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형민이 장인어른 마지막 면회 간다고 하던데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이제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병원서도 준비하라고 했다는데"
"그래도 많이 버티고 계신다. 의학의 힘인지 사람의 의지인지 알 순 없지만"
"많이 버텨주고 계시지. 몇 번 고비가 있었잖아. 내가 얼마 전에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 편을 봤거든. 진짜 눈물 나더라"
"어떤 사연이 나왔는데?"
"임종을 앞두고 숨을 끝까지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대. 왜 그런지 알아?"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느라?"
"맞아. 대부분 임종자들이 그렇대. 어떤 아저씨가 젊었을 때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사셨나 봐. 그런데 간호사가 지켜보기에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더래. 그래서 아내가 보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수소문을 해서 아내를 찾았대. 다행히 아내가 면회를 와주었고 아저씨는 아내 면회를 받고 얼마 안 있다가 숨을 거두셨는데 눈가에 눈물이 또르르 흐르더래"
남편의 말을 듣던 내 눈에도 눈물이 차 올랐고
"그리움은 죽음도 비켜가게 하나 봐, 형민이 장인어른도 그러실 테고"
그 말에 고여있던 나의 눈물이 '툭'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며 흘러내렸다.
"할머이 아침 먹고 머리도 좀 자르고 목욕도 하자"
할머니 아침 식사를 돕고 있던 내가 말했다.
"와? 마이 덥수룩하나?"
할머니가 굳은살 가득해 잘 구부러 지지도 않고부어 있는 투박하고 작은 손으로 당신의 짧은 머리를 쓱쓱 소리 나게 만지시며 물으셨다.
"아니 덥수룩한 게 아니라 더 이뻐지라고"
"죽을 날만 바래고 있는 게 이삐져서 모할라고?"
"이쁘게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동생이 말을 거들자 할머니는 틀니를 빼 쪼글쪼글 주름이 가득한 입술 사이로 잇몸 드러내며 웃으셨다.
할머니는 팔 골절로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평생 길러 똘똘 말아 은비녀를 꽂고 있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르셨다. 팔을 다치셔서 감고 말리는 것도 일이었고 가녀린 목이 지탱하기에 머리 무게도 무시하지 못했다. 뒤통수가 가벼워진 할머니는 처음엔 엄청 허전해하시다가 나중엔 머리 감기도 편하고 어깨도 덜 아프다며 홀가분해하셨는데 나는 커트머리의 할머니가 어딘가 낯설고 어색했다. 아침상을 물린 뒤 동생과 나는 할머니 머리를 다듬어 드리고 목욕을 시켜 드렸는데 할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가녀린 분이셨다.
"할머이 밥을 더 많이 먹어야겠어. 살이 하나도 없잖아"
"밥 마이 무믄 똥만 더 싸지. 똥 싸서 뭉개면 니 애비 애미만 힘들어지지"
언제부턴가 당신이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신 할머니는 친정행을 한 우리들의 눈치를 보셨고 어색해하시는 것도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친정에 갔을 때 할머니는 진짜 누워서 대소변을 보고 계셨고 나는 엄마의 주문으로 챙겨간 성인용 기저귀를 할머니방에 쌓아 놓고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는 할머니 옷가지들을 수돗가에서 빨아 옥상 빨랫줄에 널고 돌아왔는데
할머니는 그 기저귀를 다 쓰시지도 못한 한 달 남짓 뒤 산타할아버지가 두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도 미리 다녀가셨고 오늘 밤 우리 집에도 오실 거라며 두 아이들이 들떠 있던 바로 그날 점심 무렵 할머니가 소천하셨다는 친정엄마의 전화를받았다.
이미 할아버지와 외조부모님과의 이별을 겪었던 나였지만 할머니와의 이별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덜덜 떨며 진정되지 않는 손으로 가방을 꾸리고 출발을 했고,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는 것보다 갑자기 외가에 가서 더 신나 하는 두 아이들에게 왕할머니가 천국에 가셔서 축하해 드리러 가야 한다고 설명을 해주고 창 밖만 바라보는데 지나쳐 가는 가로수 한그루 한그루 마다 할머니랑 있었던 추억들이, 미련들이 떠올라 자꾸만 눈물이 났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며 손을 꼬옥 잡아 주었고 그 온기 덕분에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어느새 친정 동네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영정사진 속 할머니는 나를 보고
'마한 것 인제 왔나?'
하고 눈인사를 하며 맞아 주셨다.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고 할머니를 위한 추모 기도를 드린 뒤 먼저 도착해 계신 친지들과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서잔심부름을 거들었다. 그리고 입관예배를 마치고 입관식에 참여하려 안치실로 들어서는데 사촌 오빠들과 새언니들이 눈짓을 주고받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순식간에 사라졌고 할머니와 살았던 우리 남매들만 할머니를 마주하게 되었다.
썰렁한 온도를 느끼며 만난 할머니는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주무시고 계셨다. 입관 예식에 따라 장례지도사의 손길에 이별 채비를 하고 계셨고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장례지도사가 마지막 인사를 하라 주문하였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엄마, 친지 어른들이 먼저 이별 인사를 하시고 나와 동생들 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차디 찬 할머니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좀 전에 장례지도사가 할머니 얼굴에 발랐던 로션 냄새가 소독약 냄새랑 섞여서 코로 느껴지는데 할머니 호흡과 함께 할머니 냄새도 함께 떠나갔구나 새삼 실감이 났다.
"할머이 천국 가서 아프지 말고 편하게 잘 있어. 할머이 사랑해"
"할머이 사랑해 고마웠어요."
동생과 나의 눈물이 할머니 얼굴로 두두둑 떨어지자 장례지도사가
"눈물이 고인에게 떨어지면 맘 편히 못 떠나니 유족분들 눈물은 그만 떨어트리세요"
하아... 이건 또 뭔 소린가. 나도 통제가 안 되는 눈물을, 이제는 다시는 못 볼 할머니에게 인사 좀 하겠다는데 고인 운운하면서 굳이 입관식을 서두르는 장례지도사의 말에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할머니 장례식은 겨울날의 나의 가슴을 관통하는앞산만 한 찬바람과 속시원히 우시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흰머리 위로 쌓이는 눈발과 섞여 진행되었고 할머니는 '보고 숩지'라고 그리움을 전했던 할아버지 곁에 묻히셨다.
남편이 말해준 임종 직전에 눈을 쉽게 감지 못하는 사람들...
아버지께 전해 들은 할머니의 임종 모습을 떠올리며 혹시 할머니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진 않았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할머닌 아버지 품에서 스르르 잠을 주무시 듯 고른 숨을 쉬시며 마지막 호흡을 멈추셨다 들었는데 당신이 제일로 의지했고 사랑했던 아들의 품에서 노모는 어떤 맘으로 긴 잠을 청하셨을까?
항상 "괜자네 걱정 말으"란 말로 씩씩하게 우리를 다독이고 이끄셨던 아버지가 할머니의 입관식에서 수의를 입은 노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오열하시던 모습이, 하관식서 울음을 참으며 삽으로 흙을 뿌리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나는 그날 아버지의 눈물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눈물이 란 걸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 같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모습으로, 나의 모습이 우리 아이의 모습이 될 날이 올 것이기에 지금은 생각만으로도 겁도 나지만 행복한 이별은 아니더래도 한은 남지 않는 이별식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지금부터 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할머이 덕분에 지금 이렇게 이야기보따리가 가득한 추억 부자 손녀로 살고 있음에 참 감사한 오늘이다.
22년 9월 4일 조문 다녀오다 만난 의암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8월에 써 두었었는데 오늘 9월 4일 형민 씨의 장인어른은 영면하셨고 저희 부부는 왕복 7시간을 달려 영면하신 분의 추모와 유족을 위로해 드리고왔습니다.
중환자실 면회도 총 4인 제한으로 장인어른을 뵐 수 없이 보내드린 막내아들 같은 사위의 아쉬운 마음, 기도관 삽입, 연명치료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