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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Dec 21. 2022

조급한 마음 위에 소복이 내려앉는 눈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새벽에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리니 지붕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앉아서 보이는 풍경은 하얗게 덮인 지붕뿐이지만 그 위에 비처럼 내려앉는 눈을 보다 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눈 덮인 세상은 나의 불안을 잠재워주고 사소한 고민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불안과 고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나의 불안은 조급한 마음에 있다. 무슨 일이든 성과가 눈에 보이길 바라며 오늘이 삶의 전부인양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에 불안을 느낀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원하는 것을 당장 얻길 바란다.


잘못된 양육습관을 인지했을 때도 조급한 마음이 앞섰다. 나를 비난하며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는지 생각하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답이 있다고 한들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쉬운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선택했을 리 없다.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게 놔두는 일은 쉽다. 나에게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 가장 어려운데 같이 노는 느낌이 아닌 놀아준다는 생각을 하니 더 힘들다. 아이들이 함께 하길 원하는 놀이는 역할놀이나 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나는 조용히 앉아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보드게임같이 어른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도 아이들이 하자고 하면 하기도 전에 귀찮은 마음부터 든다. 마지못해 할 때도 있지만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엄마이다.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8시 35분까지 와야 하는 버스는 올 생각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눈사람 만들기에 열중했다. 작은 눈사람을 완성할 때까지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오히려 좋다며 그 시간을 즐겼다.

눈이 많이 내리면 길도 지저분해지고 미끄러워져 걷기도 힘들고 길도 막혀서 불편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 그런 불편 따위 중요치 않게 느껴진다. 같이 놀아주지는 못하지만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아이들이 뒤섞여 눈을 굴리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옷이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생각해보면 불행했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우했던 상황에서도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던 기억은 따뜻한 온기가 되어 경직된 마음을 녹여준다.


결국 버스는 9시가 다 돼서 도착했다. 그것도 우리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가 와서 아이들이 서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래 우리가 타는 버스는 도로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나 보다. 기사님은 아는 친구가 있으면 친구 무릎에라도 앉으라고 하셨다. 늦었음에도 걱정이 되지 않고 그 상황이 재밌었다. 둘째는 친구 무릎에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버스를 보내고 집에 오는 길에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어리둥절하며 당황하는 아들들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여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조급함도 소용없음을 안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안 순간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걷다가 놓치고 지나온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절실히 원했던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좌절감도 들지만 결국에는 꽉 거머쥔 주먹을 풀어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신생아의 작디작은 주먹처럼 안에는 먼지와 땀으로 그득하다. 먼지와 땀은 살기 위한 안간힘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게 아닐까?


아이들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뜻대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아이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할 수 없는 일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는 고유한 성향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라난다. 내가 많이 놀아주지 못하더라도 아이의 성향이나 삶에 대한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합리화시켜 본다.


글쓰기에도 조급한 마음은 수시로 찾아든다. 언제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휘몰아치는 눈 속을 걷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책들을 마구 읽어보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간신히 발자국만 쫓는 꼴이다. 길은 잃지 않을 테지만 나만의 발자국을 만들고 싶다.


눈 오는 날 차들 사이에 갇힌 버스처럼 오늘의 조급함으로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거북이걸음보다 더 느리더라도 버스는 조금씩 움직일 테고,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조급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조급함도 불안함도 나의 욕심으로 태생한 것들이다. 소복이 쌓인 눈이 조급함을 덮어주듯 조급함 위에 피어난 불안을 의연함과 유연함으로 넘길 수 있길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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