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우리 할망
“엄마! 저 왔어요!”
딸의 여름 방학에 맞춰 휴가를 내서 친정을 찾았다.
“아이고, 어서들 와라!”
현관을 열고 함박웃음 지으며 우리 부부를 맞이하는 엄마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봤던 할머니 얼굴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우리 강아지, 아가씨가 다 됐네!”
앞니가 빠진 채로 헤벌쭉 웃는 우리 딸을 번쩍 안아 작은 이마에 입을 맞추는 엄마를 보는 순간, 내 이마에 닿던 외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붉어진 코끝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물을 틀어 놓고 한참 동안 손을 씻었다.
“와, 꽃 이쁘다! 향기도 좋아! 엄마도 맡아봐.”
은별이 목소리를 따라 거실로 가니 장식장 위에 빨간 카네이션이 놓여 있었다. 그 뒤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진이 나란히 있었다. 전에 본 적 없는 배치였다.
“엄마, 한여름에 웬 카네이션이에요?”
“5월에 좌판에서 사다 둔 게 이직도 저리 쌩쌩하네."
“엄마가 엄청 정성 들여 관리하셨나 보네.”
“그거 그만 들여다보고 얼른 밥 먹자. 박 서방, 시장하지? 어서 앉게.”
엄마가 화제를 돌리고 부엌으로 가 음식을 데웠다. 네 사람이 앉은 식탁 위엔 육해공에서 공수해 온 산해진미가 빽빽이 올라가 있었다. 그중에서 남편이 맛있다면서 세 그릇이나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몸국’이었다.
비어가는 남편의 국그릇을 보면서 기름진 국으로 속풀이를 하고 싶었던 외할아버지와, 그런 그를 보며 속이 터지던 외할머니와, 그런 둘을 생각하며 네 시간이 넘게 이걸 끓였을 엄마를 동시에 떠올렸다.
버터에 구운 전복을 오물오물 씹어 먹고 있는데 식탁 옆에 걸린 커다란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아, 맞다. 8월이지!’
엄마는 카네이션을 석 달간 죽지 않게 키워 내며 할머니의 빨간 테왁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사위 대접할 특식을 준비한다고 오전 내내 고기 삶고, 모자반 불리며 검고 수척한 할아버지를 생각했을까.
먹성 좋은 사위의 활약 덕에 밥상 위엔 빈 접시들만 남았다. 부푼 배를 쓸며 더 이상 들어갈 곳 없다고 손사래 치는 사위 앞에 숭늉, 수정과, 참외 같은 것들을 1분 단위로 내어놓는 엄마 등 뒤에서 ‘호오이 호오이’ 그리운 숨비소리가 들려왔다. ■
brunch book 단편소설 <할머니의 숨비소리> 완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