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를 어수선한 공간에 두지 마세요
설거지, 옷가지, 악취 나는 쓰레기를 집안에 방치하고 계신가요?
단순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걸지도 몰라요. 저 역시 우울한 마음이 주변을 어지럽히고, 어지러운 공간이 다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악순환 속에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럴 때는 서랍 한 칸, 아니 연필꽂이 하나만이라도 정리해 보길 권합니다. 마음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노력은 내가 먼저 시작해야 해요.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보다는요.
정리나 청소를 의미 없는 희생으로 여기지 말고,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천천히 손을 대보면 어떨까요?
집에 손님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공간을 방치하지 마세요. '내가 매일 보고,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담아 가꾸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쓸 때, 가장 먼저 딴 자격증이 바로 '정리수납 전문가 자격증'이었습니다. 알코올과 무질서한 공간에 제 삶이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뭐라도 배우고 실천해야 했거든요. 경제적인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일상을 잘 꾸려가 보자는 마음으로 정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했어요.
시작이 어렵지, 막상 시작하면 쉬워진다는 '작업 흥분 이론'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아무리 만사가 귀찮아도 일단 몸을 움직여 일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아, 이걸 해야 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몰입 모드로 전환합니다.
'작업 흥분 이론'을 증명하듯, 무기력한 몸을 일으켜 컵 하나라도 씻고 나면 어느새 제2, 제3의 공간까지 정리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했어요.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정리된 공간 안에 있으면, 그 안에서 저 자신을 아무렇게나 흐트러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게 되더라고요.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신중하게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수납함부터 사지 말고, 집에 있는 물건 중 대체할 수 있는 걸 먼저 찾아보세요. 아무리 저렴하게 산다 해도, 돈은 결국 돈이잖아요. 천 원 한 장이라도 아끼고, 플라스틱 쓰레기 하나라도 덜 만들어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답니다.
저는 프링글스(감자칩)를 다 먹고 나면 통을 깨끗이 닦아서 연필꽂이로 활용해요. 제품 로고나 이미지가 귀여워서 그 자체로 멋진 필기구통이 되거든요. 덤벙대는 아들이 실수로 떨어뜨려도 깨질 걱정이 없어서 안심이에요.
신발 상자는 모양이 잘 잡혀 있고 꽤 견고해서, 속옷이나 양말을 수납하는 데 좋고, 면적이 큰 서랍 속 구획을 나눌 때도 유용해요.
다이소에서 소형 휴지통 같은 걸 굳이 살 필요 없어요. 토너 패드가 들어 있던 뚜껑 달린 용기를 버리지 않고 욕실에 두면, 매일 나오는 화장솜이나 면봉 같은 자잘한 쓰레기를 버리기에 딱 좋답니다.
그리고 SNS에서 '살림의 여왕'들이 애용한다는 살림템 광고나 공동 구매 모집에 쉽게 흔들리지 마세요. 집에 솥이 없어 매일 햇반으로 연명했다거나, 프라이팬 코팅이 벗겨져 반숙 프라이는 꿈도 못 꿨다면 남들이 좋다고 추천하는 제품 한 번쯤은 써볼 만하죠. 하지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집에 있던 솥으로 맛있는 솥밥을 잘 지어먹었고, 남들이 '잘산템'이라고 추켜 세우는 스테인리스 달걀말이 팬 없이도 야무지게 달걀을 말아 드셨다면,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물건 하나를 들이면, 그와 같은 기능을 하던 하나는 버려야 공간도 생기고 관리도 쉬워지는데(특히 주방용품은 더 그렇죠) 현실은 어떤가요? 설레는 마음으로 지갑을 열고 나면, 얼마 전까지 멀쩡히 잘 쓰던 물건을 버려야 한다는 죄책감이 형벌처럼 뒤따릅니다.
조만간 봄맞이 쇼핑을 계획 중이시라면, 먼저 옷장을 활짝 열고 옷을 몽땅 꺼내보세요. 존재조차 잊고 있던 옷들이 쏟아져 나올 거예요. 꺼낸 김에 해지거나 작아진 옷은 과감히 정리하고, 입을 만한 옷들을 추려 이것저것 조합해 보며 '나만의 룩북(Look Book)'을 만들어보세요. 김민식 PD가 이런 말을 했죠. 계절마다 옷이 없다고 느끼는 건 옷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코디 능력이 없어서라고.
(사실 패션 감각이나 코디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패션 유튜브도 가끔 보고, 핀터레스트나 온라인 쇼핑몰의 스타일링 이미지를 참고하고, 색 조합도 공부하면서 패션 감각을 키워야 해요.)
어찌 됐든 옷장 한 칸 한 칸을 자주 들여다보고 정리하다 보면,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중복 구매하는 일을 줄일 수 있어요. 한정된 공간을 지키고, 소중한 내 돈을 아끼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멀쩡한 물건을 버리거나 헐값에 처분하기 전에, 다소 손이 가더라도 리폼해서 새 생명을 불어넣어 보세요. 아시다시피 유튜브에는 전 세계의 아이디어 뱅크들이 가득하잖아요. 안 쓰는 스카프 활용법, 오래된 향수로 디퓨저 만들기, 버려진 청바지 뒷주머니로 파우치 만들기 같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참고해 일상에 적용해 보세요. 버려질 뻔한 물건을 새롭게 쓰는 과정에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수납 공간이 없다는 핑계는 이제 통하지 않아요
아이가 다 자라 더 이상 쓰지 않는 덩치 큰 육아용품이나 용도를 잃은 가구는 억지로 이고 지고 살지 말고, 중고마켓을 통해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보내 주세요.
저는 부피 큰 물건들 가운데서도, 특히 3인 가족의 겨울 패딩을 관리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봄이 되면 길이도 색상도 제각각인 패딩들을 좁은 옷장에 억지로 욱여넣어야 했죠. 그리고 다음 겨울, 다시 꺼내보면 비싼 패딩의 형태가 망가져 있어 매번 좌절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요? 1년에 한두 번밖에 쓰지 않는 캠핑용품, 부피가 큰 패딩이나 오리털 이불, 그 밖에도 보관이 까다로운 다양한 물건들도 이제는 전문 업체를 통해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고객이 직접 짐을 가져와 보관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출입 가능한 '창고형 보관 서비스', 업체가 직접 고객의 물품을 수거해 보관하고 다시 배송해 주는 '픽업형 보관 서비스', 그리고 미술품, 와인, 의류, 가구 등 민감하거나 고가의 물품을 보관하는 '특수 보관 서비스'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있어요. 물론 일정한 비용이 들긴 하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는 짐더미에 내어주는 우리 집의 평당 가격을 생각하면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한 서비스 아닐까요?
(얼마 전, 유명 드라이클리닝 업체에서 매달 일정 금액을 받고 원하는 기간 동안 패딩이나 이불을 보관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입간판을 봤어요. 올해 한번 이용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물건이 많아도 얼마든지 단정해 보일 수 있어요
애초에 외부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물건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도 단정해 보이는 집이 있더라고요.
몇 년 전에 엄마 친구분 댁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창가에는 크고 작은 다육식물이 가득 놓여 있었는데, 하나도 허투루 두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식물들의 키높이, 모양, 색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작은 식물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죠.
욕실에 들어서며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오래된 구옥의 작고 협소한 욕실 안에 들어찬 물건의 가짓수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종류끼리 정돈되어 있으니 전혀 어수선하지 않았어요. 어깨를 나란히 한 듯 단정하게 놓인 샴푸 통들, 형형색색이지만 같은 모양으로 가지런히 개어 놓은 수건들, 깔끔하게 펼쳐 걸어둔 샤워타월과 때타월, 크기별로 겹쳐놓은 대야들을 보는데 왠지 마음이 편안했어요.
그때 정리에 비우고 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과 정리에도 분명 기술과 습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이제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정리정돈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것을요.
이상, 에필로그 같은 이 글을 끝으로 브런치북 <하루 한 곳, 마음 정리>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