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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

feat. 싱가포르 스탠다드 차티드 마라톤

by Flying Angie

싱가포르의 따스한 아침, 그리고 대도시의 한적한 도로 위에서 나는 싱가포르에서의 첫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날은 스탠다드 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Standard Chartered Singapore Marathon, SCSM)이라는 연례 대회의 날이었다.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톤 중 하나로, 매년 12월 수천 명의 참가자가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 풀 마라톤, 하프 마라톤, 10km, 그리고 가족을 위한 단거리 코스까지 다양한 종목이 있어 모든 연령대와 실력을 아우른다.


특히 대회의 코스는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지나도록 설계되어 있어, 도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출발선에서부터 마리나 베이 샌즈,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그리고 메르라이언 파크를 지나치는 동안, 나는 이 도시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아름다운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교통이 완전히 통제되어 차량 대신 응원하는 군중과 열정적인 러너들로 가득한 도로는 일상적인 싱가포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이 경기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난 뒤 뛰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달리기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다룬 것이 아니다. 그가 달리기를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지에 대한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몸으로 글을 쓰는’ 작업이라고 비유했는데, 이는 내게 인상적이게 다가왔다.


스탠다드 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의 가장 특별한 점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달리기 트랙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차량이 통제된 도로를 달리며 들리는 것은 다른 참가자들의 발소리와 함성,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격려의 말들뿐이었다. 이 특별한 환경은 단순히 기록을 세우는 경주를 넘어, 달리기 자체가 하나의 축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You did it


하루키의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렇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통한다. 삶이라는 긴 코스를 달리며 맞닥뜨리는 도전과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다음번에는 하프 마라톤이나 풀 마라톤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내가 원하는 만큼만 달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삶의 속도를 정하고, 그 길을 나답게 걸어가겠다는 다짐이다. 달리기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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