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산처럼 쌓아 놓은 콩단들을 덮은 파란 갑바천을 감추려는 듯 밤 새 두껍고 하얗게 내린 은빛 서리가 다 녹기도 전인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은 하얀 입김과 함께 서둘러 콩 타작 준비를 하고 계신다.
지금이야 '다다다 다다다' 소리를 내며 농업용 전기와 짝을 이룬 콩 타작 전용 기계가 있지만 그 당시는 온종일 부모님은 어깨가 아프고 멀미가 나도록 도리깨질을 하셔서 콩 타작을 하셔야 했다.
"방에서 뜨시게 손 녹이고 있다가 이따 엄마가 부르면 잠바 입고 털신 신고 나와"
엄마는 우리 삼 남매에게 콩 줍는 지령을 내리시곤 마당으로 가셨고
'휘잉 탁, 휘잉 탁' 아빠와 엄마가 박자를 맞추듯 돌리는 도리깨질 소리가 마당 까득 넘쳐 대청마루를 넘어 우리가 있는 방까지 그리고 멀리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참 지났을까 엄마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우리는 모두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들처럼 채비를 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해가 중천까지 떠오르긴 했지만 뜨뜻한 구들장에 몸을 녹이다 밖으로 나온 온도차에 코와 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찬 공기가 들락거리며 알려주었고 쭈뼛쭈뼛 금세 머리도 시렸다.
마당에 나가니 도리깨가 냅다 때린 딱밤에 놀란 콩알들은 멀리뛰기 선수와 높이뛰기 선수에서 종목을 바꿔 총알처럼 빠르고 잽싸게 날아가 생각지도 못했던 담장 너머에도 있고 점점 허물어져 가는 흙벽 영감님의 품속에 숨은 아이도 있었는데 콩알이 멀리 도망가려는 것을 막으려고 벽까지 끌어올렸으나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낡은 갑바천은 오늘 크게 활약을 하지 못한 듯 보였다.
아직 흰 눈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산골의 겨울은 평지보다 일찍 찾아온다. 며칠 전부터 낮에도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 윙윙 바람은 11월 햇살의 온기를 몽땅 훔쳐가 콩알을 줍고 있는 우리들의 작은 손가락을 바르르 떨게 했고 점점 감각도 둔해지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가 훌쩍, 동생이 훌쩍, 막내가 훌쩍하는 돌림노래 같은 삼박자의 콧물 소리와 아까부터 아슬아슬하게 할머니 코 끝에 매달려 있는 맑은 콧물을 떨구시려 할머니가 코에 엄지손가락을 대시고 '치익' 하고 콧물을 멀리 날려 버리는 모습을 보곤 우리는 눌러 놓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마한 것들 뭐가 그리 우습나?"
"날아가는 할머이 콧물이 웃겨"
"코 안 풀고 사는 사람도 있드나?"
"아 근데 할머이 나 손 시리 죽을 거 같애"
"손 시리면 고만하고 드가래이"
우리는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콩알을 담던 바가지를 한태 모아 놓고 화로가 있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방 화로에선 며칠 전부터 대추차가 단내를 내며 끓고 있었다. 오늘도 은은하게 할머니 방을 가득 채운 대추 향을 느끼며 나는 화로 위 주전자 뚜껑을 슬쩍 열어보았고 동그랗고 시커먼 대추들 옆에 뾰족뾰족 머리털을 한 약초뿌리가 보이길래 얼른 뚜껑을 내려놓았다. 언 몸을 녹이기엔 따뜻한 차 한잔 만한 게 없겠지만 할머니가 일 년 내내 사랑하는 삽주 뿌리는 색상도 맛도 맘에 들지 않아서 나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더 빨리 손을 녹이고 싶은 맘에 쇠젓가락으로 화로의 재가 날리지 않게 깊숙하게 숨어 있는 불씨를 끄집어내었지만 화로 영감도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우리 여다 콩 구워 볼래?"
"언니야 근데 딱딱한 콩이 익겠나?"
동생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불씨가 있으니 지가 언젠간 익겠지 안 익고 배기겠나?"
나는 마당으로 나가 콩을 줍다 놓고 온 바가지에서 콩 한 줌을 집어와 화로의 재를 움푹 파서 넣고 익기를 기다렸지만 점점 더 기운이 빠지신 화로 영감님은 오랜 시간 콩을 품고만 있고, 기다리다 지치기도 하고 동그란 딱지에 홀딱 빠져 있던 우리는 엄마가 점심 먹으라 부른 소리를 듣고야 할머니 방에서 나갔다.
"이 마한 것들, 누가 이래 저지래 해 놨나?"
할머니가 부화가 났을 때나 내시는 그 특유의 말투, 평소보다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이 왜?"
나는 눈치를 보며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고 내 눈에 들어온 처참한 광경.
할머니 방구석에 있던 화로 주변으로 회색빛 재가 한가득 떨어져 있고 아직도 공기 중에 헤엄치 듯 날아다니는 재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퓩' 소리를 내며 터져 올라온 콩 뻥튀기. 그리고 이 난감한 상황에 콧구멍에 주책같이 방문한 구수한 콩 구워진 냄새.
내가 할머니 화로에 묻어 놓고 간 콩알들은 남아 있던 불씨에 은근하게 데워지며 튀겨졌고 결국 폭발을 하며 화로에 있던 재를 방바닥으로 뿌려댔다. 그리고 그 재와 함께 밖으로 날아간 작은 불씨가 할머니의 이불에도 구멍을 냈고 방문도 작게 뚫어 놓았다.
"이 마한 것들. 집에 불날 뻔 했자네."
"할머이 잘못했어. 콩이 이래 날아갈진 몰랐지"
튀겨진 콩이 화로 영감님을 간지른 탓에 화로 영감님의 대포 재채기와 함께 콩과 재와 불씨가 방바닥으로 뿜어졌고 날아간 불씨 때문에 이불 홑겹에 구멍이 나다 말고 꺼진 것은 천만다행! 나도 엄청 놀랐지만 할머니가 더 기함을 하고 놀라셨던 이유는 얼마 전 우리 앞집에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앞집의 삼 남매는 여느 때와 같이 모두 학교에 갔고 아줌마와 아저씨는 경운기를 몰고 먼 마늘밭에 파종을 가셨다. 장시간 비워졌던 집에선 누군가 꽉 닫지 않았던 안방 벽의 작은 창이 바람에 덜컹거리다 열렸고 윙윙 바람이 쏜살같이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화로의 재를 폭죽처럼 방바닥에 뿌리는 바람에 작은 불씨가 솜이불에 떨어지면서 커다란 불쏘시개가 되어 스멀스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지만 작은 창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가 금방 보이지 않았고,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해야 하는 마늘 파종 집중시기였던 터라 허리를 펼 여유도 부리지 못하며 일을 하셨던 동네분들도 지붕까지 불길이 올라오며 하늘까지 치솟은 연기를 보고서야 불이 난 것을 감지하셨다고 했다. 게다가 그 당시엔 이동전화도 없던 시절인지라 당신의 집까지 뛰어가셔서 119에 신고를 하시느라 신고 시간도 지연되었고 면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물을 담은 무거운 소방차가 동네까지 도착하기 까진 소솔치 않게 시간이 걸렸다.
불이 난 것을 집주인 보다 먼저 아신 동네 분들은 양동이와 세숫대야를 들고 뛰어와 우리 집과 옆집 우물에서 물을 퍼다 날르며 진화에 애썼지만 발견한 것도 늦었고 소나무 서까래 밑에 흙벽으로 지어진 집은 너무도 강력한 화력에 활활 타올라 소방차가 와서 물대포를 쏘기 시작하자 엄청나게 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모래로 지은 두꺼비집처럼 금세 폭삭 주저앉았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동네 친구들과 우르르 동네로 들어섰는데 이상한 연기 냄새가 감지되었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매캐하고 고약한 냄새. 솔가지 냄새도 아니고 왕겨 태우는 냄새도 아니고 분명 뭔가 익숙하지 않은 것을 태운 냄새였고 동네 전체에 자욱하게 깔려 있는 연기를 느끼며 부지런한 어느 집에서 일찍 땐 군불에 쓰레기를 태웠을까 상상하며 왔는데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뻥하고 뚫린 시야로 단번에 우리 집이 보였고 나는 그제야 사라진 앞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시커멓게 젖어 있는 커다란 숯덩이들과 아직도 열기를 내며 피어오르고 있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며 열두 살에 느낀 황당함과 공포감은 최고였고, 꺼지지도 않고 하늘로 하늘로 쉼 없이 올라가는 연기를 바라보며 앞집 식구들의 추억과 한이 연기와 함께 하늘로 전달되는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 불난 집이 우리 집이 아니고 앞집이어서 참말 다행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불이난 충격에 눈을 뒤집고 쓰러졌단 아줌마 얘기를 듣고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콩 폭발 사건을 부모님껜 비밀로 해 주셔서 장롱 위에 회초리 세례는 피해 갔지만 할머니는 빵구난 이불 홑청에 천을 대고 바느질 수고를, 나와 동생들은 다시는 할머니 화롯불 안에 아무것도 묻어 놓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서 예전처럼 할머니 방에 마실을 갈 수 있었다.
콩 타작은 며칠에 걸쳐 끝났고 도리깨의 끈질긴 안마를 받았던 콩 섶은 긴 겨울 동안 엄마소가 먹을 식량으로 여미기광에 차곡차곡 쌓였고, 노란 콩들은 풍채에서 한 번 더 샤워를 하고 여러 날을 어른들의 손을 거친 뒤 자루에 차곡차곡 담겨 농협으로 실려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타작이 끝난 뒷설거지까지 말끔히 끝나면 찌그러지고 깨지고 벌레가 먹은 흔적이 있는 콩들은 엄마의 손을 거쳐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다라에서 퉁퉁 불 때까지 기다렸고 엄마는 물을 담은 가마솥에 불을 지피셨다.
"엄마 수남이네 가서 콩 갈아 올게. 불 잘 보고 있어"
할머니와 나는 가마솥 앞에 장작을 깔고 앉아 손바닥을 부채처럼 펼치고 불을 쬐고 있고 금세 콩을 갈아온 엄마는 갈아 온 콩을 가마솥에 넣어 끓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콩물이 끌어 오르자 할머니는 술쩍 슬쩍 찬물을 부어 주시며 콩물이 넘치는 것을 예방하셨고 유심히 가마솥 안을 들여다보시더니 커다란 다라와 자루를 가져오셨는데 그러면 콩물을 퍼내야 된다는 신호였다.
할머니와 나는 마주 보고 자루를 붙잡고 엄마는 가마솥에 펄펄 끓고 있는 콩물을 바가지로 퍼서 부지런히 자루 안에 담으셨는데 다 담고 나면 할머니는 큰 나무 주걱으로 자루를 꾹꾹 눌러 마지막 한 방울의 콩물까지 짜 내려고 애를 쓰셨고 뽀얗게 걸러진 콩물은 다시 가마솥에 들어가 끓다가 할머니가 주걱 위에 올려놓고 살살살 뿌려주는 간수와 만나 몽글몽글 순두부로 변해갔다.
할머니도 아빠도 좋아하시는 순두부 요리. 엄마는 뜨거운 순두부 한 바가지를 따로 퍼 놓으시곤 삼베천을 깔고 가마솥에 안에서 뭉게구름처럼 뭉쳐 치고 있는 순두부들을 담고 두부가 새지 않게 삼베천을 잘 덮어 포갠 뒤 쟁반위에 무거운 양동이로 눌러주고 두부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두부를 했다는 것도 잊을 만큼 놀다가 할머니가 목청껏 내 이름을 부르셔서 가보면 넙덕한 판 두부는 칼 끝을 만나 네모난 벽돌처럼 잘라져 있었고 나는 그 두부를 옆집과 한씨네 할머니네로 임시 마을회관에서 지내고 있는 앞집 식구들에게 갖다 드리고 오느라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운동을 하고 왔다.
엄마소의 영양식
지나간 추석. 친정행에 엄마를 따라 저온 창고에 갔다가 조신하게 모셔져 있는 두부와 비지를 보았다.
"엄마 이 비지는 못 먹어?"
"여름 비지는 소나 주지 안 먹어"
"쫌 아깝다"
"아까우믄 묵던지"
"웃으면서 말하는 거 보니 못 먹는 거구먼"
"비지는 띄우는 게 중요한데 더울 땐 위험해서 안 먹어"
"잘못 띄우면 어떻게 되는데?"
"뭘 어떻게 돼. 식중독이지"
어린날 내가 너무 하기 싫었던 콩 줍는 일.
하지만 콩도 옥수수 못지않은 효자 작물이었다.
콩 섶은 겨울 내내 어미소의 먹이로, 콩은 농협을 통해 팔려 우리 사 남매의 학비로, 실하고 좋은 콩으로 만든 두부는 아니었지만 두부는 우리의 건강식품으로 그리고 비지는 엄마소의 별미로 제공되었으니 참 요긴하지 않은 작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가슴 아프지만 앞집의 화재 이후로 온 동네 사람들은 '불조심'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범 군민들이 되었고 어린 우리들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다.
올해도 콩은 아버지가 평생 일구신 땀과 정성이 깃들어 있는 밭마다 영글어 가고 있고, 또 서리가 내릴 즈음 우리는 콩 타작을 도우러 친정 마당으로 모일 것이다. 몇 년 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없었지만 올해는 갈 수 있을거란 믿음과 그러길 바라고 있다. 이제는 멀미가 나게 도리끼질로 고생하신 아버지 아픈 어깨와 근육통으로 딴딴했던 알통을 주물러 드리며 하하호호하던 시절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고,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아버지의 작은 어깨를 이번에는 꼭 주물러 드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 대신 엄마가 가마솥 수석 요리사가 되셔서 우리에게 두부를 만들어 주고 계신데 오래오래 엄마표 두부를 먹고 싶다는 발칙한 욕심도 부려본다. 그리고 정말 가장 솔직한 진심은 콩농사는 그만 지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