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라디오

by 별바라기

할머니의 방에는 할아버지의 최애 친구 1호가 있었는데 그것은 라디오였다.

오로지 귀로만 만나는 할아버지만의 세상.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두 귀도 할아버지의 세상을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점점 커지는 라디오 소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큰 길가까지 왕왕 거리며 들렸는데 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소리는 월요일 아침 운동장 애국 조회하는 소리만큼 커졌다. 차라리 음악소리라면 '음악을 듣고 계시는구나' 아님 내가 좋아하는 유행가라도 나오면 흥얼흥얼이라도 했겠지만 할아버지가 듣는 방송은 하루 종일 졸리는 목소리를 한 아저씨가 중얼중얼 말만 하는 정말 재미없는 방송이었다.


대문간에 들어선 나는 지지직 거리며 여러개의 채널이 겹쳐 들리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학교 다녀왔습니다."


크게 인사를 해도 아무 인기척이 없어 할머니방을 빼꼼 들여다보면 등을 잔뜩 웅크린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고 혹시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아저씨 목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하!라!부!지! 자아?"


그제야 할아버지는 잔뜩 구부렸던 몸을 천천히 움직여 커다랗고 흰 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며 일어나 앉으셨다.


"오냐 핵교 잘 댕기 왔고? 밥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빈 도시락 안에서 유난히 달그락 거렸던 숟가락 소리를 할아버지한테도 들려드리려고 도시락 가방을 힘차게 흔들었다.


"밥은 진즉에 먹었지. 할아부지는 밥 먹었어?"


"오냐 먹었다."


"근데 라디오가 뭐라는지 하나도 안 들리네?"


"그러게 식전엔 잘 들렸는데 아깨부턴 안 들린다. 니가 한 번 봐 보래이"


나는 아버지가 라디오 안테나를 만지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흙벽에 박힌 못 끝에 걸쳐져 있는 안테나와 연결된 철사를 이리저리 만지며 아버지 흉내를 내보았다. 그런데 희한도 하지 내가 안테나에 손을 대면 라디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다가 손을 떼면 들리지 않으니 친구들과의 약속에 맘이 급한데 계속해서 철사줄을 붙들고 있을 수도 없어 나도 답답하고 듣고 계신 할아버지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할아부지 이게 잘 안된다. 이따 아빠 오믄 해달라고 해. 그리고 소리 좀 줄이 봐 느므 시끄루와"


가까이서 크게 말한 덕분에 단번에 알아들으신 할아버지는


"시끄룹다고? 오냐"


더듬더듬 손을 뻗어 근처에 있는 라디오 볼륨을 줄이셨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집은 첩첩산중에 있는 작은 마을로 정말 손에 꼽힐 만한 난시청 지역이었다. 공영방송도 제대로 잡히지 않음은 물론, 라디오 주파수도 잘 잡히지 않아서 지리를 모르는 누군가가 낙하산을 타고 불시착했다면 북한이라 해도 믿을 만한 그런 오지 촌동네에다, 해도 일찍 잠드는 산촌 마을의 밤은 어찌나 일찍 시작되는지 희한하게 잠을 자는 것만 같았던 윙윙 바람은 서산으로 해가 꼴딱 넘어가면 그때부터 일어나 개구쟁이처럼 동네를 들쑤시며 놀기 시작했다.

그때는 읽지도 못했던 꼬부랑 글씨(골드스타). 어느 날 우리 집에 왕관 표시가 붙어 있는 칼라 텔레비전이 들어왔는데 채널을 막 돌리면 일찍 고장 나고 땟구정물 묻는다고 어린 우리들은 손도 못 대게 하셨다.

집집마다 군불과 쇠죽 불 때는 연기가 굴뚝을 타고 퐁퐁 솟아나 온 동네가 솔가지 태우는 향으로 가득 차는 그 시간이 되면 우리 집엔 애국가가 4절까지 울려 퍼졌고 우리는 안방에서 모두 차렷 자세를 하고 애국가를 목청껏 따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 일이지만 그 덕분에 나는 학창 시절 애국가 4절 쓰기 수행평가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적어내는 덤을 얻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도 있더구먼 새로 산 칼라 텔레비전은 딱 보기만 좋은 떡이었다. 특히 윙윙 바람에 맥을 못 추는 안테나 때문에 나는 윙윙 바람이 소리를 내며 놀기 시작하면 정말 꼴도 보기 싫었는데 이유는 돌아간 안테나를 돌리러 어둠을 뚫고 매번 뒤꼍에 가야 하는 당번이 나였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안방에서 텔레비전 화면 상태를 파악하며 채널을 돌려가며 안테나를 돌려야 하는 방향을 목이 터져라 나에게 알려주어야 했고, 어린 동생들이 혹여나 어두운 밤에 나갔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텔레비전 시청은 꿈도 꿀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이 저녁 예배를 드리시기 위해 규칙적으로 집을 비우시는 그 시간마다 초를 다퉈 안테나를 돌려 좋아하는 방송을 보려 애썼고,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안테나 복구 전담요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그 당시엔 손전등도 없었는데 나는 호기심 대비 겁도 많았다. 상상력이 뛰어난 것인지 가끔씩 뒷동산에서 우리 집을 내려다보는 느티나무가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 느티나무에 살고 있는 소쩍새 울음소리도 올빼미 눈빛도 소름 끼쳤다. 아쉬운 대로 빛을 내줄 수 있는 촛불이라도 켜면 좋을 텐데 촛불은 윙윙 바람을 이기지 못할뿐더러 행여나 바닥에 쌓인 낙엽에라도 옮겨 붙으면 동네를 다 태울 수 있다며 항상 '불조심'을 강조하던 엄마의 잔소리가 있었고, 손대지 말라한 성냥을 갖고 놀다가 걸리는 날엔 장롱 위에 한동안 고이 모셔졌던 회초리의 따가운 맛을 봐야 했기 때문에 나에게 허락된 한줄기 빛은 애당초 없었다는 체념을 하고 맘을 비운 지 오래였다. 그래서 밤이면 할아버지처럼 벽을 더듬더듬 만지며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뒷꼍으로 가 언니의 주문에 맞는 방향으로 안테나를 돌려 "됐어"라는 신호를 듣고서야 안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윙윙 바람은 그런 나를 놀리 듯 금세 안테나를 돌려놓았고 나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뒤꼍에 다시 다녀와야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라디오의 주인은 할머니가 되었다. 내 귀에 들리는 외계어 같은 라디오 소리는 그냥 소음이었는데 할머니는 집에 계실 때 하루 종일 그 소음기를 켜 두셨다. 하루는 점심을 드신 할머니가 손을 방바닥으로 툭 떨어트리셨고 '잠깐 졸고 일어나시겠지?' 하는 추측을 깨고 여느 때와 달리 긴 낮잠을 주무시길래 방바닥에 배를 깔고 있던 나는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 소리가 거슬려 전원을 껐다.


"이 마한 것, 듣고 있는데 왜 끄나?"


"할머이 잤자네 그래서 껐지"


"내가 자긴 언제 잤다고 그래, 다 듣고 있었지"


"하하하 아니 할머이 코 골고 잤자네"


"이 마한 것좀 보래이, 코는 누가 골았다고 그래"


"할머이 라디오 너무 시끄러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시꾸룹나? 내는 방이 조용하믄 무수운 생각이 들어 그래"


"할머이 뱀도 잡으믄서 뭐가 무섭다고 그래"


"느 하래비가 아직도 옆에 있는 거 같아"


나는 그 시절 그 작은 손으로 뱀도 덥석덥석 잡으시던 할머니의 무서움이 조금도 이해되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외계인과 대화하는 것 같던 소음기는 어느 날 할머니가 장터에서 사 오신 회색빛의 작은 라디오에 밀려 할머니 방에서 쫓겨났고 영감님 소음기는 호기심 많은 나의 손에 들어왔다. 나는 그저 라디오 안에 숨어 있는 원기둥 모양의 새까만 자석을 꺼내고 싶은 욕심에 끙끙거리며 나사를 돌려가며 조립을 풀었는데 라디오 안에 있는 부품들을 헤집고 자석을 꺼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다지 인내심이 많지 않고 성질 급한 나는 결국 라디오를 들고 신작로로 나갔고 힘껏 집어던졌다.


패대기를 당한 영감님 라디오는 조각조각 흩어졌고 그 안에 연결되어 있던 수많은 부품들과 전선도 너덜너덜해졌는데 한 시간도 넘게 끙끙거리며 얻고자 했던 나의 자석도 조각조각 깨진 채 나를 맞아 주었고, 그나마 제일 큰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놀다 집으로 돌아가니 주머니 속에 있을 줄 알았던 자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니? ㅠㅠ

몇 년 전. 나는 동생이 사다 드린 엄마의 미니 라디오를 보고 '신문물'라고 감탄하며 시어머니께도 선물해 드렸다. 남편은 종종 업데이트되는 노래들과 어머니가 특별히 요청하신 음악들을 담아가 저장해 드리면 밭에 가실 때 집에서 잔일을 하실 때 틀고서 일을 하시니 덜 적적하다며, 특히나 진성 님의 노래가 좋다며 고마움을 표현하셨는데 그 좋다는 그 말씀이 나에겐 어머니의 큰 외로움으로 느껴져 괜스레 마음이 울적했다. 그리고 미니 라디오를 보면서 서글프게 떠올려진 사람이 있었는데 할머니였다. 그 시절 할머니한테도 이 미니 라디오가 하나 있었더라면 산에 다니실 때 덜 적적하시고 덜 무수우셨을 텐데...

할머니가 좋은 세상을 좀 더 누리고 가셨음 을매나 좋았을까? 항상 같은 아쉬움. 양가 부모님도 맨날 일만 하시지 말고 좀 쉬시고 누리셨으면 좋겠는데 나는 여전히 말만 앞선 마한 것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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