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엄청 혼났다. 학교는 임시휴교인데 아침에 나간 아이가 하루 종일 연락도 안되고 오후 늦게 나타났으니 말이다. 사실대로 말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자전거를 탔다고. 이상하게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동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가족에게 느끼는 친밀감. 하지만 규창이는 가족이 아니지 않은가. 인간적으로 느끼는 호감일까? 호감을 느끼는 친구들은 몇 명 있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이야기할 것도 많고 우리끼리 비밀도 많다. 그러나 내 친구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규창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결이 달랐다. 정말 이상하다. 엄마의 잔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다시 오늘 아침이 돌아온다 해도 나는 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거다. 오늘의 모든 기억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학교는 다시 평소처럼 돌아갔다. 복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수업 종소리는 어김없이 시간을 나누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그날의 자전거, 플라타너스 아래의 햇살, 규창의 조용한 미소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 기억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 한편에서 따뜻하게 숨 쉬고 있었다.
영어 수업이 끝난 뒤 녹음기를 들고 1반으로 향하는 길은 이제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여전히 남학생들의 소란은 존재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 복도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길에는 규창이 있었다. 5반부터 나란히 걷는 우리의 발걸음은 어딘가 닮아 있었고, 그 짧은 거리는 점점 마음의 거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침 영어 랩 실에서 하는 영어 듣기 수업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큰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눈빛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정들이 오갔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숨을 쉬고 있다는 것,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문장을 외운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의 전학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는 이 남녀공학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 것이다. 엄마는 처음부터 인근 여자 중학교 대신 역사도 짧은 남녀공학에 배정된 것을 내심 못마땅해하셨다.
그날 밤, 나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이, 이 일상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내 가슴을 눌렀다. 규창이에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아무 말 없이 떠나야 할까? 9월 첫 주부터 새 학교에서 다녀야 했다. 규창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마지막 영어 수업이 찾아왔다. 나는 그날도 평소처럼 녹음기를 들고 1반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규창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빛조차 내게 주지 않았다. 나는 묘한 서운함과 안도감 사이에서 흔들렸다.
5반 앞에 도착했을 때, 규창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작고 얇은 봉투였다. 아무 말 없이 그는 복도 끝으로 사라졌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봉투를 꼭 쥐고 있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감촉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아이들이 볼까 봐 얼른 챙겨서 교실로 돌아와 가방 속에 재빨리 넣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인사도 못 했다.
‘안녕, 잘 있어. 공부 열심히 해. 그동안 고마웠어.’
이 중에 하나도 말을 못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하루 종일 편지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아무 일도 못했다. 집에 와서도 편지를 꺼내 보질 못했다. 식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고 옆에 여동생이 코를 골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 책상 위 스탠드를 켰다. 그리고 가방 밑바닥에 있던 편지를 꺼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꺼냈다. 종이에서 나는 냄새는 익숙했다.
편지는 2장이었다. 봉투에서 꺼내는데 낯익은 냄새가 났다. 바로 규창이네 집 서재의 책 냄새였다. 이 편지지가 서재에 있던 종이일까? 아니면 이 편지를 서재에서 쓴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쓰고 나서 서재 책갈피에 꽂아 놓았던 것일까? 어찌 되었든 나는 이 향기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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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시작은 너의 웃음이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놀랐다. 아니, 예쁘다기보다는 빛난다고 해야 하나. 내가 그림을 잘 그리면 한 장 그려놓았을 것이다. 그 웃음이 내 마음에 처음 들어온 날부터 내 안에서 이상한 감정이 자라는 걸 느꼈어.
(... 중략...)
어린 왕자처럼 다른 별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나 역시 장미 걱정 대신 네 걱정을 할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졌으니까. 잘 지내. 그리고 항상 웃어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널 기다릴게. 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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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다가 문득 규창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 눈빛, 단순히 반짝인다고 할 수 없는 깊은 눈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는 모습. 플라타너스처럼 내 옆에 서서 같이 걸어주던 모습, 그 그늘 아래서 내가 느꼈던 알 수 없는 안도감까지. 오히려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내 주위에 온통 어둠으로 있었다. 이별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그것은 단순한 ‘헤어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를 통해 나 자신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규창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는 나를 보았고,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 감정은 단순한 호감도, 짝사랑도, 우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무언가를 바꾸고, 새롭게 깨어나게 하는 ‘첫 마음’이었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무슨 감정인지도 몰랐고 심지어 마지막 인사도 못했다. 책상에 엎드려 소리 죽여 울었다.
나의 플라타너스 규창이.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었고, 그 깊은 눈빛에 나를 담아 주었던, 결국 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부모님 덕분이지만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거울을 보면서 내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내가 나임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아이러니. 이브의 원죄를 내 이제 알 것 같았다. 인간은 신이 아닌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떨어져 있으면 부재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규창이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한다. 내가 한 발 딛기가 두려울 때, 기운 없이 풀썩 주저앉고 싶을 때, 어느새 규창이는 내 옆에 와서 같이 걷고 있다. 규창이는 나의 첫사랑이 아니라 나의 수호천사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