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소녀 셰이카 마이타 모하메드 라시드 알 막툼 공주
스스로 낮아지는 사람들
키도 자그마하시고 얼굴도 작으신 분이 밥도 어른 숟가락으로 결코 세 숟가락을 넘지 않게 드시는 분이다. 틀림없이 공주과(科)이신 그분이 교장실에 보이지 않아 현관 밖으로까지 나가 두리번거렸다. 운동장에도 안 계셔서 학교 주변을 순찰하시는가 보다 하고 돌아서려는데, 화단의 키 큰 접시꽃이 흔들렸다. 그 아래서 체육복을 입고 흙투성이가 된 장갑으로 풀을 뽑고 계신 모습을 발견했다.
항상 책을 들고 눈을 깜박이며 계셨고, 수학과 연구회 모임엘 나가시는 분이셨다. 바쁜 가운데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신 분이다. 선뜻 금일봉을 내놓으며, 칭찬에 응원을 더하시는 세련된 분이셨다. 피부도 희어서 햇볕 아래서 그을리신다는 건 정말 그분께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누가 봐도 공주과란 평을 들으실 만큼 꽃그늘이 어울리는 분이셨다. 찻잔 옆에 꼭 흰 손수건을 접어 두시는 여교장 선생님이셨다. 그런 공주께서 풀밭이 다 된 화단에 들어가 팔을 걷어붙이신 것이다. 뻘뻘 땀을 흘리고 계신 것이다. 벌써 비닐 포대 반이나 넘게 잡초들이 담겨 있었다. 교실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어 도와드리진 못했지만,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태권도 예선전이었다. 셰이카 마이타 모하메드 라시드 알 막툼 공주의 얼굴에 황송(?)하게도 우리나라 여자 태권도 황경선 선수의 발이 적중하였다. 다급해져서인지 막툼 공주는 두서없는 발길질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5대 1, 알 막툼 공주의 패배였다. 메달 결정전도 아니었지만, 내게 특히나 인상 깊었던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경기의 한 장면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패자들이 거의 그렇듯, 알 막툼 공주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패했으므로 공주의 경기는 그것뿐이었다. 결승 진출을 노리는 황경선 선수를 만났으니 공주의 대진운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공주라지만 결승전까지 진출해야 하는 황경선의 발은 주춤거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알 막툼 공주는 자신이 아무리 아랍에미리트의 고귀한 신분이라지만, 태권도 경기장에서 자신에게 뻗어오는 발길질이 겸손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향해 무엄(?)하게 발길질을 하는 선수가 자기보다 신분이 낮(?)을 것이라는 점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스물여덟 살이나 되었던 라시드 알 막툼 공주는 대한민국의 시민 황경선 선수의 무엄하기 짝이 없는 발길질을 맞고 예선 탈락이란 서민적(?)인 결과, 고배를 마셔야 했다. 참으로 알 막툼 공주는 왕가의 신분으로 스스로 명예를 많이도 낮추었다. 알 막툼 공주의 올림픽 참가가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아랍에미리트 왕가도 참으로 대단하다 여겨졌다. 태권도는 본래 발길질을 주로 하는 운동이니, 그들의 사랑하는 공주의 뺨에 무례한(?) 발길질이 날아들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절대 권력의 왕조는 왕가의 체면을 얼마든지 국민들의 무릎 아래로 낮출 수 있는 겸양의 덕을 보여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알 막툼 공주는 황경선 선수에게 패하고 나서 태권도 선수답게 겸손한 태도로 인터뷰에 응했다. 공주는 황경선 선수에게 패한 자신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황경선이 그만큼 강자이기 때문이랬다. 공주는 왕족의 고고함보다도 오히려 민주시민 사회의 세련된 승복(承服)의 정신마저 갖추지 않았는가? 그런 그녀라면, 그녀가 태권도가 아닌 다른 종류의 경기에 참가했어도 똑같이 겸손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알 막툼 공주를 가진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은 그녀를 마음껏 사랑해도 될 것 같다. '옛날 옛날의 공주 이야기'를 아랍에미리트는 지금도 써나가고 있지 않은가. 2008년의 일이니, 지금쯤 공주는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으리라.
태권도 경기 예선에서 침몰한 공주는, 그러나 당시 자신의 얼굴을 걷어찬 무엄한(?) 스포츠 태권도에 대한 사랑이 여전해, UAE 태권도협회장의 소임을 맡고 있단다. 놀랍고도 존경스럽다. 태권도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라니 겸손도 하다. 한국인으로서 고맙기도 하다.
우리도 지난 역사 속에서라도 이쯤 되는 공주 한 명쯤 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아라비아 램프의 연기처럼 평강공주가 스르르 떠올랐다. 억지스럽다고들 하겠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서민 바보 온달의 지위까지로 몸을 낮춘 평강공주였잖은가. 알 막툼 공주도 이것만은 못하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평강공주를 마음껏 사랑해도 좋을 것 같다. 누군가 평강을 위해 쓴 고운 시라도 한 편 있으면 읽어보고 싶다.
할아버지와 느티나무
아버지 마중 나갔다
돌아오던 장날 밤길에
제일 깜깜한 게
이 나무였어
어둠이
얼마나 짙던지
곁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와 날
시커멓게 내려다볼 땐
부엉이 울음소리 없이도
정말 무서웠고말고
어머니와 함께 여름 밭에 나갔다가
수건 풀고 호미 쉴 때
제일 고마운 게
이 나무였어
그늘이
얼마나 짙던지
뙤약볕 아래 또르르
멍석처럼 펼쳐 놓고
푸른 그림자로
땀 젖은 얼굴 씻어 주었을 땐
부채 한 자루 없이도
정말 시원했고말고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할아버지 이야기가 시작되면
느티나무 잎들도
그럼 그럼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방학만 되면 명이는
그 옛날
할아버지 아이 적
무섭고도 고마웠던
느티나무 아래에 누워
샛별처럼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눈빛과
반짝 눈 마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