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엔 위성이 많다
호수공원은 1년 내내 잔치다. 호수는 매일 같이 스스로 설레며 즐겁다. 공원에는 언제나 빛과 바람과 설렘과 아름다운 연주회가 있다. 전시회가 있다. 녹색 그늘이 있다. 잔잔한 명랑이 있다. 그게 좋아서 공원에는 손님이 많다.
호수공원은 맑은 휴식이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쉬기만 해도 사람들은 갈대 무성한 수풀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물결과 수런거리는 숲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바람결에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실려 와도 좋다. 복잡한 심사를 내려놓으면 사람들의 두런거림 쯤은 즐거운 새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소음이다. 사실 호수공원은 완전한 침묵만은 아닌 곳이다. 이를테면 호수는 숲과 도시의 중간지대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고독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론 모둠살이의 안정감을 동시 추구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만족시켜주는 공간이라고나 할까?
호수공원은 커다란 책이다. 사람마다 달리 읽는 신기한 책이다. 기분이 다를 때마다 느낌이 다른 책이다. 아이들도 읽고, 연인들도 읽고, 연장자들도 읽는 책이다. 청둥오리도 뜸북새도, 그리고 큰고니도 가끔 동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나와 갈대숲에 숨어 쉬며, 한 동안 숨죽여 읽고 가는 책이다. 읽어도 읽어도 넘겨 볼 쪽수가 여전히 많은, 읽는 재미가 가득한 책이다. 호수의 문자들은 모두 살아 있다. 그저 벤치에 기대어 앉아있기만 해도 태양이 호수의 글자들을 반짝반짝 짚어가며 읽어 준다. 앉아 듣는 사람들은 호수의 문장을, 알아들어도 알아듣지 못해도 그저 행복하다.
호수공원은 단골손님 많은 가게이다. 쉬는 즐거움을 잊지 못하고 단골이 된 사람들이, 다시 쉼을 찾으러 오는 가게이다. 호수 공원은 누구에게도 돈 한 푼 받지 않는 가게이다. 호수 공원은 무료로 쉼을 파는 가게다.
옛사람들은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곤 했단다. 옛사람들이 탑을 중심으로 기꺼이 행성이 되었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호수의 위성이 되어 스스로 호수를 공전(空轉)한다. 옛사람들의 공전 에너지가 간절한 소원이었다면 오늘날의 시민들은 답답증을 에너지원으로 삼곤 한다. 사람들이 휴식을 사며, 호수를 공전하는 것으로 즐겁게 무료의 셈(?)을 치른다.
호수공원은 맘씨 좋은 의사이다. 그저 다정한 웃음만으로 치료하는 솜씨 좋은 의사이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와 대화를 해도 좋고 혼자서 푸념해도 좋으며, 아무 말하지 않아도 좋다. 조급증이나 우울증의 사람들은 호수 공원에게로 와서 필요한 대로 호수의 은은한 친절을 만나거나 무거운 마음을 호수에 내려놓고 가거나 하면 되는 것이다. 호수의 잔소리가 듣기 싫으면, 네댓 걸음 정도 걸음을 옮겨 호숫가 숲으로 잠적해도 좋다. 호수공원은 그릇 큰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의 작은 무례를 쉬이 용서하며, 조그만 이기심쯤은 눈감고 웃음으로써 그를 교화할 뿐이다. 호수공원의 처방이란 쉼과 선회와 다정한 대화와 침묵의 이율배반적 '음양소(陰陽素)'이다. 마음 아픈 사람들은 호수를 그저 한 바퀴 천천히 돌거나, 앉아 쉬거나, 마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서 깊이 명상에 잠기기라는 호수공원의 처방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겨울 호수공원의 처방은 색다르다. 허허로운 호수공원은 사고마저도 얼려 버릴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을 솔가지 사이로 쏘아대며 바닷소리를 내지른다. 고독은 한껏 고조된다. 쓸쓸한 사람들의 가슴팍에 호수공원은 예의 쌀쌀맞은 바람을 팍팍 내던진다. 그런 치료를 받은 뒤에야 지독한 고독은 비로소 따듯한 커피 한 모금의 온기를 그리워할 줄 알게 된다. 철저하게 쌀쌀맞음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온기를 회복하거나, 온기를 찾아 나서도록 치료하는 이색 처방을 펼치곤 한다.
오늘도 사람들은 호수 공원으로 몰려든다. 사바나의 웅덩이에 목마른 임팔라들이 목을 축이러 모여들 듯 사람들이 행복을 축이러 호수 공원으로 몰려든다. 그리곤 기꺼이 위성이 되어 호수공원을 공전한다.
여름 호수
이른 아침부터
나뭇잎마다
해님이 번들번들
써 놓은 글씨
참새 아이들
우르르 날아와
글을 읽는다
짹째글
짹째글
해님이
반짝반짝
짚어줄 때마다
짹째글
짹째글
글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