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손녀 이야기

저 한국사람 맞고요

by 별바라기

아들의 입대 이후에 우리 가족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면 더욱더 악착같이 한상에서 밥을 먹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처음엔 아들의 빈자리가 허전해서 일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두 번째는 깨작거리는 작은 아이에게 한 끼라도 더 먹여야 한다는 나의 사명감이었고, 세 번째는 점점 더 바빠지는 서로의 일상들에 그렇게라도 모이지 않으면 하루에 아침 한 끼 먹고 얼굴 보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밥상머리 시간은 정말 귀한 시간이 되었다. 그나마 학교를 가야 했던 아이는 아침이라도 먹으며 얼굴을 보여 주었는데 여름 방학을 맞고 며칠이 지난 어제부터는 아예 아침 식탁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아이가 학원 수업이 없거나 남편과 내가 정시 퇴근을 하면 저녁을 거창하게 먹는다기 보다는 과일 한쪽이라도 나누면서 식탁에 앉는 시간을 즐기는데 뚜버기인 나는 퇴근길 쏟아진 땀을 씻고 나왔다.


"엄마 컬이 장난 아니야. 누가 엄마 머리를 모태 미용실표라고 생각하겠어?"


젖어 늘어져 있는 내 머리카락을 보고 아이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게 오늘 유독 더 꼬불거려 보이네"


남편도 거들었다.


"자 다들 스톱! 머리카락 얘기 금지! 나 머리카락에 사연도 한도 많은 뇨자야"


깎아놓은 복숭아를 입에 물며 이어진 아이의 말


"아마 엄마 조상을 추적해 보면 고려 벽란도항에 들어왔던 아랍인이나 크메르어를 쓰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몰라. 엄마 이참에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때?"


"너 몰랐어? 내가 재스민 공주의 후예잖아"


나의 대답에 작은 아이가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리며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그런데 본관이 황해도니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겠다. 벽란도 근처잖아"


"아니 이쏴람들이 뼈 때리는 말만 하기 있기 없기? 조심들 해 나 칼 있으마"


내가 눈짓으로 과도가 올려진 쟁반을 가리키자 남편이


"엄마 또 삐치기 전에 우리 조용히 복숭아나 먹자"


"어머낫 무서워라."


작은 아이가 양 열 손가락을 쫙 펼친 채 얼굴을 가리며 손가락 사이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곱슬머리다.

돌사진에도 이렇게 곱실거리는 머리를 하고 있으니 아마 태어날 때부터 이 상태(?)였을 것 같고 자라는 동안 곱슬머리는 너무 거슬리고 성가셨다. 어린 시절 사진 속의 나는 죄다 선머슴아 같은 커트 머리고 언니는 엉덩이를 넘긴 긴 댕기머리였는데 나는 사실 그때 엄마가 우리 자매를 극한 차별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성장해서 알게 된 것은 내 머리카락은 엄마도 어쩔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다듬어 주신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자라면서 지겹게 들었던 얘기는 '튀기'다.

그 단어의 어학적 뜻을 몰랐을 때는 그냥 그냥 넘어갔는데 알고 나서부터는 정말 부화가 차올랐다. 한참 예민했던 시기엔 '정말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을까?'라고 고민했던 적도 있었고, 차고 넘치는 호기심과 쓸데없는 오지라퍼인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주춤하는 습관이 있는데 생김새와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받던 말들이 상처로 남아 있고, 주춤 주춤은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나를 질질질 따라다니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자라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얘기는 '할머니를 닮았네'다.

나는 어떤 면에선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이 기분이 좋았고 어떤 면에선 싫었다. 좋았던 이유는 할머니가 체격이 아담하고 미모가 고우셨기 때문에 나도 미인 축에 끼는 건가? 그런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고 싫었던 것은 내가 할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미움을 받는 것 같은 맘이 들어서였다. 물론 내가 사고뭉치였기에 매를 버는 타입이긴 했지만 공부 잘하고 얌전한 언니는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나는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로 구분이 되어서 나도 가끔은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참 재미있게도 엄마는 세 딸들 중 나에게만 당신의 아주 튼튼한 통뼈를 물려주셨다. 차라리 할머니의 골격을 닮았으면 좋았을 것을...




첫 아이가 백일이 지났을 무렵 햇살도 바람도 좋은 날이기에 집안에서만 끌고 다니던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용기 있게 놀이터에 나갔다.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첫 외출에 긴장과 설레는 맘이 공존했고 다행히도 유모차에 익숙했던 아이는 네 바퀴의 긴 덜덜거림이 좋았는지 금세 잠이 들어 공원 구석에 유모차를 세우고 주변을 살펴보니 공원 반대편 구석 벤치에 첫 돌 정도 지난 아기들을 데리고 있는 엄마들 셋이 모여 웅성거리다가 그중 키가 제일 큰 엄마가 아이를 안고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못 보던 아기 엄마네, 아기 몇 개월 됐어요?"


서글서글한 인상과 목소리를 가진 엄마가 유모차 안에 자고 있는 아이를 세심히 들여다보며 물어왔다.


"네 4개월 됐어요"


"아 그렇구나, 어디 이 근처에 사세요?"


순간 나는 속으로 '왜 자꾸 묻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근처에 산다고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런데 대화를 더 이어갈 것 같았던 그 엄마는 나와 아이를 한 번 더 살피곤 일행에게 돌아갔고 그 일행은 공원을 바로 떠났다. 나는 좀 더 앉아 바람을 쐬다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에 남편과 집 근처 대형마트에 기저귀를 사러 갔는데 누군가가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모지인 이곳에서 누가 나에게 인사를 하겠냐 싶어 자세히 듣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 진열된 물품들에 혼이 빠져 있는 내 어깨를 누군가가 톡톡하고 건드려 쳐다보니 그 아기 엄마였다.


"어머 여기서 또 보네요. 저 기억하시겠어요?"


"아, 네 그때 공원에서 뵜었던 분이시죠?

안녕하세요?"


"아까 주차장에서 본 게 엄마 맞는구나. 시력이 좋지 않아 확신이 안 섰어요. 아 옆에 분이 남편?"


곁에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까지 아는 척을 하자 남편은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했다.


"오늘 기저귀 세일한대요. 맛있는 것 많이 사시고요. 나중에 공원에서 또 만나요"


키가 큰 씩씩한 엄마는 저 멀리서 본인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쪽을 향해 뛰어갔다.


"벌써 아는 엄마가 생겼어?"


"응, 지난번에 첨으로 공원에 갔었다고 했던 날 잠깐 만났던 엄마"


"아줌마 친화력 거침없네. 꼭 누구처럼"


나는 어벙 벙한 이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고 있는데 놀리는 남편의 말에 눈을 흘겼다.


유리창을 깰 기세로 퍼붓던 태풍이 지나가고 화창해진 날씨에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 나갔다. 공원을 들어서며 보니 전에 만났던 그 엄마들 셋이 먼저 와 있는데 마트에서 봤던 그 엄마가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게 보여 나는 그 무리를 향해 목례를 하고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휴, 왜 그동안 놀이터에 안 나왔어요?

기다렸는데"


마트에서 만났던 엄마가 말했다.


"네? 저를 기다리셨어요?"


"그때 마트에서 연락처라도 알아 놓는 건데 못 물어봐서. 우리 여기 매일 나오는데 아기 엄마도 나오라고요. 애들도 엄마들도 다 비슷한 또래인 거 같으니 친구도 하고"


하아... 엄마가 된 후 첨으로, 갑자기 생긴 성인 친구 셋. 언젠가 친정언니가 문화센터든 교회든 아줌마들 잘 구분해서 사귀라 했던 당부가 떠올랐고 나는 유모차 손잡이만 만지작 거리며 서 있었는데 거기까진 참 괜찮았다.


"우리 그때 공원서 첨 만났을 때 아기 엄마가 억양이 좀 이상해서 조선족인 줄 알았잖아."


"호호호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우리 그때 아기 엄마 생긴 것도 그렇고 말투도 그래서 조선족 아니면 외국인인 줄 알았어요"


아니 기분 나쁜 소릴 해놓고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니, 본인들이 말해 놓고 또 웃기는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고 얼굴이 후끈거린 나는 때마침 칭얼거려주는 아이를 핑계 삼아 집으로 돌아왔다.


"전에 마트에서 봤던 엄마 생각나?"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다.


"한 번 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 그때 누가 인사를 했던 건 기억해 그런데 왜?"


"오늘 그 엄마를 공원에서 또 만났거든. 근데 내가 조선족이거나 외국인인 줄 알았대"


"우리 색시 젤 듣기 싫은 소릴 듣고 왔네"


"아니 내가 기분 나쁜 건 생긴 거나 말투가 아니라 조선족이고 외국인이면 친구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때 말 걸어 놓고 그냥 다 사라진 게 찜찜했는데, 왜 국적을 판단하고 친구를 해주니 마느니 하는 거야. 마트에서 당신이랑 나 한국 사람인 거 확인하고 친구 하자 한 거잖아"


"그럼 친구 하지 마. 안 만나면 되지."


"더 큰일은 뭔지 알아? 그 엄마 우리 앞 건물에 살더라"


언젠가 가족 넷이서 캄보디아로 여행을 갔었다. 출국 전부터 남편은 꿀 먹은 뭐처럼 변해 있을 나를 위해 아이들에게 절대 엄마의 말을 대신해 주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고, 나는 걱정마라 큰소리치며 여행 가기 한참 전부터 기본적인 인사며 물건 값을 흥정하는 말을 달달달 외우고 갔지만 막상 그곳에선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족들의 꽁무니만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런데 여행에서 더 공포였던 것은 어디를 가나 있는 중국사람들이 나를 현지인으로 착각해 말을 거는 것이었고, 더 황당했던 것은 한국인 관광객조차도 상가 안에서 기웃거리는 나를 현지 상인으로 보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처음 생겼을 땐 가족들은 배꼽을 잡고 웃다가 점점 더 반복되는 상황에 어떻게 좀 해보라 했고, 내가 내린 처방은 하루 종일 절대!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지 않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여행 사진들을 폴더에 정리하다 보니 나 때문에 잘 나온 가족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면 참 고왔던 분이란 기억과 할머니가 곱슬머리가 아니라 직모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바람이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할머니에게 전수(?)된 곱슬머리와 사투리 때문에 살아오면서 오해와 놀림도 많이 받았고, 때론 그 말투가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도 주었지만 경기도민이 된 지 20년도 훨씬 지났으나 절대 변하지 않는 말투와 아무리 비싼 값을 주고 좍좍 펴도 다음날이면 다시 꼬부라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바꾸고자 했었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자유로워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까? 아침마다 드라이기, 매직기, 고데기까지 동원해 머리카락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언젠가 과하게 힘을 주다가 열을 이기지 못한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끊어져 나간 적도 있었는데 덜 혹사시켰다면 지금 내 머리카락은 몇 가닥 더 풍성하게 남아 있을까? 그래도 참말 다행인 것은 지금은 이렇게 주어진 대로 순응하면서, 아침마다 머리카락에서 더 이상 연기를 뿜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 주말에 미용실 다녀오셨나 봐요? 너무 잘 어울려요"


"잘 어울려요? 고맙습니다."


파마를 안 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월요일 아침 급하게 출근하느라 덜 마른 머리카락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눈이 마주친 동료가 관심을 가지고 말해주니 이것 또한 고맙다. 그리고 그날 오후 사무실에는 사자 갈기 같은 자유로운 머리카락을 진정시키고자 사무용 노란 고무줄로 머리를 동여 멘 야나할머니의 손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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