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진 않은데… 큰 아이 생활하는 모습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요. 너무 늦게 들어오고, 자기 방 정리도 제대로 안 하는 등 몸은 어른인데 생활수준이 아직 어린애에요. 수차례 대화도 했지만 변화가 없어서 갈등만 커지더라고요. 이대로 지내다가는 사이만 나빠지겠다 싶어서 독립시키기로 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은 지 두어 달 후 다음 얘기를 듣게 됐다.
“어제 독립한 큰 아이가 와서 모처럼 네 식구가 모여 저녁을 먹었는데 남편이 ‘이렇게 넷이 모여 식사를 하니 분위기가 또 다르네.’라며 웃더라구요. 독립시키기를 잘 한 것 같아요.
가족은 같이 살아야 더 가까워질 수 있으니 반드시 같은 공간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고 심리적 거리까지 가까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친구 집 큰 아이 독립은 지금까지는 해피앤딩이다.
2. 글쎄, 큰 딸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계약하고 왔어요.
“엄마, 나 집 계약하고 왔어요.”
“엉? 무슨 집을 계약했다는 거니?” “내가 살 집. 나 독립하려고요. 2주 후에 이사할 거에요.”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없다. 나는 그 즉시 머리를 싸 매고 누웠다. 큰 딸에게 시위를 하려고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정말로 아팠다.
“어떻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독립을 혼자 결정하고 방까지 계약을 하고 올 수 있어? 내가 너를어떻게 키웠는데!”
나는 절대 이런 말을 안 할 줄 알았는데 기어이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엄마한테 상의해도 어차피 허락하지 않을 걸 아니까 그런 거에요. 제가 몇 번 상의했는데 그때마다 반대하셨으니까 제가 알아서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가정이 공중분해 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큰 딸과 나의 날카로운 대립으로 남편은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했고, 나머지 두 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 두 손을 붙들고 울기까지 했다. 다 큰 딸을 혼자 내보내는 것이 걱정되기도 하고,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깝기도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계약을 했으니 이사는 해야 했다.
딸이 이사한 곳은 다세대 주택을 원룸으로 불법개조한 집으로 공동현관은 말할 것도 없고 cctv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딸의 안전이 걱정돼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2달 후 공동현관과 cctv가 있는 안전한 오피스텔로 다시 이사하게 했다.딸은 나의 걱정과 달리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혼자 산다고 외로워하지도 않고, 음식도 나름대로 잘 챙겨 먹으며, 오피스텔 빌딩 내에 있는 짐에서 운동도 하면서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 심지어 딸은 이사 한 후 부쩍 더 철이 들었고, 집에서 같이 지낼 때보다 나와 딸과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다. 모처럼 집에 온 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독립을 하고 싶었어?”
“엄마,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항상 엄마가 모든 것을 미리 다 알아서 해 주시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과연 나 혼자 잘 할 수 있을까?’라고요. 막상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되는 때가 되었는데, 그때 제대로 못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혼자 힘으로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독립을 결심한 거에요.”
부모가 볼 때는 늘 어린 것 같아도 이미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서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늘 엄마의 시선으로만 바라본 내가 틀린 것이었다.
친구 집 큰 딸의 독립도 지금까지는 해피앤딩이다.
3. 둘째가 독립을 한다고 하네요.
“어제 저녁을 먹다가 둘째가 독립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언젠가는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렇게 선언하듯 말하는 것을 들으니 온갖 생각이 들어요.”
“직장도 멀고 경제적 능력도 있으니까 충분히 독립을 생각할 수 있겠네요.”
“네. 그렇지만 독립하면 아무래도 월세며 생활비 등 지출이 많아지니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겠죠. 결혼할 때 필요한 목돈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걱정이에요.”
“요즘은 부부가 같이 경제활동을 하니까 알아서 잘 살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옛날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죠. 그런데 먹는 것도 걱정이에요. 아무래도 혼자 살면 건강한 음식보다 패스트 푸드 등 간편식을 많이 먹게 될 테니까 몸이 상할까 봐 염려되네요.”
“아무래도 그런면이 있죠. 그런데 요즘은 젊은 애들이 더 건강에 신경 쓰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유기농 야채 먹고,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기는 것 보면서 제 친구는 딸이 꼼꼼하게 성분 분석해서 먹고 있는 영양제를 친구도 먹는대요. 알아서 잘 할 거에요.”
“… 무엇보다 둘째도 없이 집에 남편과 저, 부부만 남게 되는 단조로운 삶도 조금 걱정이 돼요. 그나마 둘째가 집에 있다는 것이 활력이 되고 의지도 되었는데…”
친구 집 둘째의 독립은 어떻게 진행될 지, 해피앤딩을 기대한다.
4. 경험의 차이가 견해의 차이를 만든다.
‘독립(獨立)’이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은 반드시 독립은 해야 하며, 독립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독립을 환호하거나 축하하기보다는 마지못해 허락하거나 제지하는 부모의 심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5,60대 부모들에게 자녀의 독립이란
지금의 오육십대 부모세대에게 자녀의 독립이란 자녀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그들의 삶이 그랬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그들의 부모 세대는 지방의 소도시나 농촌에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혹은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독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는 멀었지만, 심리적인 측면의 독립은 아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부모는 독립하는 자녀를 안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봤지만 심리적인 상실감은 덜 느꼈다. 그리고 학창시절부터 자녀들은 부모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살거나, 대체로 30세 전후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가 한 집에 살면서 갈등을 겪을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런 이유로 5,60대 부모세대들은 자녀가 결혼 전에 독립하는 것에 대해 좀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론 근검절약하며 살아야 했던 시대적인 영향도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독립이란
오늘날 젊은이들의 상황은 5,60대 부모 세대와 많이 다르다. 경제적 독립과 결혼연령이 과거에 비해 늦어지면서 부모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게다가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고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웬만한 거리의 통학이나 출퇴근이 부모의 집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독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모와 함께 지내야 하는 기간은 길어졌는데 독립을 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자녀의 독립을 두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와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예능프로그램, 그리고 이미 독립해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듯 보이는 친구나 동료들의 삶을 보며 독립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5. 축하하고 격려해야 할 자녀의 독립
서로 다른 시대를 살며 형성된 생활습관과 가치관을 가진 부모와 자식이 한 집에서 살면서 서로에게 맞추어 가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힘들게 맞추며 살 수도 있겠으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서로를 존중하는 최선의 방법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인데, 한 집에 살면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므로 자녀의 독립은 피할 수 없다.
자녀교육의 최종 목표가 자녀를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체로 만드는 것이라면, 부모 또한 자녀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해야 그 최종목표가 이루어질 것이다. 서로 물리적인 독립만이 아닌 정서적인 독립까지 이루어져야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렇게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계형성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자녀의 독립은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며, 새로워지고 성숙해지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자녀의 독립이 만세가 되려면 부모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