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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Aug 10. 2022

야나할머니와 철철 바우

수원지가 품고 있는 슬픈 사랑 이야기

아파트 소식에 물탱크 청소가 있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901호 여러분~ 내일 아파트 물탱크 청소한대요. 참고하세요"


나의 말에


"며칠 전엔 엘리베이터 점검하지 않았나? 이번 주가 대대적인 점검 주간인가?"


남편이 말을 이었고


"맞아 나 학원 갔다 오는데 점검이라 해서 계단으로 오는데 땀이 폭포처럼 흘러서 짜증 났어"


"간만에 운동하고 좋았네"


"아니 엄마 가방을 메었는데 어떻게 운동이 되겠어. 가방이 무거워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니까"


"극기 훈련이라고 생각해. 너 체육인이 꿈이잖아"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물탱크 공지를 볼 때마다 내겐 떠오르는 일이 있다. 어떻게 보면 참 순진했고 어떻게 보면 어리석기도 했던 그런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


"니네 동네에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매?"


"뭔 소리래. 우리 동네엔 그렇게 깊은 물이 없어"


"아닌데 내가 니네 동네 살다가 우리 동네로 이사 온 형한테 들었는데"


"니 잠이 들깼나? 뭐 어디서 희한한 얘길 주워들어가꼬"


내가 친구에게 면박을 주자 반 애들이 우르르 모여들었고, 친구는 본인 말이 맞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나는 암만 생각해도 우리 동네엔 내가 수영하려고 막은 도랑물 말고는 깊은 물이 없는데 엄하게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우기며 우리 동네를 몹쓸 동네로 만드는 친구가 얄미워서


"우리 할머이가 동네서 오래 살았으니 물어보는데 만약 니 거짓말이면 나한테 죽는다"


평상시 체육시간마다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던 녀석이었는데 이번에 기회를 잡아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불끈 쥔 주먹을 그놈에게 보여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할머니가 마당 구석 고정석에 앉아 마른 약초를 손질하고 계셨다.


"할머이?"


"와?"


"할머이 우리 동네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어?"


"사람 안 죽는 동네도 있나?"


"아니 내 말은 그냥 죽는 사람 말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


"핵교 잘 댕기 와서 갑자기 죽은 사람 타령은"


나는 학교에서 있던 일을 간략이 말씀드렸다.


"니 동무가 철철 바우 얘기하나 보네"


"할머이 철철 바위가 왜?"


"이 동네에 옛날부터 철철 바우에 대낮에라도 혼자 가지 말라는 얘기가 있자네. 처녀 귀신하고 총각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에이 할머이 귀신이 어딨어. 그럼 진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던 거야?"


나는 친구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가만두지 않겠다 말했던 것이 떠올라 난감해졌다.


"할머이 근데 저수지도 아니고 철철 바위에 그렇게 깊은 물이 있어?"


"몰러. 다들 가지 말라고 하니 내도 산에 갔다가 그 골짜구로는 안 내려오는데 옛날에 시집오니 거기서 처녀 총각이랑 소가 빠져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지"


"할머이 그 얘기 좀 해줘 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할머니한테 바짝 붙어 앉았다.


"옛날에 어떤 집 머슴아 하고 딸네미가 있었는데 둘 다 느므 가난해서 시집 장가도 못 가고 넘의 집 일 해주믄서 살고 있었댜 머슴아는 나무도 해다 주고 똥도 푸고 소도 미기고, 딸네미는 넘의 집 아도 봐주고 빨래도 해주고 그래 입에 풀칠하고 살았대지. 근데 어느 날 둘이 정분이 난기라. 그런데 한동네 연애질이라 말도 못 하고 몰래몰래 만났는데 어느 날 딸네미가 어떤 첨자구 첩으로 팔려가게 된기라."


"할머이 근데 첨자구가 누구여?"


"첨자구? 나이 든 영감"


"? 아가씨를 영감한테 시집을 보낸다고?"


"옛날엔 그런 일이 많았지"


"그럼 영감한테 시집가지 말고 그 머스마랑 살믄 되잖아"


"그랬음 됐는데 머스마가 느므 가난해서 색시를 델꼬올 돈이 읍지. 낼이 인자 혼삿날인데 머스마랑 딸네미가 밤에 만난기여. 같이 도망가자고. 근데 머스마가 시집가서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만 하고 가삣대. 근데 다음 날 새색시 꽃단장 할라고 암만 찾아도 읍네. 근데 어서 찾았는지 아나?"


"어서 찾았는데?"


"글씨 그 딸네미가 철철 바우에 빠져 둥둥 떠 있더래"


"흐헙 우리 동네 철철 바위?"


"근데 더 무서운 건 뭔지 아나? 그다음 날 소 먹이러 간다 나간 그 머스마랑 소 철철 바우에 다 둥둥 떴대지 모나. 그리고 그 뒤부터 철철 바우서 자꾸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가믄 물속에서 손이 쑥 올라와 사람 발목을 끌고 드간대."


다음날 학교에 간 나는 그 친구에게 할머니가 고모네 집에 가셔서 물어볼 수가 없었단 거짓말을 하고 내 눈으로 철철 바위를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결의를 세우고 동네 친구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엔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총 7명이었는데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 동네를 물귀신이 있는 동네로 둔갑시킨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하는다는 얘기로 시작해 친구들에게 철철 바위 조사를 가자고 했고 친구들도 그간 궁금했다며 다 같이 출발했는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선발대에 서서 뭔가 일이 있으면 소리를 질러 신호를 주면 걸어서 따라가던 우리도 동네를 향해 뛰는 계획까지 세우고 마을에서 한참 벗어난 철철 바위 계곡을 향해 갔다.


자전거를 타고 먼저 선발대로 출발한 남자 친구들이 "빨리 와" 하고 지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들렸다. 동네에서 점점 더 멀어질수록 깊은 계곡임을 알려주듯 스산한 산바람이 구레나룻과 목덜미에 부딪혀 시원함과 습한 기운이 한꺼번에 느껴지는데 시원하기보다는 괜스레 기분이 찝찝한 것도 같고 철철 바위를 향할수록 점점 더 크게 들리는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에 '우리 동네에 폭포가 있었나?' 하는 궁금증을 가질 무렵 좁은 숲길을 뚫고 펼쳐진 계곡에 시멘트로 지어져 있는 이끼가 붙어 있는 커다란 시멘트 건물이 보였고 윗부분에 튀어나와 있는 파이프를 통해 꽤 굵은 물줄기가 폭포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허 참...

철철 바위는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두는 커다란 물탱크였다.

물탱크의 높이로만 본다면 꽤나 깊은 수심이겠지만 어디를 찾아봐도 사람이나 소가 빠질만한 공간은 없고 산에서 내려온 물이 물탱크를 채우며 울리는 소리가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탱크 안에 가득 채워지고 남은 물을 밖으로 쏟아내는 파이프의 물이 내는 울림소리까지 더해져 쉬지 않고 들리는 물소리에 귀가 웅웅 거리면서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은 소문이 개뻥이며 시시하다는 말함께 산에서 내려왔고, 나는 좀 어이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이 났다. 그리고 더 신나게 내 큰 눈이 더 커진 일은 무심코 들춘 돌멩이 아래 동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커다란 집게를 한 가재들이 바글바글 숨어 있는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가재를 잡아 등을 따고 풀 고리에 주렁주렁 매달아 신나게 마을로 내려왔다.


그날 저녁. 동네 이장님의 귀에 우리가 떼거지로 철철 바위에 갔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고 나는 아버지께 싫은 소리를 들었다. 온 동네 주민과 동물들의 식수 보관소이며 생명수 출발지인 그곳에 아이들이 가서 놀면 오염의 소지와 경사지인 그곳에서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발견도 어렵다고, 그리고 얼마 전 이웃 동네서 마을 주민들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동네 물탱크에 농약을 풀어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었다는 얘기와 함께 괜한 오해의 소지도 있으니 다신 철철 바위에 얼씬도 말라는 엄포로 아버지의 설교는 끝이 났다.  


다음날 교실에선 자전거를 타고 먼저 등교한 친구가 나를 대신해 반 친구들에게 미리 설명을 한 덕분에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되었고, 손도 안 대고 코도 풀고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나는 며칠은 콧노래를 부르며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을 할 때까지 그곳엔 다시는 가지 않았고 지금도 철철 바위는 친정 마을 주민들과 동물들의 식수 수원지로 쓰이고 있다. 물론 그때는 수도꼭지 틀어 바로 마셨던 물이었지만 이젠 정기적으로 소독하고 탱크도 시멘트가 아닌 전용 물탱크로 바뀌었고, 집집마다 정수기가 설치된 덕에 가끔씩 튀어나오던 올챙이도 물 지렁이를 보게 되는 일도, 먹을까 염려하던 일도 없게 되었다.


동네 생명수 수원지였던 철철 바위의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 두려움과 무서운 말로 그곳을 지키고자 했던 옛날 어른들이 만들어 낸 얘기가 구전되며 살을 붙이다 못해 비만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해가 퍼뜩 되지 않는 것은 수심이 어마무시 깊은 계곡이 아닌 작은 골짜기라 퍽 공감은 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던 것일까? 제대로 길도 나지 않아 접근이 어려워 환상과 두려움을 키운 것도 있었겠지만 낮에도 발목을 잡아 끈다는 귀신이 정말 있다고 믿고 무서웠을까? 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 못다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고자 죽음의 공간을 함께 선택했던 그 젊은 남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나고 자란 친정 동네는 예쁜 동네 이름만큼이나 정 많고 인심 좋은 분들이 지금도 촌락을 이루고 살고 계신다. 내가 굳이 지구가 넓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느라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동네서 뵈어 인사를 드리면 "둘째나?"하고 알아보시고 아직도 "00이 친정 왔나?" 하고 이름을 불러 주시는 반가운 이웃들이 살고 계신다. 동네를 병풍처럼 싸고 있어 새 둥지처럼 포근히 감싸주며 품어주는 산과, 나의 출생부터 성장기와 결혼식, 우리 아이들의 돌잔치까지 지켜보시고 축하해 주셨던 이웃 어르신들이 지금도 나를 기억해 주시고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한해 한해 감사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꿍꿍이를 하나 계획 중이다. 조만간 친정에 가게 되면 철철 바위에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 그때의 가재가 지금도 있을지도 궁금하고 근데 염려가 되는 것이 이장 아저씨한테 또 혼날라나?인데 그렇담 아버지께 여쭤보고 움직여야겠다. 히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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