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지금은 논리성과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과학의 시대다. 논리적으로 치밀하지 못하거나 조금만 합당하지 않아도 불량한 것이 된다. 그러한 것들은 느닷없이 붕괴되거나 예측하지 못한 폐해를 낳는 등 사회에 커다란 피해를 끼치곤 한다. 그러한 재앙은 작은 하나를 어겼거나 속였거나 논리적 불합리를 깨닫지 못한 뒤틀림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과학의 시대는 이전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 하던 것을 창조하는 대신, 아주 작은 사항이라고 해서 긴장을 놓거나 눈 한번 찔끔 감은 일로 커다란 재앙을 일으키곤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과학적 부주의를 신랄하게 비난하곤 한다. 모름지기 지금은 논리와 합리성의 과학의 시대이다.
이렇게 과학적인 체하지만 사실 인간은 대단히 비과학적인 존재이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면서 인간은 앞서 말한 과학의 근간인 논리성과 합리성을 흔히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곤 한다. 살아가는 데 있어, 극소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디지털적 지성보다는, 융통성의 진폭이 크나큰 아날로그적 감성을 작동시키곤 한다. 이미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좋은 음식엔 좀 더 식탐을 부린다. 오늘 비워야 내일의 다소 무거운 일에 대처할 수 있건만 친구가 좋아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진다. 곧 시들 꽃을 비싸게 사서 이성에게 건네곤 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계획에도 없이 큰 지출을 하고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이미 은퇴한 노구(老軀)를 이끌고 어른이 된 자식을 챙겨 먹이려고 병원비를 치러가며 시골의 노부모는 여전히 농사를 놓지 못하는 현역이다.
과학적 시각으로 볼 때 가장 큰 아이러니는 결혼이 아닌가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절대 자유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면서도, 여전히 대부분은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고 살아가곤 한다.
자녀를 둔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그의 삶에는 아내나 남편이 들어있고, 아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과 만나서 맥주잔을 기울이던 시간의 상당량을 잃어버리고 만다. 새로운 인연을 조우하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 업무 시간 중에도 가끔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혼자선 느끼지 못했었지만, 이제 월급은 항상 부족하다. 그의, 혹은 그녀의 자유는 크게 축소된 채, 자유를 더욱 할애당하고 만다. 결혼한 인생의 어려움의 증거로 늘 그들의 눈앞에 부모라는 존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또 결혼하고 만다. 자유로움만으론 안 되는 무슨 결핍증 때문이다.
홑몸으로 맘껏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러 자신을 불행한 인생이라 자책하곤 한다. 혼자 몸피 가볍게 사는 자유로움이 향하는 곳은 엉뚱하게도 그리움이다. 홀몸은 곧 자유로운 삶이라기보단 외로운 삶으로 재해석되곤 한다. 자유의 가치가 훼손될 여지가 큰 비과학적 해석이다.
씀바귀 무침을 처음 맛볼 땐 씁쓸한 맛에 젓가락을 멈추곤 한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을 치른 뒤 새봄에 다신 만나게 되면, 씀바귀 무침의 씁쓸한 맛 외의 그 어떤 오묘한 맛의 기억에 이끌려 다시 젓가락을 부르곤 한다. 홀로 지내는 절대 자유의 외로움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보이곤 한다. 요즘엔 제 한 몸 사는 것이 훨씬 가벼운 인생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신의 판단에 대해 자신감이 커진다. 그들은 다시, 결혼이야말로 둘이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라기보다는, 두 영혼이 각각 자기 무게에 상대방의 하중까지 더해 짐 지느라 삶이 곱절 힘겨운 거라 이성(理性)을 번득이며 주장한다. 이렇게 두 배로 무거운 삶을 살아가진 말자고, 제법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결심을 다지곤 한다. 그들은 이제 외로움을 깨물고 비혼 주의를, 또는 결혼이야 하더라도 비출산 주의를 선언하곤 한다. 자기들의 자유로운 인생을 덜 잃자는 심산이다.
힘겨워하면서도 웃는 부부들이 바보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군중 속에서도 저희들끼리만 서로 손을 잡아끌고, 아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웃는다. 어떤 부부들은 자유를 잃은 태가 하나도 나지 않기도 한다. 자기 이야기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앞세우곤 한다. 아내를, 남편을 흉보면서도 결국 이른 저녁에 그의 품으로, 그들을 품으러, 귀소(歸巢)를 서두르곤 한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값비싼 자유를 내어놓고도 바보같이 곧잘 웃곤 한다.
남자는 언제 결혼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탈레스가 대답했다. ‘젊은 사람은 아직 이르고, 늙은이는 아주 틀렸다.’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대답을 남겼다. ‘결혼해 보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해 보지 말아 보라, 더욱 후회할 것이다.’
하긴 꼭 과학적인 것만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분명 과학의 시대이지만, 과학(科學)과 미(美)는 때로는 지극히 별개이기도 한가 보다.
콩나물
아내와 장터에서 콩나물 한 봉지 샀다.
우리는 때때로
누굴 물먹이냐며 화를 내고
또 누군
물먹었다며 화를 내곤 하는데
수족도
잎새도 하나 없는 것이
노란 대가리와
흰 줄기 몸뚱어리 하나로
물만 먹고도 콩나물은
싱싱하다
저녁상에
콩나물국 한 그릇으로
식탁에 올라와서도
한 숟갈 국물로나
한 입 씹을 거리로나
시원시원한 맛이나
명랑한 아삭 거림을 입 속에 남긴다.
우리는 모두
콩나물 국이나
콩나물 무침으로
밥상에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지만
푸른 젊음과
몸통 하나만을 믿으며
콩나물처럼
싱싱하게 살아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