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워커스(Homo workers)

말하게 하자, 쉬게 하자, 놀게 하자

by 인해 한광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 슬기 사람인 우리는 아직 슬기가 모자라는 모양이다. 인류는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또 미래마저 일굴 수 있을 만큼 슬기로운 체하지만, 사실은 제 몸 하나 건사할 줄 모르는 슬기 부족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언어적 존재라는 점을 지칭하여 호모 로퀜스(Homo loquens)라는 학명도, 유희적 존재라는 점을 특정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학명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왠지 잘 들어맞지 않는 분류 용어인 것 같다.


어린 시절 너무나 소심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먼저 걸거나 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낯선 곳에 가서 길을 물어야 할 형편임에도 끝까지 묻지 않고 헛되이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느라 몸에 고역(苦役)을 자초하는 아이였다. 나이 사십을 넘겨서도 이러한 소심증은 별로 나아지지 않아 새로운 고장에 들어서면 내 차는 몇 번이나 미로체험을 거치곤 했었다. 그로부터도 한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었으니 참 늦은 성장이다. 그러니 나는 아무래도 반백 년을 호모 로퀜스로 살아내지 못한 것 같다. 요즘 내비게이션 장치 덕분에 길을 묻지 않고도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가니, 이 또한 소심한 호모 로퀜스를 위한 다행한 장치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쯤 살아왔으니, 지금쯤 나는 호모 로퀜스로 불릴 자질이 있는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수십 년 교편을 잡은 내가 교문을 나서서, 모르는 사람들을 헤치며 모르는 길을 걸을 때, 나는 호모 로퀜스로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무나 붙들고 길을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 시 삼십 분이 조금만 넘어도 ‘그 반 수업이 왜 아직 끝나지 않느냐’는 학부모의 전화가 적지 않다. 애 학원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낮에 학교에 있어야 할 의무는 다했으니, 이제 노을 학교인 학원으로 등교한다. 학원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좀 쉬게 하자는 방학에 쉬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방학이라도 아이들은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발걸음해야 한다. 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언제나 홈 워크(Homework)가 밀려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아이들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슬기를 닦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아닐는지.


나이를 먹으면서 적지 않은 부고(訃告)를 들었으나 아직도 너무 마음 아파 잊히지 않는 부고가 있다. 십여 년 전이었다. 망자의 나이 오십이 못 되었으니 요즘 의료 환경으로 보아선 요절에 해당할 것이었다. 그의 영정 사진 앞에는 양친 부모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세 자녀가 넋이 나가 있었다. 일곱 명을 부양하던 가장이었다. 은퇴하신 부모님과 학생인 세 자녀와 아내, 그리고 자신까지 일곱 명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슬기와 역량을 쏟아부었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정말은 슬기롭지 못했나 보다.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벌이가 좀 더 나은 직장을 새로 구했다 했다. 망자의 사망 추정 시간은 월요일 새벽 세 시쯤. 출근한 것은 일요일이랬다. 두 직장에 종사했댔다. 퇴근은 매일 새벽 두세 시, 출근은 매일 아침 여덟 시. 일요일에 교회나 절, 혹은 들로 바람을 쐬러 나가 본 적이 없단다. 힘을 다해 가족을 부양하다가 젊은 나이에 그만 정말 힘이 다한 모양이었다. 너무 안타까워 그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었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였을지언정 주변에 ‘힘들다’ 말할 수 있는 호모 로퀜스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유달리 노래 부르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호모 루덴스 한국인. 그러나 그만은 예외였나 보았다. 그의 아내조차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무엇인지 모른 댔다. 그가 즐겨 나서는 공원이 어디인지도 모른 댔다. 그렇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한 개체는 유희의 본능과 언어적 본능을 스스로 폐쇄하고, 오직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서만 두 직업을 살다가 너무나 일찍 져버린 꽃이 되고 말았다. 아니, 그는 어느 학명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오직 불운의 호모 워커스(Homo workers, 작자 임의 명명)가 아니었나 싶다. 진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였다면, 그는 호모 로퀜스로서도, 호모 루덴스로서도 사는 존재여야 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이다. 지금 아이들 중엔 말 못 하는 아이를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무슨 놀이든 금방 몰입하고 열정을 불사른다. 우리 꼰대(?)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종족(?)이다. 명실공히 호모 로퀜스이며, 명실공히 호모 루덴스이다. 그러나 그들도 여전히 그들의 꼰대들처럼 호모 워커스(Homo-Workers)다. 학교와 학원을 순회해야 한다. 쉬라는 방학이면 오히려 방학맞이 특별 학원 프로그램을 들어야 한다. 그들도 역시 호모 워커스다.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호모 로퀜스(Homo loquens) 여야 한다. 재충전을 위한-아니 그냥 유희가 목적이어도 좋다- 유희를 만끽할 줄 아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여야 한다. 그걸 할 줄 알아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의 진화가 가능할 것이다.


호모 워커스(Homo workers)가 좀체 줄어들지 않는 모양이다. 호모 워커스가 다중인 세상은 몹쓸 세상이다. 코로나19 상황인 요즘, 운동장이 더욱 심하게 기울어졌단다. 호모 워커스(Homo workers)를 구조할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의 슬기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





방관자


가로수들이 가로 걸린다고

무성했던 잎과 가지를

뭉텅뭉텅

시민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시청은 인부들에게

나무들을 잘라버리라 사주를 내린 모양이다

이쯤 일도 아니라는 듯

허밍음을 흥얼거리며, 점점 높여 가며

전동톱들이 사이코패스처럼

나무들의 팔을 무차별 물어뜯으며

톱밥을 눈처럼 내뱉는다

나뭇가지가 줄기 째 무너져 내린다

작업이 꼭두새벽부터 시작되었는지

인부들이 사다리를 거둔 곳마다

팔들과 심지어 목까지 잘린 나무들이

미술실의 토르소처럼

꿈틀거리며 살아온 몸통만으로

기우뚱 서 있다


버스를 기다리던 눈길로

가끔씩 이쪽 작업을 흘끗거리는 사람들도

주머니에 다들 두 손을 찔러 넣고

나무토막들처럼 무뚝뚝

가을 정류장 풍경으로

우뚝우뚝 붙박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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