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짐 굽는 날

by 별바라기
생김을 구워보자!

우리가 사 남매가 제일 좋아하던 반찬은 김이었다. 지금이야 엄청 부드럽고 고소한 김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어릴 적 먹던 김은 두껍고 거칠었으며, 가끔은 이에 씹혀서는 안 되는 바다의 흔적들이 씹혀 놀랄 때도 있었다. 왜인지 모르나 할머니는 김을 짐으로 껌도 끔으로 발음하셔서 우리를 헷갈리게 하셨었다.


유독 매운 것을 먹지 못했던 나와 막냇동생은 밥상에 김이 오르는 날이 제일 반가운 날이었는데, 식구가 많다 보니 한 사람 당 돌아가는 김의 장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김도 생일날이거나 손님이 오셨을 때나 급히 구워내는 품격 있는 대접 반찬이었다.


할머니는 오늘 김을 구우려고 하신다. 장에서 사 온 두툼한 김이 두 뭉텅이니 나는 한동안 구운 김을 원 없이 먹을 거 같아서 신이 났다. 할머닌 마당 구석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들마루 위에 오봉상(꽃그림이 자잘 자잘 그려진 네 다리가 달린 동그란 상)을 펴고 국사발에다 들기름을 가득, 꽃소금도 한 사발 채운 뒤, 상위에다 김을 펼친 뒤 기름 붓을 들기름을 듬뿍 담가 김에 썩썩 펴 바르시곤 곁에 앉아 있는 내게 소금을 구석구석 골고루 뿌려 달라고 주문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기름을 바르시는 동안 김 끝을 조금씩 떼어먹으며 비릿한 바다의 맛도 보고, 뜨끈한 흰쌀밥에 고소한 김을 반찬 삼아 저녁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 뒤로도 할머니가 기름에 적시는 김은 매번 2톳씩이었다. 누가 그 많은 김을 다 먹냐 싶겠지만, 자취하는 삼촌에게 한 뭉터기 싸 보내고, 우리 사 남매와 산에 가시는 할머니의 도시락 반찬으로는 김이 최고였다. 그리고 그 많은 김은 진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요술도 부렸다.


할머니의 손을 거친 200장의 김이 몽땅 기름 샤워를 하고 소금 분칠까지 끝내면, 내게 오봉상을 번쩍 들어 아궁이 앞으로 옮겨 달라 하셨다. 그리곤 아궁이 깊숙이에서 구들을 데우던 시뻘건 숯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셨는데 그 숯불이 얼마나 강렬한지, 금방이라도 내 발을 잡아먹을 것 같은 파란 혀를 날름거렸다. 할머니는 주변 채비가 마쳐지시면 적쇠에다 김을 넣고 앞뒤로 슬쩍슬쩍 구워내셨고, 할머니의 손이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집안엔 고소한 들기름 냄새와 김 구워지는 냄새가 마당부터 천장까지 차곡차곡 채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쪼그려 앉은 다리가 아파 장작도 깔고 앉았다가 그것도 불편해 솔잎을 담은 포대자루도 끌어다가 앉았다가 온몸으로 지겨움을 표현해도 할머니는 힘을 잃어가는 숯불을 놓칠세라 더욱 손을 빠르게 움직이셨다. 시간이 점점 지나니 적쇠도 시뻘겋게 달아올라 가끔씩 김에 불이 붙어 할머니가 당황해하시며 적쇠를 휘저으시면 나는 그 모습이 우습다고 웃었고, 가운데가 뻥하고 구멍 난 김을 분리해 놓자마자 나는 잽싸게 그 김을 구겨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 나를 보시며 할머니는 짜다고, 물 많이 먹고 밤에 오줌 싼다고 협박도 하였지만 나는 들기름의 반들반들한 느낌이 손바닥 가득 전해지는 것이 참 좋았다. 할머니는 그 긴 시간을묵묵히 김을 다 구워 내셨고, 그날 저녁 기대하던 대로 밥상엔 구수하고 맛 좋은 구운 김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김도 물도 많이 먹은 탓에 저녁을 먹지 못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설날 무렵 남편에게 도착한 건어물 선물세트에 김이 들어있었다. 구운 김, 돌김, 곱창김, 김밥김까지. 하지만 곱창김은 그대로 냉동실로 모셔졌고, 냉동실 문을 열 때마다 나에게 인사하는 김 봉투를 보면서 '언젠간 먹겠지? 먹을 수 있겠지? 먹게 될까?' 나의 게으름을 아는 나이기에 슬슬 불안해질 무렵, 남편이 김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되냐는 찔림의 질문을 해 왔다. 내가 봐도 석 달 열흘을 넘게 짱 박혀 있는 김 뭉텅이들이 남편 눈에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나는 언젠가 먹을 거라며 남편을 안심시켰지만 남편은 나의 말을 그다지 신뢰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아침을 먹으며 "점심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하고 점심을 먹으며 "저녁 뭐 먹지?"라는 같은 질문을 한다. 식구들에게 아무 메뉴라도 말해보라 하곤, 다 안된다고 거절하면서 계속해서 더 많은 메뉴를 말해보라고 말하면 작은아이가 하는 말


"어차피 엄마 맘대로 할 거면서 묻긴 왜 물어"


그러게 말이다. 어차피 냉장고에 든 재료를 감안해, 그들이 말한 최대한 가까운 음식을 할 것이면서 묻긴 왜 물었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밥때마다 "뭐 해 먹나?"라고 고민하던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의 고민에 관심도 없었다. '왜 엄마는 늘 같은 말만 할까?' 그게 내 의문이었는데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의 나이가 되니 그 고민이 얼마나 버거웠을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밥하기 싫으면 피자도 시켜먹고, 치킨도 시켜먹고, 배달의 민족을 맞이하는 편안함도 있지만 엄마가 나 같은 젊은 주부로 살던 그 시절에 열명 가까운 대식구들의 입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그 책임감과 부담감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나의 변론을 조금 하자면 우리 엄마는 고향 지역에서 유명한 손맛을 소유한 능력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무심했었을 수도 있다. 장맛은 대대손손 전해지고 엄마의 손맛은 딸에게 전수되지 않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세상엔 가끔 돌연변이가 있다. 그게 우리 집의 나다.


주말 아침. 갓 한 밥에 김을 싸 먹으며 김 애찬을 하다 할머니가 구워주시던 김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할머니 손맛을 추억하며, 냉동실에서 화석이 될 뻔한 곱창 김의 구원과 나의 도시락 반찬으로 준비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밝히며 캠핑 때나 쓰던 석쇠를 꺼내자 그런 내게 남편은 애꿎은 공기청정기 혹사시키지 말고, 일 만들지 말고, 그렇게나 정 먹고 싶으면 불에 살짝만 구워서 빼빼로 고추 다짐이나 싸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팁을 주었다.


다행이다. 남편 말을 듣길 잘했다. 석쇠로 마른김을 한 스무 장 굽기 시작하니 스멀스멀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부스러진 김 조각들을 청소하느라 싱크대 앞에 삼십 분 넘게 서 있어야 했다. 할머니의 수고로움과 사랑을 몸소 체험해보고 다시금 깨닫는 그런 날이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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