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 건물의 복도나 산책로, 일직선의 담벼락을 따라 걸을 때 나는 눈을 감는 버릇이 있다. 내가 과연 얼마 큼을 걸을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시작한 도전이었는데 처음 시도를 하던 날 눈을 감고 몇 발자국 걷자 내 몸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느낌과 눈을 감은 시간에 비례하게 가속도로 불어나는 두려움에 금방 눈을 뜨고 말았다.
겨우 몇 미터, 그 잠깐의 체험인데 손바닥과 이마가땀에, 등도 뜨거워졌고 그래도 이왕 해 본거 나를 더 시험해 보자 시도를 해 봤으나 걷는 길이는 몇 발작 늘어났지만 눈을 뜨고 보면 가고자 했던 방향과는 많이 어긋나 경로이탈한 나를 보고 '이것이 진정한 갈지자로 걷는 것이구나' 혼자 웃었다.
언제쯤이면 한 번에 성공할까?
일터에 오가는 길에 만나는 이 곧은길은 발바닥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장소이다.
심호흡을 한 뒤 어깨를 펴고 눈에다 직선길을 담은 뒤 눈을 감고 조심스레 발을 딛는다. 그 간 발바닥에 새겨 둔 맹인 안내용 보도블록의 느낌을 최대한 느끼려고 걸어보지만 이것도 신발을 갈아 신으면 느낌이 줄어들어 한 날은 씩씩하게 걷다가 오른쪽 보호 난간을 배로 밀어버린 적도 있었다.
어둠이 어수룩하게 깔린 어느 날 남편과 산보를 나갔다. 또 시즌이 돌아온 건지, 우리 동네 보도블록의 사용기한은 대체 얼마인지,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시 까는 작업으로 인도는 울퉁불퉁 비포장 길로 변해 있었고 군데군데 쌓아 둔 벽돌 무더기를 보며 괜히 이 길로 들어선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나 눈 감는다."
동네 중심점 같은 교차 건널목을 건너자 남편이 말했다.
우리 부부는 걸을 때 번갈아 눈을 감고 걷는 연습을 한다. 한 날 남편이 눈이 아프다며 눈에게 휴식 시간을 주겠다고 본인을 잘 인도해 달라 한 것이 시작이었고 누군가를 인도해 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단 것도 알게 되었다.
"기분 탓인가? 왜 자꾸 도로 쪽으로 미는 느낌이 들지?"
"걍 기분 탓이야. 나 못 믿어? 슬마 내가 당신을 도로로 밀기야 하겠어"
"응 당신은 밀고도 남아. 어 이거 이거 차 소리가 엄청 가까이 들리는데"
"히히 소머즈 눈치챘구나? 이 시끄러운 와중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지금 교촌치킨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불법 주차 중이야. 근데 여보 빨리 눈 떠. 자전거 도로로 꼬맹이들 부대가 오고 있어"
"많이 걸은 줄 알았는데 이만큼 밖에 못 걸었네. 눈은 편해졌는데 대신 귀가 열려 먹먹해"
남편이 코도 쥐어보고 양쪽 귀를 막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이런 걸로 장애체험을 했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말 못 하고 귀가 안 들리는 건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눈이 보이지 않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인 것 같애. 어둠도 이래 답답한데 나중에 노화까지 겹쳐 시력이 더 떨어지면 어떻게 살지?"
"그땐 더 좋은 안경이 나오겠지"
"오호 당신 똑똑한데"
"오늘 비가 한 차례 지나간댔으니 우산 꼭 들고가래이"
아침을 먹는데 할머니의 잔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학교엘 갔고 결국 마지막 교시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야 이경은 니네 엄마 오싰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 유리창 맨 뒤로 어떤 아줌마가 목을 길게 하고 교실 안을 들여다보시는 게 보였는데등에 애기를 업고 얇은 담요를 뒤집어쓴 걸로 보아 겨울에 동생이 태어났다는 경은이네 엄마 같기에 맨 앞줄에 앉은 경은이를 불러줬다. 엄마를 본 경은이의 환한 웃음, 경은이를 본 아줌마의 반가운 웃음, 쏜살같이 엄마에게 뛰어 나간 경은이가 조심조심 담요를 살짝 들춰 엄마 등에서 자고 있는 동생을 보더니 퍼데기에 살짝 튀어나온 작고 동그란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곤 엄마랑 함께 우산을 쓰고 운동장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혹시' 하고 교문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내가 아는 우리 동네 어른들 얼굴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속으로 괜찮다고 했지만 경은이가 엄청 부러웠다.
"야 니도 우산 없나? 비 마이 오는데 우리 누구한테 돈 빌리가꼬 뻐쑤타고 갈래?"
한 동네 사는 정숙이가 내게 물었다.
"아니 나는 그냥 비 맞고 갈래.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믄 집에 가고도 남어"
"비가 차굽지 않을까? 감기 걸리믄"
"에이 겨울도 아인데 뭔 감기가 걸릴라고. 나는 70원 있음 꽈자 사 묵는다. "
"그래 그냥 걸어가자"
우리는 한 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리려고 약방 앞으로 몰려가는 아이들과 점점 멀어져 집을 향해 걸었는데 처음엔 차갑던 비가 점점 따뜻하게 느껴지다가 다시 춥게 느껴질 무렵 동네 입구에 들어섰다.
동네 초입에 사는 정숙이와 헤어져 한참을 더 걸어온 나는 바깥 마당에 들어섰는데 니야까가 없는 것을 보니 부모님도 비를 맞으며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귀가를 알리고 싶어 대문간에 들어서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기척을 냈다.
"학교 다녀왔습니돠아~"
그리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할머니 방 앞으로 냅다 뛰었다.
"하라부지. 왜 이러고 있어?"
맬발의 할아버지는 비가 고인 시커먼 마당에 하얀 장수풍뎅이 애벌레 마냥 웅크리고 계셨는데 옥색빛 나는 한복은 흙탕물을 쫙쫙 빨아 당기는 중이었고 마치 진흙탕에서 목욕을 한 멧돼지처럼 온몸과 얼굴, 귓속, 수염에도 온통 다 흙 투성이었다.
"니 누구나?"
내가 젖은 땅바닥을 베개 삼아 누운 할아버지 머리를 안아 올리자 손톱에 흙이 박힌 하얀 큰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내 어깨를 잡으시더니 기운은 없지만 반가운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여 할아버지. 집에 아무도 없어?. 할아버지도 나처럼 비를 쫄땅 맞았네?"
"니도 비를 맞았나? 고뿔 오믄 우쨀라고. 내 빈소에 가다 자빠졌는데 어지루와 몬 인나고 있다. 니가 내 좀 일으키다오"
나는 할아버지를 일으키려고 하였지만 할아버지는 꿈쩍도 않는 갓 벤 은행나무 둥치 같이 무거웠고 비를 맞고 덜덜 떨며 걸어온 나도 점점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할아버지한테서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났는데 나는 그땐 그 냄새가 뭔지 알지 못했고, 내가 할아버지를 계속해서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던 한참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어쩔 기운도 없어 다시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되셨을 무렵 다행히도밭에 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아빠는 할아버지 등 뒤에서 양팔을 뻗어 겨드랑이 사이로 양손을 집어넣어 할아버지를 안았고 엄마는 할아버지 두 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 수돗가에 앉히신 다음 펌프질로 물을 끌어올려 잔뜩 묻어 있는 흙을 닦으셨는데 처음엔 뜨뜻한 물이 나오던 펌프는 아빠의 급한 손놀림에 놀란 것인지 빨간 고무 다라 한가득 하얀 기포를 품은 찬물을 토해 냈고, 하얀 밤톨 같은 머리에도 검버섯이 가득한 할아버지는 시커먼 입술을 바르르 떨고 계셨는데 할아버지가 온몸을 떨 때마다 꼬깃꼬깃 접힌 쭈굴쭈굴한 뱃살도 같이 움직였다.
다음날 여느 날과 똑같이 정숙이네 집에 학교 가자 들렀는데아줌마가 정숙이는 감기에 걸려 학교에 못 간다고, 니는 괜찮냐고 물으셨다. 나도 으스스 춥고 콧물이 들락날락하긴 했지만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줄 알고 아픈 거 같단 소리도 못했는데정숙이는 늦둥이 막내라서 그런가특별대우를 해 주시는 것 같아 나는 그것도 부러웠다. 하지만 정작 아픈 것은 정숙이뿐이 아니었다. 그날 학교에 다녀오니 할아버지가 열이 펄펄 끓는다며 목이 늘어진 난넹구에 짧은 바자마 바지만 입고 누워 계셨는데 할머니 말씀으론 할아버지가 자꾸만 헛것이 비는지 손을 내저으며 증조할마이를 부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무리 닦고 닦아도 할아버지 귓구녕과 콧구녕에서 계속해서 흙이 묻어 나온다며 닦아 주고 계셨는데 할아버지는 그 사건 후 다시는 방 밖으로 나오시지 못했고 한 달쯤 지난 새벽에 영면하셨다. 그리고 그 해의 이르고도 긴 장마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
산에서 소를 먹이는 아빠를 부르러 뛰던 일, 동네 어른들 다리 사이로 보였던 검버섯이 가득했던 할아버지 마지막 얼굴, 고양이를 데리고 옆집 문간방에 머물던 일, 사이다 몇 병을 꺼내왔지만 뚜껑을 따지 못해 쇳네 나는 초록색 병을 뜨뜻할 때까지 품고 있던 일, 어른들 다리 사이로 보였던 염습하던 할아버지 발, 노란빛 한복에 갓을 쓰고 계셨던 할아버지의 영정사진. 상엿집에서 꺼내와 삐걱대는 나무를 조립하고 알록달록 꽃을 달던상여, 하얀 운동화와 하얀 수건을 나눠 두른 동네 아저씨들이 방울을 흔들며 선창 하는 남수네 할아버지 목청에 맞춰 상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한 목소리로 연습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고,다음날 촌스런 색을 한 알록달록한 과자들과 과일들이 얹힌 큰 상 옆에 얌전히 놓여 있던 뗏목 같던 상여 나무틀 위로 안방에 펼쳐져 있던 까만 병풍 뒤에서 꺼내 온 커다란 나무 상자를 얹자 덩그러니 옆으로 떨어트려 놓았던 꽃이 달린 상여 뚜껑을 아저씨들이 번쩍 들어 나무 상자가 보이지 않게 덮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모할머니들과 이모할머니, 고모들이 "아이고아이고" 마치 여름날 참매미떼 같이 돌림노래도 아닌 것이 합창도 아닌 소리를 내는 것을 나는 신기한 듯, 남의 집 일 구경하듯 지켜보다 학교엘 갔고 그날 목이 터져라 구구단을 외웠었다.
지금도 눈을 감고 걸으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애당초 맹인이셨다면 기대도 없고 포기하고 사셨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멀어져 버린 눈으로 어둠 속에 사셨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할머이만큼 좋은 추억은 없지만 뿌연 백열등과 지지직거리는 라디오를 벗 삼아 하루종일 캄캄한 시간을 보냈던 할아버지의 중년부터 노년까지의 삶은 '감옥살이었겠구나' 하는 측은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아주 말을 안 듣는 청개구리기도 하셨다. 절대 술을 드시면 안 되는데 마실 온 친구분들을 꾀여 한 잔 두 잔 받아 드시고 거나하게 술이 취하시면 장에 나물 팔러 가는 할머니를 바람난 여편네로 의심해서 서럽고 억울한 할머니랑 목청껏 부부싸움을 하셨고 할아버지는 불리하다 싶으면 으례히 곁에 있던 물건들을 마당으로 집어 던지셨는데 나는 그 때 요강이 마당에 떼굴떼굴 굴러 가는 것이 정말 우스웠다.
그 뒤로 점점 쇠약해 지신 할아버지는 커다란 한복 바지에 배뇨 실수가 잦아지면서 전세가 역전되어 할머니의 잔소리는 분노와 화로 치솟았다가 어느샌가 당신도 포기하신 것인지 묵묵히 침묵으로 도랑에서 옷가지들을 빨아서 오셨고, 마당을 가로질러 서 있던 빨랫줄엔 비가 오는 날 빼곤 항상 할아버지의 옷가지들이 빼곡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할머니의 오물 묻은 옷을 세탁하면서 그 비 오던 날 할아버지한테 나던 이상한 냄새가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남편의 팔을 지팡이 삼아 붙잡고 걸으니 감은 눈 속으로 할아버지의 하얀 밤톨머리와 초점 없던 눈이 생각난다. 내가 손뼉을 치며 나 어디 있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방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면 마치 두 눈으로 보고 계신 것 같이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맞히시던 능력은 시력 대신 주어진 청력이란 선물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할아버지를 깜깜한 세상 속에서 살게 한 몹쓸 당뇨병. 그리고 굳이 내 아버지에게도 유전된 몹쓸 당뇨병.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해마다 건강검진에서 빨간불이 들어오는 나의 공복혈당 수치. 그리고 올해 또 예약된 건강검진. 아직 젊어서 괜찮을 거라 위로하고 살았는데 대사증후군 대상자 어쩌고 날아온 우편물과 좋지 않은 시력 보태기 작년과 다르게 찾아온 노안에 적잖이 당황하였고 혹시나 나도 나중에 눈이 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도 들여다 보게 되었다. 하지만 걱정은 미리 사서 하지 않는걸로다.
눈을 닫으니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선명한 소리들이 크게 와서 박힌다. 내가 평소 소음이라 지칭하던 소리들 마저도 반가운 소리들로, 남편의 앙상한(?) 팔뚝도 든든히 느껴지는 밤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