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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Mar 23. 2023

스물다섯, 폭식증 그리고 우울증 #1

글을 시작하며

 마음이 불편하고 뭔가가 나를 가렵게 하는 느낌에 잠을 설쳐 본 적이 있는가. 너무 가렵지만 어느 곳이 가려운지 몰라 더욱 답답하고 심지어는 두렵기조차 한 경험. 나에게는 ‘불투명함’이 그 가려움의 시작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무엇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매일 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조급해하고 불안해한다. 혹여나 무언가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다면 몇 번이고 나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탓하며 "너는 원래 이런 아이니까."하고 일반화하는 것. 나를 갉아먹는, 그 가려움으로 시작된 자기혐오를 겪어 본 적이 있는가.


 자기혐오라는 심연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마치 추를 달고 물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나에게 ’ 벌‘을 주는 것은 그 추를 하나씩 추가해 가는 것이다. 추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나는 계속 침몰한다. 내 내면의 깊은 바다로. 그러다 보면 주변은 온통 캄캄해져 무엇도 보이지 않게 된다. 그곳에서 홀로 조용히 존재하게 된다. 내가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꺼내줄 수 없다. 내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 수 없기에. 그래서 나를 그 깊디깊은 바다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나를 가라앉게 한 그 추들을 하나씩 없애야만 한다. 스스로 하나씩, 나를 동여맨 추의 줄을 잘라내다 보면 몸은 조금씩 떠오른다. 물의 부력은 나를 점점 떠올려 마침내 다른 이와, 내가 살던 그 세상과 다시 마주하게 해 줄 것이다.


 나에게 그 ’ ‘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나를 2년간 심해에 가두어 놓았을까. 사람은 본인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생긴다고 한다.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하는 욕구, 무언가 성취하고 싶어 하는 욕구 등. 내 몸을 칭칭 감은 추들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무언가에 좌절할 때마다 스스로를 추로 옭아맸던 그 행위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며, 나를 가라앉힌 추들의 정체를 몰라 마냥 두렵기만 했다. 왜 난 다시 떠오를 수 없을까. 내 안의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수없이 질문했지만 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비로소 나 자신 안을 들여다볼 수 있기 전까지.


 한창 젊음을 즐겨야 했던 스물두 살 나는 심해의 해저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차가운 바닷속의 바닥에서 난 점점 나를 믿을 수 없게 되고, 끝내는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도, 누구와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1차원적인 쾌락에 중독되어 갔다. 그러나 내 내면 깊은 곳에 작디작은 목소리는 늘 존재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라고. 그 어두운 해저에서 그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일주일 7일 중 6일은 무기력하더라도, 하루만은 힘을 내보려 노력했다. 그러자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 중 하루는 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내미는 손을 잡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 몸에 휘감긴 추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고, 난 수면 근처로 점점 떠올랐다. 드디어 조금씩 햇볕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침대에서 나오는 것, 세수를 하는 것, 양치를 하는 것, 밥을 먹는 것. 당연히 그저 하던 것이 왜 이리 어려워지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질책하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라는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 왜 이것이 힘들어졌는가.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길을 무작정 걸을 때는 불안하지만, 지도를 한번 보고 걸으면 안심되는 것처럼, 때로는 다른 이의 경험을 들여다보는 것이 큰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두 가지, 즉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공통점을 보며 공감하고, 차이점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비교할 수 있다. 난 독자가 그런 경험을 하길 바란다. 내가 경험한 심연을 묘사하여 독자가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특히 20대의 독자들에게. 불투명한 삶 속에서 수차례의 시험을 거치며 사는 것.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속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으면 한다. 나는 당신이 수면 위의 항해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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