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국시

by 별바라기

7월 말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한주만에 당한 개학 때문인지 아이는 요즘 부쩍 예민해졌고, 나의 예상을 뛰 엎는 음식들을 찾고 있는데 오늘은 영혼의 위로를 위해 칼국수를 먹어야 한대서 장대비를 뚫고 국숫집에 들렀다. 비 때문인지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테이블은 만석이었고 우리 모녀는 기가 막히게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우리 뒤로 들어온 일행에게 "오늘 장사 마감했어요"라는 사장님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우리 모녀는 '정말 다행이지?'

행복한 눈빛을 교환하며 김이 폴폴 나는 칼국수를 영접했다.


"딸. 왜 갑자기 칼국수가 먹고 싶었어?"


"오늘 같이 비가 많이 와서 꿉꿉한 날은 칼국수지 나의 힐링 푸드 중 하나?"


"풉. 니가 무슨 할머니야?"




"야야 누가 콩 깔 좀 갖고 오래이"


"할머이 콩가루?"


"오냐"


나는 부엌 찬장 맨 아랫칸에 담겨 있는 콩가루 봉다리를 번쩍 들고서 스댕 다라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로 갔다. 할머니는 이 스댕 다라가 반죽이 잘 된다고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그래선지 오늘따라 유독 더 반짝거려 보였다. 할머니는 미리 부어 놓은 밀가루에 막 갖다 드린 콩가루와 굵은소금도 넣으시고 주전자 물을 살살 부으며 손으로 휘휘 저어 섞기 시작하셨다.


"할머이 뭐 해묵을라고?"


"국시 할라 그러지. 니들도 애비도 좋아하자네"


"할머이 근데 국수 먹기엔 너무 덥지 않아?"


"그라니 해무야지. 더우도 도망가삐라고, 니 가서 도매하고 홍두깨이도 갖고 온나"


할머니는 오늘도 반죽을 밀어 국시를 썰어내려 하시고 나는 국수를 밀거나 만두를 만들 때마다 펼치는 전용 돗자리를 깔고 관 뚜껑 같이 생긴 긴 도마와 동생 키 보다 더 큰 홍두깨를 가져다 드렸다.

반죽을 끝내신 할머니는 동그란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쓱쓱 밀어 동그란 양탄자처럼 만드셨는데 사실 할머니가 만드시는 국시는 내 입 맛엔 썩 맞지 않았다. 우선 비릿한 생콩가루 냄새가 싫었고 국시보다는 물에 씻어 먹을지언정 꼬불꼬불한 라면이 좋았다. 그리고 최대의 힘듦은 젓가락질의 서툼 보태기 여름날에 먹기엔 꽤나 뜨거운 음식이었다.


할머니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히고 스스슥 소리를 내는 두 손을 모았다 양쪽으로 펼칠 때마다 반죽은 양탄자처럼 점점 커졌는데 딱히 무슨 규칙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할머니는 이따 금씩 밀가루를 한 줌씩 뿌려가시며 홍두깨를 계속해서 굴리셨는데 내가 보기엔 아주 단순하고 쉬워 보였다.


"할머이 나도 한 번만 해보믄 안 돼"


"와 니도 한 번 해보고숩나?"


"응"


할머니가 자리를 내주셨다.


"어어어, 할머이 클났다. 이거 다 붙어버맀는데?"


"눈에 쉬워 보이도 이게 다 요령이 있는 기라"


할머니는 똘똘 말려버린 국수 반죽을 조심조심 떼어내셨지만 빵구가 나자 가생이에 붙어있는 반죽을 조금 떼다가 덧붙이시고 살살살 눌러주시니 빵구난 양탄자는 금세 메워졌고 할머니 손길에 스스슥 소리를 내며 다시 보름달 만하게 커져 있었다.


'똑, 똑, 똑'

반죽을 다 미신 할머니는 반죽을 이리저리 겹쳐서 쌓으시더니 끝부터 능숙한 칼 솜씨로 썰기 시작하시고 넙덕하고 네모나게 접힌 양탄자는 칼집이 나면서 얌전하게 큰 도마 위에 머물고 있고 할머니가 밀가루를 또 한 줌 쥐어 솔솔솔 뿌리시며 국수 끝을 손으로 잡아 흩트리시면 마법 주문을 왼 것 처럼 주루룩 긴 국수 비가 내렸다.


할머니의 국시 요리법은 아주 단순했다.

우선 굵은 며르치를 넣어 물을 팔팔 끓인 뒤 애호박과 파를 썰어 넣고 국시를 빠트리고 휘휘 저어 주면 부르르 걸쭉한 거품이 끓어올랐고 다 익었다 싶으신 그때에 큰 사발에다 한가득씩 떠 주셨는데 희한하게 할머니는 매번 국자를 쓰시지 않고 엄지 손가락이 국수 국물에 빠질 듯 말 듯하는 곡예를 펼치며 국사발로 식구들의 그릇에 담아주셨다.


"할머이 안 뜨거? 국자 있는데 왜 사발로 그래?"


"이래야 푹푹 떠서 뿔 키 전에 빠리 주지"


"그러다 손 디면 우쨀라고?"


"내 손은 억세서 안 뜨구와"


세월의 진보 속에 우리 집에는 관 뚜껑 같은 커다란 도마와 홍두깨를 대신한 신문물이 들어왔는데 동네 부녀회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사신 국수 뽑는 기계였다.

엄마는 말랑말랑하게 해 둔 반죽을 꺼내 가래떡처럼 조물조물 만져 기계에다 넣고 연필깎이 손잡이 같이 생긴 손잡이를 뱅뱅 돌리면 미끈하고 납작한 밀가루 반죽이 밀려 나왔고 그것을 다시 그다음 틀에 넣고 손잡이를 또 돌리면 국수 가닥이 주룩주룩 나오는 정말 신기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넙덕한 밀가루 반죽 위에 주전자 뚜껑으로 콩콩 도장을 찍어 만든 만두피로 만두를 빚었고, 만두를 빚다 지겨워진 나는 만두피를 찍고 난 반죽의 가생이 조각들을 들고 나와 할머니방 화로나 쇠죽 불에 구워 먹기도 했는데 유독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재주 덕분에 반죽을 떨어트려 재 뭉테기의 생 밀가루 조각을 먹는 것인지 고소한 밀가루 과자를 먹는 것인지 수 없었다.


아이가 말한 영혼을 위한 국수

나는 국시를 생각하면 쌩뚱 맞은 추억이 하나 있다.

나의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주말에 나는 뜬금없이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국시를 밀었다. 관 뚜껑 같던 큰 도마도 동생보다 더 컸던 홍두깨도, 국수를 밀어내던 만능 기계도 사라진 지 오래, 나는 흰 달력 종이를 깔고 엄마가 만두를 만드실 때 쓰시는 전용 도마와 작은 홍두깨를 가지고 조심조심 밀가루 반죽을 밀었다. 재료들을 넣고 반죽을 시작했는데 반죽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스스슥 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양탄자는 커졌었는데 나의 반죽은 기대와는 다르게 늘어나는 것 같다가 다시 줄어들었다를 반복했고 종잇장처럼 아주 얇게 밀려야 되는데 전혀 납작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부터 밀가루 반죽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를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새색시 국시 미는 솜씨보래이"


"할머이 쫌 기다리시봐. 내 기계면처럼 뽑아낼 테니, 근데 이거 내 탓이 아니고 홍두깨 문젠거 같아"


"마한 것, 홍두깨 타령은. 시집서 이래 갈키 보냈냐고 숭 먹기 딱 좋을 솜씨여. 그래가꼬 오늘 지녁에 국시 먹겠나?


나는 장비 탓이란 이유를 붙이며 납작해지지 않는 반죽을 손가락 힘으로 늘려보려 했지만 이미 반죽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선지 반죽 가생이가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었다. 더 이상 나의 능력으론 양탄자가 커질 것 같지 않은 빠르고 지혜로운 포기와 함께 그간 할머니와 엄마의 등 너머로 배웠던 것처럼 반죽을 접어 칼로 똑, 똑, 소리를 내며 썰고 국시채에 마른 밀가루를 한 줌 솔솔 뿌려 긴 면발을 기대하며 흔들었지만 너무 야심 찼을까? 기대했던 국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할머니와 부모님, 나는 가락국수만큼 굵은 국시를 먹었고 할머니는


"시집가서 으른들 앞에서 국시 한다고 나서지도 마래이. 니 이래 하면 쫓기 난다."


"에이 할머이는 색시가 이쁜데 쫓아내기야 하겠어? 그리고 이렇게 안 해 먹어 시켜 먹을 거야"


"마한 것, 저 말하는 것좀 보래이 솜씨 있게 맹글어 맛나게 먹을 궁리를 해야지"




긴 칼국수 면발을 고대 유물 발굴하듯 정성스레 집어 올려 호호 불며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 우리 사 남매가 고개를 한껏 젖히고 팔을 뻗어 한가닥 한가닥 호호 불며 입에 골인 시키던 할머니표 국시 생각이 나고, 또 집을 나서기 전 어른들께 해드리고 온 짧닥한 국시도 떠올라 없던 솜씨에 의지만 넘쳤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왜 생뚱맞게 국시 반죽을 밀고 집을 나섰던 것일까? 국시 그릇을 들여다보시며 할머니가 시집서 쫓겨난다 타박했던 일, 뻔뻔하게 시켜 먹을 거라 대답했던 일, 그리고 엄마가 마지막으로 등을 밀어주었던 목욕탕 행까지 기억이 소환되었다.


맛있게 국수를 먹고 있는 딸아이의 등 뒤론 세상을 쪼갤 듯한 빗줄기와 연신 윙크하는 번개와 짝꿍 천둥이의 재채기에 내 마음은 심란한데 태연하게 영혼을 위로하며 오롯이 이 순간 집중하며 즐기고 있는 느긋함에 놀라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국시 한 그릇이 품고 있는 추억들을 소환하며 물음표를 던져본다. 먼 훗날 딸아이도 칼국수를 먹다가 이 폭우 내리던 밤을 기억하는 그런 날이 있을까? 그리고 내가 딸아이의 영혼을 달래고 감동시키려면 맛있는 겉절이와 소고기 꾸미도 곁들여야 하는데 그렇담 또 내가 집에서 칼국수를 밀어야 하나? 그런데 식구들이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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