 매겨서 팔았더라면 이번 여행의 교통비와 숙박비를 커버하고도 남았을 텐데. 꺼이꺼이.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불킥을 할 만큼 내 당근 거래 역사에서 큰 오점으로 남은 사건이었다.)
얼마 전 시청한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중고 마켓을 통해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면 명품백, 커플링 같은 아이템을 공략하라고 나왔다. 이별 후에 감정적인 상태로 급히 처분하느라(또는 나처럼 술김에 충동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제품의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그 장면을 보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거기에서 언급된 호구가 바로 나다.
명품을 되팔 때는 이성을 장착하고 평소보다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미니멀리즘에 꽂혀 있거나 물건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 당근에 헐값에 내놓는 일 없길 바라며, 선배 호구로서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려고 한다.
요즘에는 중고 명품 가방을 온/오프라인에서 미리 견적을 내보거나 리폼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방법도 많으니 명품을 처분하기 전에는 충분한 사전 조사 후에 몸값을 제대로 쳐서 받으시라!
■ 명품 견적 받기
1. 온라인 견적 받기
- KREAM, 트렌비, 필웨이, 머스트잇 등의 온라인 명품 거래 플랫폼에서 사진과 정보를 입력하면 견적을 받을 수 있어요. 공식 웹사이트나 앱에서 브랜드, 모델명, 상태 등을 입력하면 자동 견적이 나오거나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 리본즈, 럭스애비뉴 같은 전문 감정 업체에서 견적을 요청할 수 있어요. 사진을 업로드하고, 사용감이나 스크래치 여부 등을 설명하면 예상가를 받을 수 있어요.
2. 오프라인 매장 방문
- 강남, 압구정, 명동, 동대문 등에는 명품 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이 많아요. 직접 방문하면 감정가 상태를 보고 바로 견적을 내주고, 현금 매입이 가능해요.
-일부 백화점(롯데, 현대, 신세계)에서는 명품 리세일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브랜드 공식 감정 후 위탁 판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3. 해외 리세일 플랫폼 이용
-더 리얼리얼(The RealReal), 패션필레(Fashionphile), 요기즈클로젯(Yoogi's Closet) 같은 글로벌 명품 위탁 판매 사이트도 이용 가능합니다. 해외 바이어를 대상으로 판매할 수 있어 시세가 더 높을 수도 있다고 해요.
■ 명품 가방 리폼하기
오래된 명품 가방은 가죽 복원, 염색, 스티치와 모서리 보수, 안감 교체, 스트랩 또는 체인 교체가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방 표면에 새로운 패턴이나 그림을 추가하는 커스텀 리폼도 가능해요.
사이즈가 큰 토트백은 넉넉한 가죽 면적을 활용해 미니 숄더백이나 지갑 등 완전히 다른 용도의 아이템으로 리폼할 수도 있답니다. 리폼 후에 중고 가치가 하락할 수 있지만, 현재 소유하고 있는 가방이 많이 손상되었거나 디자인에 지루함을 느낀다면 한번 시도해 볼 만합니다.
'명품가방 수선' 또는 '명품가방 리폼'으로 검색하여 후기,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확인해 보고 신뢰할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