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방구리 : 반짇고리의 강원도 방언
"똥색시 뭐해?"
남편은 젊은 시절 나를 '색시야'라고 불렀었는데 언제부턴가 '똥'자를 붙여 '똥색시'라고 부른다. 아마도 20년 넘게 만삭의 몸으로 살고 있는 똥똥한 나를 마땅히 표현할 표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호칭이 참 좋다.
"나 신사임당 놀이 중이야"
"바느질해?"
어느새 가까이 다가 온 남편을 흘깃 쳐다보며
"혹시 속이 부대끼거나 불편하지 않아?"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아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체한 것 같이 속이 막 불편하지?"
"아니 당신은 엄~청 불편하고 속은 엄청 편해"
"아 아까비. 바늘 든 김에 한 번 따줄라고 했두만. 근데 여보 나 바느질이 체질에 쫌 맞는 거 같지 않아?"
"아예~ 뭐든 안 맞으시겠어요"
"하아~ 내가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한 바느질해서 먹고살았을 텐데"
"잘 생각해봐. 당신 조선시대 살았음 이미 향냄새 피우고 병풍 뒤에 있을지도 몰라"
"아! 맞네. 그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
"누가 빼닫이에 도방구리 좀 갖고 온나"
"할머이 도방구리는 왜?"
"마한 것 왜긴 니 타개진 옷 꼬멜라 그라지"
나는 장식장 맨 아랫칸 서랍을 열어 할머니가 언제부터 쓰셨는지도 모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 듯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어 있는 네모난 나무 도방구리를 할머니 앞에 갖다 드렸다.
"또 저번 맨치로 홀딱 쏟지 말고 가마이 갖고 논나"
내가 할머니 도방구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한주먹 잡히는 갖가지의 단추 들이었는데 지난번 단추가 총 몇 개인지 세어보겠다며 도방구리를 홀딱 쏟는 바람에 한참 애를 먹었던 게 기억에 크게 남으셨나 보다.
"니 여 바늘귀에 실좀 끼 봐라"
콧잔등에 돋보기를 반쯤 걸친 할머니가 작은 바늘하고 실을 내미셨다.
"할머이 돋보기를 쓰고도 이게 안 보여?"
"그래 손꾸락도 말을 안 듣고 눈도 안 비고"
나는 의기양양 단숨에 바늘귀를 꿰어 드렸다.
"야야 거 도방구리에 바늘이 몇 개 꽂힌나 잘 봐보래이"
"하나, 둘, 셋, 할머이 세 갠데"
"시개라고? 그라믄 다 있네"
"할머이 근데 바늘이 몇 갠지 왜 물어봐?"
"왜긴 이게 발이 달리서 도망가 삐니 그라지. 그라니 단추 갖고 놀 때 조심 안하믄 클난대이"
"여보 이제 나도 한물갔나 봐"
"사람 뜬금없긴"
신사임당 놀이를 하고 있던 내가 말에 곁에 앉아 있던 남편이 대답했다.
"아니 어떻게 안경을 쓰고도 바늘귀가 안 보이냐고. 안경을 벗어야 보이니 이거 참"
"그래도 안경 벗고서 보이는 게 어디야. 난 안보인지 몇 년 됐어. 당신도 차차 익숙해질 거야.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보일 때 많이 봐 둬"
사실 나의 바느질 솜씨는 엉망진창이었다.
손수 수를 놓으셔서 당신의 전대 주머니와 방석, 베갯잇을 예쁘게 꾸미셨던 할머니의 솜씨에 비하면 나의 바느질 솜씨는 발꼬락으로 했다 해도 믿을 만큼 형편없었지만 다행히도 퀼트 교실서 바늘에 찔려가며, 내 셔츠와 퀼트 천을 함께 박아버린 시행착오들을 수 없이 반복한 결과 나는 바늘과도 친해졌고 조각조각 난 천 조각들과도 친해졌다.
그 천조각들을 만지면서 떠올랐던 첫 기억은 중학교 일 학년 점심시간에 운동장서 친구들과 꼬리잡기를 하고 놀다가 타다닥 소리를 내면 뚝 떨어져 나갔던 팔뚝 때문에 겨드랑이 사이로 드러난 속옷을 가리려고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같은 반 남자 친구의 윗도리를 벗겨 꾸역꾸역 껴 입었는데 축축하고 뜨끈한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고 오후 수업을 듣는 내내 솔솔 올라오는 땀 냄새 더하기 친구가 머금고 있던 갖가지 냄새들 때문에 머리 아프게 수업을 듣던 일, 지금도 희한하리 만큼 그 땀 냄새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건 분명 그날의 충격은 나에게 너무도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사흘이 멀다 하고 구멍이 나던 나의 양말들에 할머니가 내 발톱은 사람 발톱이 아니고 '새 시끼 발톱'일 거라고 쿠사리를 주시던 일도 떠오르고, 막냇동생의 작아진 양말 목을 잘라 메밀과 율무를 넣어 던지던 오재미 놀이와 알록달록 양말에 천이랑 비닐 봉다리를 구겨 넣고 묶고 꿰매서 명주실 뭉텅이를 머리카락으로 붙여 만들어주신 할머니표 백발 인형놀이도 떠올랐다.
그 시절 산골엔 텔레비전에 나오는 관절이 꺾이는 늘씬한 바비 인형은 없었지만 할머니가 장에서 천오백 원이나 주고 동생에게 사다 주셨던 미미 언니는 눈 화장을 하다 만 것 같기도 하고 시퍼런 멍이 든 것 같이 인쇄가 엉망에다 분명 바비인형을 비스무리하게 닮긴 했지만 뻗뻗한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른, 약간 무서워보이는 단벌의 공주였기에 나는 그 애처로운 미미 언니에게 갖가지 새로운 옷들을 입혀 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천 조각들이 부족했고, 재주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불시에 방 검문을 들어오실 엄마 때문에 우리는 할머니를 간신히 졸라 얻어온 천조각들과 도방구리를 이불속에 숨겨 놓고 밤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천조각이 붕붕 감겨 있는 시커먼 할머니의 대형 가위로 천 조각들을 쑹떵쑹떵 잘랐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옷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실과 바늘 가위를 들었던 조기 경험의 결과였을까 내가 엄마가 되어 딸아이의 베이비돌들에게 손수 재단을 하고 손바느질을 해서 옷도 만들어 주고 코바늘 뜨기로 옷이랑 모자도 떠서 입히는 수고를 자처해 나도 만족하고 딸아이도 기쁘게 해 주었는데 하루는 뭐든 다 있는 '다있소'에 가보니 몇 날 며칠 어깨가 결려가며 손가락이 아프도록 끙끙거리며 공들여서 만들었던 베이비돌 의상용으로 딱 맞는 물품들이 강아지, 고양이용 물품 코너에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허탈했던 적이 있었다. 단돈 천 원이면 되는 것을 나는 그 숱한 날을 바늘에 찔려가며 밤 잠을 헌납하며 도방구리를 옆에 끼고 살았던 것이었을까...
세탁기가 힘이 센 것인지, 딸아이가 힘이 센 것인지 터진 옷가지를 꿰매려고 도방구리를 꺼냈다가 바늘 개수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넷다섯. 어 한 개가 없다. 도망가삣나? 다시 하나 둘 셋넷다섯. 어 진짜로 없네'
"여보 비상이야 비상. 바늘이 한 개 도망 가삤어"
"잘 찾아봐. 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겠어"
"두 번이나 세어봤는데. 하하하 찾았다. 얘 잠수 탔네"
키가 젤 작은 바늘 하나가 바늘꽂이 솜에 푹 묻혀 있었는데 어린 시절 할머니가 바늘이 없어졌다며 찔려서 혈관이라도 타고 드가면 큰일 난다고 하셨던 걱정을 아주 오랜만에 나도 할 뻔(?) 해서 가슴이 덜컹했다.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며 알짱거리던 앙꼬도 있었고 요즘 핫한 아이템이라며 털이 북실북실한 레그워머를 신고 다녀간 딸네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선시대에 살았으면 바느질 덕에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았을진 몰라도 아마 순산을 하지 못해 진즉에 관 뚜껑을 닫고 누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박 2일 유도분만을 시도했으나 진통이 1도 오지 않아서 제왕의 수법으로 출산을 당한 난감한 산모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