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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Oct 23. 2021

엄마는 사장님, 누나는 회장님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로부터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부재중 전화도 10여 통 되고요. 엄마가 왜 전화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기에 일부로 전화를 안 받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받지 말라는 누나의 거듭된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람 질릴 정도로 전화를 해대시니 안 받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고 상당히 난감합니다. 

전화를 하여 똑같은 애기를 자꾸 하십니다. 

제가 알았다고 몇 번 말씀드려도 잊어먹고 전화기가 울려대니 나도 미치겠습니다. 

또 다시 전화를 받습니다.

“병철아!” 

“네.”

“아이구, 우리 큰딸이 어제부터 오늘까지 청소하고 빨래하며 일하다가 조까 이따 간다고 헌디 내가 돈 찾은 게 없어가지고 하나도 못 주것는디, 내가 돈 찾아서 줄 테니 니가 돈 좀 있냐?”

“하하, 누나한테 내가 돈을 줬어요.”

“얼마 줬냐?”

“5만 원요.”

“아, 순희 줬냐?”

“네, 내가 누나 통장으로 입금해줬어요.”

“잉 그랬냐? 그렁께 딸이 이날평생 오만가지 다 해주고 그랬는디 내가 애가 터져 죽겠다, 돈 한 잎도 못줘서. 내가 아직 못 줬는디 니가 5만원 줬냐?”

“네.” 

“그렁께, 잘했다, 고맙다.”  


광주에 사는 누나가 어제 엄마 집에 내려와 오늘까지 어지럽혀진 집 청소하고 냄새나는 옷 빨래하며 속옷 사다 넣어두고 냉장고에도 과일 채워놓는 등 온갖 집안일을 다해주고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주니 엄마 입장에서는 그 고마운 정이 남다르고 보답을 하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근무 중인 나한테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하여 그런 누나한테 돈 한 잎 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 어떡하냐며 안타까워하시며 나에게 돈 좀 찾아달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호소한 겁니다.

엄마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 집요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그 행실과 마음씀씀이가 고마워 어떻게든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는 게 엄마의 마음일 것입니다. 사실 누나처럼 한 번씩 와서 그렇게 엄마집 온갖 궂은일을 다 해주고 살뜰히 엄마를 챙기는 일이 쉬운 게 아닙니다. 솔직히 다른 자식은 그렇게 못합니다. 누나도 교사이고 남매를 둔 부모인데 누나라고 얼마나 여유가 있겠는가요. 그러나 누나는 자타 공인 천사표로서 정말 마음씨가 꽃 같고 사랑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할 사람은 더군다나 전혀 아니지요. 하늘이 전정 내려다보고 있다면 복 받을 사람이죠.

어떻든 엄마는 기어코 그 보답으로 얼마간의 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집요함은 치매기가 생기면서부터 더욱 강해졌지요. 

누나가 엄마를 위해 여러 가지 물품도 사고 식사비며 비용을 지출한 것도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누나는 누나대로 비용 보전에 대해 극구 거절하며 한사코 뿌리치는 상황이고요.

그렇지만 엄마의 간곡한 청도 있고 같은 동기간이지만 누나가 하는 게 너무 고마워서 일단 제 돈에서 일정 금액을 입금해줬던 것입니다. 누나는 상당히 난처해하고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느냐며 나한테 화까지 냅니다. 

아마도 나중에 누나는 그 돈마저 다시 반환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제야 엄마는 잘 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편안해 하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 별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사례를 뿌리치는 누나와 그 보답을 기어코 하고야 말겠다는 엄마의 집요한 열의 사이에서 나는 때때로 곤란한 지경에 처해집니다.     


엊그제 엄마, 누나와 함께 드라이를 할 때 누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무슨 회장님이예요? 사장님이예요? 올 때마다 돈을 주시려고 하니 엄마가 그렇게 돈이 많아요?”

그 말을 듣고 내가 한 수 거듭니다.

“엄마야 정 많기로 하면 사장님이지 암. 그런데 정 많기는 엄마보다 누나가 더 회장님이네 머!”

우리 엄마도 누나도 다정도 병인 양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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