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벼락과 도로 방음벽 사이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자 내 출퇴근길엔 일 년 내내 철마다 정말 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가장 재밌는 것은 토실토실 해진 엉덩이가 돌 틈에 끼어 금방 도망가지 못하는 도시 쥐이고 본인이 놀란 것인지 내가 더 놀란 건지 모를 호다닥 청설모와 그리고 올 1월 초엔 커다란 너구리가 동사된 것을 발견하고 구청을 거쳐 환경 업체에 신고를 하고 출근을 했었고, 얼마 전엔 방 음벽에 부딪혀 명을 달리 한 재색 비둘기 한 마리를 묻어 주고 출근을 했었다.
또 그 오솔길엔 봄엔 개나리, 죽단화, 목련, 산딸나무, 아카시아 꽃이 반겨주고 여름엔 밤꽃과 수국과 칡꽃과 찔레꽃이 가을인 지금은 호랑가시나무와 불그스름하게 익어가는 산딸나무 열매와 그 열매를 먹으려고 온 새들과 그 새를 잡으려는 동네 들고양이들의 집결지이기도 한데 얼마 전 출근길 발 앞에 떨어진 도토리를 만났다.
'여기 꿀밤 나무가 있었나?'
이 길로 다닌 지 일 년도 훨씬 넘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니 소나무 사이에 조용히 숨어 있는 떡갈나무가 보였다.
"야야 누가 내하고 꿀밤 주러 안 갈래?"
"할머이 산에 갈라고?"
반공일인 오늘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우리들에게 할머니가 점심상을 무르시며 물으셨다.
"할머이 어느 산으로 갈 낀데?"
"늬들 따라 나서믄 뒷동산 너매 신재이로 가고 안 간 다한 내 가는 산으로 가지"
파란 가을 하늘 아래로 눈부신 햇살이 소복하게 쏟아지는 날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떡갈나무 열매인 도토리를 할머니는 '꿀밤'이라 부르셨는데 나는 그것이 표준어인 줄 알고 컸다. 하지만 주먹으로 냅다 머리에 멕이는 것이 꿀밤이라 알게 되었을 무렵 나는 할머니가 사용하시는 꿀밤이란 단어가 꽤 매력 있다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꿀밤이라 부르고 있다.
할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오른 뒷동산에서 좀 더 걸어가면 신재라는 산등성이가 있는데 그 산엔 떡갈나무도 뾰족한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밤나무들도 많았다. 하지만 고구마를 캘 때와 밤이 익어가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아는 멧돼지들과 이름 모를 산짐승들의 발자국과 또 그 놈들이 망쳐 놓은 고구마 밭과 땅콩 밭을 보면서 어른들은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으셨고, 그날도 할머니는 우리에게 주변을 잘 살피고 큰소리를 내지 말고 가만가만, 조용조용 밤을 주우라 하셨다.
우리를 따라나선 윙윙 바람 덕분인지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에서 꿀밤 비가 '투둑 투둑' 소리를 내며 내렸고 동생들과 나는 낙엽 위로 떨어지는 꿀밤을 줍느라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꿀밤 줍기가 슬슬 지루해진 나는 좀 더 쉽게 하려고 떡갈나무를 온 힘을 다해 흔들었고 '후두두둑' 소리를 내며 내리는 꿀밤 비에 동생들은 꿀밤을 맞고 놀라고 아파 놀라면서도 뭐가 그리 우스운지 서로를 쳐다보고 웃느라 바빴고 그런 우리를 보고 멧돼지 걱정하시던 할머니도 틀니를 드러내며 웃으셨다.
"할머이 얼마큼 주워야 집에 갈 끄야?"
지겨워진 막내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을매나 주슨나 함 보재이"
우리는 다람쥐 볼처럼 불룩해진 주머니를 비웠고 할머니 다래끼는 금세 묵직해졌다.
"아이고야 금세 마이도 주슨내. 이제 고만 내리 가재이"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신이 나게 집으로 내려왔다.
집 마당엔 할머니가 여러 날 산에서 한 줌 한 줌 주워다 놓으신 꿀밤들이 갑바천 위에서 말라가고 있고 할머니는 오늘 우리랑 주운 꿀밤도 같이 부으셨다. 먼저 일광욕을 즐겼던 꿀밤들은 껍질에 쭉쭉 금이 가면서 속살을 드러내고 있고 할머니는 골고루 마르기를 바라시며 널려있는 꿀밤들을 이따금씩 뒤적여 주셨다.
여러 날의 가을볕에 꿀밤들은 바싹 말라갔고
"야야 이리들 좀 온나"
할머니 목소리에 마당에 나가니 할머니가 꿀밤 널린 갑바천 끝을 잡고 할머니 앞으로 모이라 하셨고 우리는 우르르 할머니 앞으로 굴러가는 꿀밤들과 함께 할머니 코 앞까지 갔다.
"할머이 꿀밤 껍데기 삐낄라고?"
"용하네 니 우째 알았나?"
"히히 꿀밤들이 쪼개져가니 그런 줄 알았지"
할머니는 우리들 덕분에 수북하게 모인 꿀밤들을 바가지로 푹 하고 퍼서 돌절구에 넣으셨고 나무 절굿공이가 움직 일 때마다 꿀밤들은 입고 있던 외투를 벗고 딴딴하고 실한 속살을 드러냈다. 할머니는 돌절구에 다시 바가지를 넣어 찧어진 꿀밤들을 퍼내 다라에 부어주셨고 우리는 외투를 다 벗지 못한 아이들을 찾아 외투를 벗겨주면 할머닌 능숙한 키질로 노란 알맹이들만 남겨 놓으시고 꿀밤들의 외투와 꼽재기들을 거름 터미로 날려버리셨다. 그리고 깨끗하게 분리된 꿀밤 알갱이들은 큰 다라에서 풍덩 물을 만났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 단단하던 꿀밤이 퉁퉁 불고 할머니는 아버지가 새로 장만하신 소 여미기 써는 기계 옆에 장착된 콩가는 깔때기에 꿀밤을 넣고 곱게 갈아주셨는데 양동이에 흘러내린 꿀밤 국물색은 봄에 아빠하고 엄마 소하고 논을 삶았을 때나 나는 엉망진창 흙탕물 색과 비슷했지만 논에 진흙이 가라앉듯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할머니의 손길을 만난 꿀밤 물은 떫은맛을 덜어내며 맑아지고 있었다.
"야야 누가 니야까 하고 싸리채 좀 갖고 온나"
나는 할머니가 꿀밤 가루를 말리시려는 것을 짐작하고 안마당으로 리어카를 끌고 갔다. 그리고 지난겨울 아빠가 산에서 해 온 싸리나무 가지를 끈으로 엮어 만든 싸리나무 발을 리어카 위에 펼치고 할머니가 빨랫줄에 널어놓으신 커다란 천을 그 위에 펼쳐 빨래집게로 구석구석 집어 놓으면 할머니는 다라에서 딱딱해진 꿀밤 가루를 주걱으로 뚝뚝 떼어 덩어리가 지지 않게 계속해서 손바닥을 비벼가며 풀어주셨고, 가루는 가을볕에 일광욕을 마치고 다시 고운 체에 걸러져 깨끗한 봉다리에 담겨 찬장 맨 아랫칸에 조신하게 자리를 잡았다.
22년 엄마가 만드신 꿀밤 묵
그렇게 만들어진 꿀밤 가루는 또다시 할머니의 쉼 없는 노동력을 만나 아들의 생일과 명절 때마다 탱글탱글한 꿀밤묵으로 변신했고, 그 시절 나는 도깨비가 껌뻑 죽을 정도로 좋아한다던 이 묵이 왜 맛있는진 도통 이해할 순 없었다.
한글날과 만난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친정에 다녀왔다. 금요일 밤늦게 도착을 한 탓에 엄마가 이미 묵을 쑤신 뒤라 안타깝게도 과정을 사진엔 담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간 할머니와 엄마가 하시던 과정을 지켜보고 도왔던 터라 어렴풋이 과정은 짐작했지만 토요일 새벽 남편과 함께 두부를 하시는 엄마를 도우며 새삼 느낀 것은 단순히 아는 것과 진짜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몽글몽글 순두부
아버지 생신 덕분인지, 엄마의 솜씨 덕분인지 나는 꿀밤묵도 순두부도 손두부도 먹는 행운을 얻었고
겨울에 쓸 장작도 쌓고 축사 청소도 하고 거미줄도 걷고 들깨도 베고 탱자도 따고 참 다양한 체험을 했다.
온 가족이 모여 당신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는 것이 여전히 쑥스런 소년 같은 수줍은 아버지의 웃음이 빛났고 나는 좀 더 작아진 아버지를 보며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할머니가 늘 아버지 생신상에 올리셨던 임연수와 고등어도 상에 올렸다. 숯불을 피워 사위들이 열심히 구운 생선을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니 까만 생선 봉다리를 들고 장에서 돌아오시던 할머니 모습도 떠오르고 열심히 팔을 저어 묵을 쑤시던 모습도 떠올랐다.
시골엔 한로가 내리기 시작했고 곧 상강도 찾아올 테고 부모님은 가을걷이로 더더욱 바빠지실 것이다. 추석 때 보다 더 굵어진, 점점 더 굵어질 무꾸와 실해지고 있는 김장배추들을 바라보며 '금방 올게' 하는 마음의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멧돼지는 기가 막히게 고구마가 익어가는 것을 알고 밭을 갈아엎어 놓았다. 긴 긴 시간이 지나도 멧돼지 식성은 변하지 않나 보다. 하아 어찌하면 좋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