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덕분에 생긴 등산이란 취미. 주말을 맞아 찾았던 청계산 하산길에 금낭화를 만났다.
꽃을 먼저 본 것이 아니라 나물을 먼저 알아봤고, 초록잎 사이에 수줍게 달려 있는 꽃을 보니 얼마나 반갑던 지 한참 동안 꽃을 들여다보았다.
"여보 얘 꼭 국립중앙박물관 갔을 때 신라실에 있던 금붙이 장식 같지 않아?"
"자세히 보니 그렇네"
"당신도 자랄 때 이 나물 먹어봤어?"
"글쎄, 나물은 무쳐 놓으면 다 거기서 거기라 먹었어도 기억을 못 하겠지"
"결혼할 때까지 나는 봄에 이 나물을 엄청 먹었었는데, 달래 다음으로 씩씩하게 올라왔던 애가 얘야. 새순이지만 약간 억센 느낌이 있었던 나물인데, 꽃은 금낭화로 불렀고 나물 이름은 며늘취라고 불렀는데 할머니는 며늘취라고 안 하고 약 나물이라고 부르셔서 나는 이게 어딘가에 꽤 좋은가보다 짐작만 했지 약효에 대해서는 아직도 몰라."
"나물 맛을 기억해? 더덕잎이나 산초 그런 것처럼 향이 있다거나"
"맛은 좀 쌉쌀했던 거 같은데, 내가 봄에만 가끔 해주는 방풍나물 있지? 가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될라나? 근데 나도 맵고 달콤한 양념 때문에 먹었지 나물 자체의 맛은 그다지"
"안 봐도 비디오네. 또 비벼 먹었겠지"
"어떻게 알았어? 혹시 타임머신?"
"아니 나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도 너의 과거는 노노, 지금도 이렇게 말을 안 듣는데 그땐 오죽했을까 그냥 안 볼래"
"이리 와 코 대"
내가 오른손을 까딱 까닥 움직이며 가까이 오라는 손짓과 불끈 쥔 주먹을 남편을 향해 들어 보이자 사람 많은 데서 이러는 거 아니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산로를 내려갔다.
할머니가 봄마다 즐겨 드셨던 이 며늘취는 양지바른 곳에서 유독 빨리 자라났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키가 큰 이파리들을 작은 칼로 살짝살짝 베어냈고, 할머니는 소금물을 팔팔 끓여 데치시고 저녁 반찬으로 준비하셨는데, 어떤 규칙인진 몰라도 나물에 따라 하얗거나, 빨갛게 무쳐내셨는데 며늘취는 항상 빨갛게 무쳐 주셨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양념은 할머니가 살림을 하시던 때나, 엄마가 살림을 하시던 때나, 지금 살림을 하는 나나 같은 항아리에서 꺼내지고 같은 방앗간을 거쳐 제공이 되는데 희한하게 우리 집 냉장고로 들어가는 양념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휴게소에 맛을 놓고 오는지 도통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남편은 가끔씩 장모님이 해주시는 음식을 받아먹지만 말고 손맛을 배우라고 하는데 수학 9등급이 갑자기 1등급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나에게도 꿈도 꾸지 못하는 1등급이 있다.
할머니의 요리법은 이랬다. 파랗게 데쳐진 며늘취를 물기를 적당히 없앤 다음 먹기 좋게 쏭쏭 썰고,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매실진액, 찐 마늘, 간장에 파를 넣고 숟가락으로 양념을 뒤섞어 주시고 며늘취를 넣어서 버물버물 버무리신 다음 들기름을 약간 넣으시고 통깨 비를 내려 요리를 마무리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기미를 하라 분명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맛에 할머니 옆에서 절구에다 마늘도 찧어 드리며 담을 그릇도 들고 대기를 하고 있었고, 나물을 조금 집어 입에 넣어 주시려는 할머니에게 조금 말고 더 많이 달라며 고개를 젖히고 새끼 새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으면 내 입으로 무친 나물을 듬뿍 넣어 주셨다. 그러면 나는 엄지손가락을 할머니를 향해 들어 보였고
"마한년 니는 안 맛있는 게 어딨나?"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애써 감추시며 그릇에 담은 나물을 상위에 올려 두라 하셨고, 그날 저녁 나는 빨갛게 무친 며늘취에 밥을 썩썩 비벼 맛있게 먹고 꿀잠을 잤다.
금낭화를 보고 내려오던 길. 청계산 원터골 쉼터에서 한가득 피어 있는 돌나물을 보았다. 이 나물도 봄에 빼어 놓을 수 없는 나물인데, 사실 우리 동네선, 우리 집에선 이 나물이 너무도 흔해서 그리 매력적인 나물은 아니었지만, 집에 화상 입은 사람이 생기면 이 나물을 뜯어다가 찧어서 진정을 시키는 효자 나물이었음은 기억한다. 지금도 탄천 변이나 아파트 담벼락 밑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는데, 돌나물 꽃이 밤도 빛나게 할 이렇게 예쁜 별 모양의 꽃이었는지 이번에 새삼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애정 했던 이 약 나물을 못 먹은 지 꽤 되었다. 혹시 나물을 먹었음 코로나에 안 걸렸을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보았다. 봄마다 약 나물이 솟아날 때 친정에 가면 할머니 대신 엄마가 무쳐주곤 하셨는데, 그동안은 몇 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시골집엘 가지 못했고 올해도 그랬는데 청계산에서 만난 금낭화처럼 고향집 며늘취도 쑥쑥 자라 지금쯤 이쁜 금낭화를 주렁주렁 달아매고 이 계절에 빛나고 있을 것을 상상해보니 코로나 앓이는 그다지 억울하지도 않다.
앙증맞고 작지만 세련되게 예쁜 금낭화를 보면서, 할머니가 금낭화를 닮았었음을 기억했다. 우리 할머니 그 시절의 김태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참 미인이셨고 고우신 분이셨는데, 그 작은 체구에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할아버지를 대신해 곡괭이 자루를 들고 산에 오르실 수밖에 없으셨던 안타까운 삶을 사셨지만, 그래도 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해 내신 그 생활력은 정말 같은 여자인 내가 보아도 대단하시다.
할머니가 지어오시던 한약방의 한약은 정성스레 달여져 할아버지가 아주 맛나게, 때론 이기적으로 드셨었지만, 할머니는 당신을 위해 한 첩의 한약도 지으시지 못하셨다. 하지만 철에 맞게 돋아나는 나물들과 약초 싹들과 약초 뿌리들을 요리도 해 드시고 차로 우려 드시면서 당신의 몸을 챙기신 것은 정말 다행스럽도록 기가 막힌 지혜였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좀 더 약초에 대해서 많이 배워두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두고두고 남아 있는데 이것도 나의 욕심이겠지?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할머니 생각은 언제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