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가 아니 가면

가다가 쉬었다 가자

by 인해 한광일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는 속담은 옳은가? 어릴 적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던 친구는‘가다가 아니 가면 간만큼 이익’이라는 말로 뒤집곤 했었다. 나 역시 친구의 말에 일견 옳은 면이 있다고 마음으로부터 동의하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 종종 어수선한 뉴스를 보며 역시 어린 생각이었는가, 회의(懷疑) 중이다.


요즘 사랑의 변심(變心)을 이유로 삶을 접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경제적 곤궁을 이유로, 험담과 인터넷 악성 댓글, 비관적인 성적, 따돌림, 실패 등은 충분한 이유가 되는가 보다. 하긴 과학은 사랑의 유효 기간(?)까지도 탐구해 내는 요즘 아니겠는가. 남녀 간 사랑의 본질이 그렇다니, 오히려 사랑의 영원 불변성을 믿던 시와 소설과 순정의 지난날이 순수하게 느껴지곤 한다.



#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


삶을 접고 스스로 사라져 가는, 사랑 아닌 안타까운 사연들이 종종 뉴스로 올라온다. 가다가 아니 간 아까운 인생들이다. 그의 상처의 깊이를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죽을힘으로 살지 왜 죽어?’,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고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이는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마음으로부터 유래하는, 우리네 ‘고인에 대한 묵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심성이 유달리 고운 이들은 ‘아프다, 힘들다 말 좀 해보지.’, ‘구만리 같은 청춘 이건만….’ 하며 잠깐이지만 통증을 조의(弔儀)로 내어놓기도 한다. 가다가 아니 간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럴진대, 그와 한 그물로 짜여 있던 사람들의 충격은 말해 무엇하랴.

점으로 존재하는 삶은 극히 드물다. 온 생이 시리기만 한 천애고아(天涯孤兒)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천애고아(실은 미혼모에 의해 버려지는 아기 뉴스가 드물지만은 않다)의 인생을 들을 때마다 그의 고난과 괴로움을 짐작하는 우리는 얼마나 숙연해지는가? 그러나 우리가 듣고 안타까워하는 대부분의 뉴스는 ‘가다가 아니 간 사람’들에 대한 뉴스이다. 그물을 함께 이루고 있었던 존재이니, 그의 끊어진 삶은 짱짱하던 그물 전체에 뼈저린 진동을 주게 된다. 혼자만 눈감으면 사라지고 마는, 그런 세상이 아닌 것이다.


종종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으시곤 하던 아버지로부터 어릴 적 꿩의 우매함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꿩이란 놈은 하늘에 보라매가 떨렁거리며 치솟으면 그만 기가 질려 숲 속 아무 데나 처박힌단다. 그리고 곧바로 대가리만 급한 대로 덤불 속에 쑤셔 넣는단다. 그러면 제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보라매에게도 제 숨은 모습이 아주 보이지 않으려니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치장이 눈 좋은 보라매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다는 말씀이셨다. 실로 눈을 감는다고 세상이 사라지겠는가. 덤불 속에 고개를 처박고 말 것이 아니라, 보라매가 쫓기 힘든 가시덤불 속으로 끝까지 달아났다면 생존율이 높아지지 않았겠는가.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의 본능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정령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지 않은가.



#가다가 아니 가도 간만큼 이익이다


어떤 이는 세상이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아이들에게 ‘가본 길이라야 그 길거리 음식 맛을 알 수 있다’는 우스운 말로 바꾸곤 한다. 고고한 학문을 이룬 학자의 식견은 분명 고배율의 깊은 눈빛으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오묘한 심미안(審美眼)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사는 재미가 꼭 깊은 공부를 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길 전문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진 못해도, 정령 내 길을 찾아 사통팔달의 길을, 안 가본 길 없이 가다가 되돌아오고, 다시 또 다른 길을 찾아 여전히 나아가는, 그러나 길 위에 멈춘 적 없는 적잖은 사람들이 있다. 그는 거친 안주에 쓴 술잔의 맛을 감칠 나게 즐길 줄 안다. 학자들은 꿈에도 모를 인생의 쓰고 아리고 다양한 잡학의 맛을 누린다. 학자는 편식처럼 자기의 학문에 특별히 기쁨을 누릴지언정, 그는 가다가 되돌아와 다시 다른 길을 찾는, 그러나 휴식이 있을지언정 길 위에 멈춘 적 없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의 재미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식견 높은 전문가의 오묘한 심미안 대신 그들은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다기능 공구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가본 사람만이 그 길거리 음식 맛을 누릴 수 있다는 내 우스운 말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가다가 아니 가고 돌아와도 좋다, 그러나 잠시 쉬었다가 곧 다른 길로 갈 채비를 하자. 다른 길엔 다른 길거리 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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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욕이 남달랐던 동료 교사를 옆에서 본 일이 있다. 그는 미술 공부를 생의 큰 낙이요, 성취할 목표로 정해두고 매진하더니, 마침내 스스로 큰 만족을 누리는 성공을 거둔 예가 되었다. 그는 내 눈에도 마침내 가고 가서 끝에 다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의 미적 안목은 그의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인기가 드높다. 그는 지금 그 자신의 성공을 누리는 중이다. 그의 학생들은 그와의 미술 시간을 무척 즐겁게 기다린다. 학교 밖에서도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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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촌 학교에 근무할 때 가난한 부부를 약 일 년 정도 이웃으로 두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생활필수품조차 몇 번이나 미루며, 산나물을 수습하고 벌통을 기다려서야 시내로 나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는 삶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한 번도 웃음이 걷힌 얼굴을 본 일이 없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그의 아내가 남편 손님을 박대(薄待)하는 것도 본 일이 없다. 그녀의 남편은 사회 각 분야에서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그와의 이야기는 늘 다채롭고 신선했다. 그는 삶을 위해 많은 길을 '가다가 아니 가고 되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툭툭 털고 또 새길을 찾아 이리로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와 마주 앉은자리에서 나는 꼭 무엇인가 하나씩은 그에게 배워오곤 했던 것 같다. 그는 그 많은 삶을 정리하여 다시 그곳 산촌에 깃든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지난 세월을 덧없다 말한 적이 없다. 그는 그곳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산밭을 일구어내고, 비 새는 지붕을 덧대었다. 이웃의 물새는 수도를 손봐주었으며, 이장댁의 녹슬어 관절병을 앓는 경운기에 기름칠도 해주며 웃곤 했다. 그들의 자녀들도 부모를 닮아 곧잘 웃곤 했다. 그들은 이미 자녀를 출가시키고도 남았을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을 본 지 오래지만, 나는 그들의 행복하고 해맑은 웃음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 아니다. 가다가 아니 가도 간만큼은 이익이다. 나는 오랜 속담 하나를 놓고, 뒤집어도 보고, 바로 놓고 다시 보면서도,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옳으며, 둘 다 무리가 있기도 하니, 손아귀에 든 두 개의 지압용 호두알처럼 맞부대끼는 말을 놓고 어느 하나를 고르지 못하다가 둘 다 내려놓고 만다. 그리곤 혼자서 중얼댄다.


가던 길 끝까지 가든, 가다가 아니 가고 돌아오든, 좀 쉬었다들 가.







아빠의 볼펜 자동차



무슨 전화인지

아빠의 목소리가

왕왕 커지고

볼펜이 신문지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ㅡ그러니까 제천까지 내려가서

안동 방향으로 간다고?


ㅡ그게 아니라

풍기 쪽으로 우회전하라고?

볼펜이

가던 길을 되돌아 선다.

ㅡ 알았어, 알았어.

풍기 쪽으로 우회전해서

영주 쪽으로 계속 갈게.

볼펜이 다시

곧은길을 내며 직진한다.


ㅡ그래. 단산 지나 부석 쪽으로

쭈욱 가면 소천리길 나온다 아이가?

드디어 볼펜이

동그라미를 그린 뒤 멈춰 선다

ㅡ알았다, 알았어.

내비게이션 켜고 가면 된다니까.

걱정마라, 길 잘 찾는다, 이누마야.

그래, 그때 보자.


긴 통화가 미안했는지

볼펜을 놓으시며, 아빠

엄마한테 어색하게 웃는다.

ㅡ내 불알친구다.


아빠가 일어서신 자리

신문지 위를 한참 달려간

볼펜 자동차가

아빠의 마음을

친구분한테 몽땅 실어다 놓은걸

엄마하고 나는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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