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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Oct 28. 2023

야나할머니와 수꾸떡

나도 고모다


남편의 고향에서 추석  만났던 수수 밭은 붕붕 소리를 내는 벌떼들이 열심히 날아다녔었는데 다시 만난 수수밭은 머리가 붉어지고 알알이 야무지게 영글어 있었다.


"새떼가 정신없이 들락거리는 거 보니 후딱 추수하셔야겠다. 이 동네는 수수농사는 많이 안 지으시두만 이 댁은 해마다 이 자리에 수수 농사를 지으시네 여보 이 밭이 누구네 밭인지 알아?"


"여기가 아마도 새터마을 사람 밭일걸"


남편이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며 대답해 왔다.


"당신도 수수 타작해 본 적 있지?"


"글쎄 수수는 안 해 본 거 같은데. 당신은 해 봤어?"


"아 또 나의 유년시절과 수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역사가 있지. 햇살은 따뜻한데 손을 놀리기엔 시린 그즈음이었으니 아마 11쯤 되지 않았을까? 그땐 토요일도 학교를 갔잖아. 학교 다녀와서 밥 먹고 와롱이가 돌기 시작하면 그날은 먼지를 옴팡 뒤집어쓰는 날이었는데 머릿속에도 속눈썹에도 먼지가 새까맣게 앉아서 몇 날 며칠 코를 풀어도 귀를 후벼도 검은 먼지가 계속 나왔었어. 그나마 수수 털고 재밌던 일은 수수대를 꽁꽁 묶으면 몽당빗자루가 만들어 지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어. 그걸 들고 할머이 곁에서 겨울 내내 기타 치는 시늉도하고 부뚜막 위랑 쇠죽 간 주변을 싹싹 쓸어 놓으면 얼마나 뿌듯하던지"


나의 주말을 훔쳐갔던 와롱이님

"그땐 몽당빗자루에 꽂혔던 거야?"


"어. 한 동안은 몽당빗자루가 밤에 왕자로 변신하는 상상도 했었지. 근데 수수 농사를 안 지었음 수꾸떡은 자주 안 먹었겠다?"


"수꾸떡? 그런 떡도 있었나? 표준어 맞아?"


"하하하 당신 모를 줄 알고 물었지"


"당신이 한 번이라도 해준 떡이면 기억이 있을 텐데 어감부터 특이한 거 보니 처갓집표 떡이겠고 당신이 의식의 흐름대로 말했을 테니 수수랑 관련이 있을 테고 혹시 수꾸떡이 수수로 만든 떡이야?"


"오~ 그럼 수꾸떡 노래도 알아?"


"수꾸떡 노래도 있어?"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기름이 둥둥 뜨는걸 나 한 숟갈 안 주고 우리 집에 와봐라 수수팥떡 해놨지 주나 봐라"


"엥? 무슨 노래가 그래? 누가 만든 노래야?"


"나도 몰라. 어렸을 때부터 할머이랑 이렇게 부르고 놀았어"


"노래상으론 고모가 아주 나쁜 사람이네. 나도 고모가 다섯 분이지만 야박하신 분들은 아니었는데. 가만있어봐. 근데 당신도 고모잖아?"


"옴마나 그러네. 대박! 나도 고모였어.




"야야 고물이 안 눌러붙게 잘 끓나 보래이"


"어 할머이 안 타고 잘 쫄고 있어"


"고물 뜸 들일 때 딴짓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봐야 된대이"


할머니는 오늘 유독 더 바쁘게 떡 만들 준비를 하고 계시고 나는 연탄불 부뚜막에 쪼그려 앉아 더디게 익어가는 붉은팥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수꾸떡

추석 보름달이 작아졌다가 다시금 꽉 차게 통통해지면 아버지의 생신이 돌아오고 그 통통해진 달이 다시 반쯤 작아질 즈음에 막냇동생의 생일이 돌아오는데 할머니는 오늘 그 막냇동생의 생일떡을 만드시려고 팥을 삶고 계신다. 사실 이 수꾸떡을 만들면서 가장 기쁜 사람은 어쩌면 할머니가 아닌 우리 엄마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 내가 얼추 철이 들었을 때였다.

한 동네 사는 바로 손 아랫 동서는 아들을 줄줄줄 삼 형제나 낳았지만 그녀와 완벽히 대조되게 줄줄줄 딸을 셋이나 낳고 마지막에 출산한 막냇동생이었기에 엄마는 해마다 돌아오는 아들의 생일에 아마 그 어떤 떡이라도, 달나라에 가서 방아를 찧어 온다 해도 신이 나서 다녀오지 않으셨을까 싶었지만 너무도 덤덤한 엄마 대신 할머니가 들뜬 맘으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계셨다.




내가 클 적부터 지금까지 거실에 붙어 있는 가족사진을 보는 사람마다 마치 짠 듯이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부모님께는 "결국 성공하셨군요"였고 우리에겐 "남동생한테 차별받고 치이키며 살지 않았냐?"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전혀 아니라고, 아들 딸 구분 없이 차별 없이 키우셨다였고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 가족구성으로 가장 당황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막냇동생의 결혼식장에 막 도착해서였다.


그날 여자 다섯 명이 미용실에 들러 아침부터 머리 손질을 하려니 엄청 바쁜 토요일 아침이었다. 머리 손질을 마치고 정신없이 한복으로 환복  후 식장에 들어섰는데 막내 이모부가 우리 부대를 보시곤


"아니 조카님들 너무들 하는 거 아니야?"


"이모부 왜요? 무슨일 있어요?"


"아니 동생 결혼식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 누나 셋이서 이렇게 똑같은 한복을 입고 나타나면 신부 하객들 위압감 느껴서 오늘 식 제대로 보기나 하겠어?"


"이모부 그럼 저희 띄엄띄엄 흩어져서 앉을까요?"


"둘째 조카님은 신랑이랑 판박이라 누가 봐도 누나인 거 티 나니까 첫째 조카랑 셋째 조카만 떨어져 앉으면 되겠네"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뼈가 있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이모부의 말씀에 우리 세 자매는 일동 진심 당황하였다.


"언니야 우리 한복이랑 배자랑 괜히 통일했나 봐. 색이라도 다르게 할걸 그랬나?"


"그렇다고 누나가 셋인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오늘 여기 온 사람들 우리한테는 관심도 없어. 걱정하지 말고 치맛단 밟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팔랑귀로 잔뜩 긴장한 나의 흐트러진 한복 맵시를 만져주며 언니가 말했지만 식 내내 나의 심장은 따따블로 쿵쾅거렸다.




시간이 흘러 막냇동생 부부는 2세 잉태 소식과 조카의 출산 소식을 전해왔고 떨리고 설레는 맘으로 도착하니 병실 앞을 지키고 있는 화려한 시아버지 하사표 꽃바구니가 젤 먼저 보였고 미리 도착하시어 싱글벙글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시던 친정 부모님의 환한 얼굴을 보며 조카의 탄생을 새삼 실감했다. 또 산모를 돌보시며 피곤함은 저리 가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계신 사돈어르신들의 안도감 담긴 표정을 읽으며 아직 태지도 다 벗지 못한 쪼글쪼글한 작은 생명이 주는 기쁨과 감사가 얼마나 엄청난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동생 부부의 훌륭한 유전자를 골라 갖고 태어난 조카는 눈을 뜨자 인물이 훨씬 더 출중했고 고개를 가누고 옹알이를 하며 무럭무럭 자라 아장아장 걸음마도 배우고 말도 배워 나갔다. 우리를 "꼬모"라고 부를 땐 어찌나 귀여운지, 그런데 조카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셋이나 되는 고모와 터울이 지는 사촌 누나들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은


"나는 2번 고모야. 기억해 2번"


"2번 꼬모"


그래도 헷갈리는지 조카는 가끔씩 나를 할머니라 불렀다가 누나라 불렀다가 이모라 불렀다가 호칭이 왔다 갔다 하며 웃음을 주었고 또 시간이 흘러 조카에게 남동생이 생겼고 올케는 우리 형제들 중에 유일무이하게 아들을 둘이나 둔 여성이 되었으며 딸만 낳아 눈물짓던 친정엄마는 손녀보다 손자가 더 많은 부자 할머니가 되셨다. 나는 나를 2번 고모라고 조카를 훈련시켜 놓고도 정신없이 나도 모르게 이모라고 하고 2번 시누이라는 것도 깜빡깜빡 잊고 살 때가 많은데 굳이 그 사실을 자꾸만 각인시켜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우리집 안사람(?)이고 사실 그 덕분에 관계의 '역지사지'를 실천하려 생각하며 노력(?)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하게도, 나는 기름이 둥둥 뜨는 삶은 암탉 수탉보다 맛있는 수꾸떡을 해마다 먹고 자랐다.

척박한 땅에 수수농사를 지으시고 방아를 찧어 동글동글 경단을 만들고 팥고물을 묻혀 아침 생일상에 올려주시던 그 정성 가득했던 나는  서걱서걱 씹는 느낌도 싫고 팥죽에 들어가는 찹쌀 경단만치 맛이 없다며 배부른 투정을 부렸었.

더 이상 수꾸떡을 마주하지 않아도 될 시기를 지나 이모가 되고 엄마가 되고 고모가 되어서 조카들과 아이들의 백일상을 마주하고서야 수수팥떡의  의미와 정성을 깨닫게 되었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쑥쑥 크기를 바라는 맘으로 정성스레 만드셨던 할머니와 엄마의 깊은 정성, 사시사철 매번 여유 있게 떡 해 먹을 만큼의 쌀이 없었기에 농사진 곡식을 최대한 활용하며 기념일을 챙겨주시던 어른들의 지혜를 떠올리며 나는 참 편하고 게으른 나를 돌아본다.




 이제는 집안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도 수꾸떡이 올려지는 생일상도 한 동안은 만나기 어렵겠지만

할머니와 엄마가 나를 위해 팥을 삶고 경단을 만드셨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수꾸떡 한 접시 수북하게 만들어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친정 아부지 생신을 하루 앞둔 오늘 수수도 팥도 아직 수확 전이라 핑계김에 이번에도 떡집 사장님 찬스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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