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OO어린이집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아이와 함께 등원하셔서 적응 기간 가지시면 돼요."
"정말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가 15개월 되던 달이 되어서야 대기 번호를 뽑고 기다리던 어린이집에서 빈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주신 친정 엄마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라 하루라도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좀처럼 순서가 돌아오지 않던 차에 펄쩍 뛸 듯 기쁜 소식이었다.
친정 엄마는 자유를 찾아미련 없이 떠나셨고, 이제 나는 아이 등하원 시간만 잘 맞추면 되는 워킹맘이 된 것이다. 이제 모두에게 좋은 쪽으로 다 해결됐으므로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한동안 잘 다니는가 싶더니 두 돌이 지나고부터 등원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너도 울고 나도 울고 눈물 폭탄을 주고받는 전쟁이 펼쳐졌다. 아이는 현관에 철퍼덕 주저앉아 나라 잃은 사람처럼 대성통곡했다. 30분씩 오열을 하며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게 안겨 양팔로 내 목덜미를 놓지 않았다.
아침마다 찐득찐득하게 내게 들러붙은 아이를 겨우 떼어내고 가슴에 돌덩이를 하나 얹은 채 출근을 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귓가에 매달고 지하철을 타면 그야말로 '지옥행 열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었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데 그건 설렐 때의 두근거림과는 달랐다. 출근길의 그 두근거림은 무척 거북했고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했으며 직장에 도착해서도 멈추지 않았다. 심할 때는 구역질도 나왔다. 아이를 품었을 때도 입덧 한 번 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말이다. 소화제를 먹어도 내려가지 않는 체기를 견디며 일을 했다.
어느 날, 육아와 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를 지켜보던 상사가 내게 조언을 했다.
"아이가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는 때는 생각보다 빨리 올 거예요.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일을 부여잡고 있어야 해요. 고통스러운 이 순간도 다 지나갈 테니 조금만 버텨요."
나를 위해 해 주신 감사한 말씀이었지만, 실은 그 얘길 듣자마자가슴이 철렁했다. 무서웠다. 몇 년 후가 될 그때를 위해서 아이가 나를 간절히 찾는 지금을 눈 질끈 감고 지나쳐야 한다니. 어느 날 슬그머니 눈을 떠 몰라보게 자란 아이를 낯설고 놀랍게 바라봐야 한다니. 그건 결코 내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었다.
몇 달 고심 끝에 나는 상사의 조언이 무색한 답변을 들고그의 앞에 섰다.
"퇴사하겠습니다."
10년 다닌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제 막 30개월이 된 아이에게 기쁘게 입사했다.
육아는 뒷전인 채 혼술에 빠지려고 퇴사한 건 아니었는데... 그땐 진짜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