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한주가 넘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희한하게 작년은 연말이라는 감각이 둔해진 채 지나갔다. 더 그랬던 이유는 두 번째 군휴가를 나온 이상병 님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나의 저질 체력이었는데 차라리 코로나였음 쉬기라도 하는데 코로나도 아닌 것이 독감도 아닌 것이 2주가 넘도록 빌빌 거리다 보니 '뭔가 큰 병이 든 건 아닐까?' 할 정도로 걱정이 치고 들어왔다.
"엄마 어디가 많이 아파?"
"응 갱년기"
"똥색시 어디 아파?"
"갱년기"
나는 모든 답에 갱년기를 갖다 댔다.
"언니야 어디가 마이 안 좋나?"
"갱년기"
"푸하하 갱년기는 개뿔. 갱년기는 뭐 아무나 아무 때나 온대. 내가 가만 보아하니 명절증후군일세"
"명절 증후군은 무슨. 명절 한 참 남았잖아."
"허허 이 아줌마보소. 시간 가는 줄 모르네. 명절 이제 2주도 안 남았어"
"에? 이번에 설이 그렇게 빨라?"
"뭐야 농담으로 했는데 언니 지금 농담 아닌 거야?"
나는 그제사 달력을 쳐다보았다.
"헉. 왜 설이 1월이야?"
"히야~ 이 아줌마 심각하네. 갱년기가 아니라 정신줄을 놓은 거 같은데"
"그러게 갱년기한테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엄하게 탓해서"
"할머이 뭐 해?"
"뭐 하긴 보따리 싸지"
"보따리를 왜 싸? 어디 가?"
"가긴 어딜 가. 해가 바뀌니 싸놓는 기지"
"그건 너무 낡았잖아. 버려야 되는 거 아니야?"
"버리긴. 아직 을매나 더 쓸 수 있는디. 이거 니 줄까?"
"아니 됐어. 그 낡은걸 누가 쓴다고"
할머니는 연두색, 분홍색, 갈색 등 여러 가지 색으로 된 보자기들을 꺼내 방바닥에 펼쳐 놓으시고 짐을 싸신뒤 장롱 속에 차곡차곡 쌓으셨고 해마다 보자기의 색깔이 바뀌긴 했지만 할머니의 보자기는 풀렸다 묶였다를 반복하며 늘 동글동글 장롱 안을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의 그 보따리를 다시 꺼내 자세히 보게 된 계기는 애석하게도 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장례식장을 지키셔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과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방을 둘러보았는데 그때 눈에 박힌 광경은 장롱 안에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던 보따리들이었다.
장롱 안에서 얼마동안 머물렀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 빛바래고 알록달록 색깔의 묵직한 보따리들.
그리고 보따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보따리 보따리 사이사이마다 욱여넣은 옷가지들과 물건들.
그 보따리들은 어미쥐의 공격을 받아 뚫리기도 했고 잠시나마 아가쥐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었고, 때로는 밤마다 우리들의 입을 달콤하게 해주는 과자와 사탕이 담겨 있기도 했었고, 또 할머니가 우리들의 설빔이나 양말을 사서 담아서 오시기도 했던 정겹던 보따리 들이었다.
그 추억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끄집어내 펼쳐보니 하나의 보따리엔 개화기 시절에나 입으셨을 것 같던 한복들이 차곡차곡, 또 다른 보따리엔 누구를 주시려고 했는지 딱지도 떼지 않은 철 지난 애매한 사이즈의 새 옷들이 담겨 있고 또 다른 보따리엔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떠드린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언젠가 사다 드린 내복은 입지도 않고 담아두시어 일부 색이 바래 있었으며 또 다른 보따리엔 다 녹아버려 한 덩어리가 된 사탕 몇 봉다리와 기름 쩐내가 풀풀 나며 조각조각 부서진 셈베이 과자가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가장 고왔던 시절을 담고 있는 빛바랜 추억 보따리.
그리고 꼭 다시 만나면 새 옷을 입혀주고 싶어 고이고이 기다렸던 기다림의 보따리.
손녀가 사다준 내복은 아끼느라 색이 바래도록 두고 구멍 난 무릎에 부드럽지도 않은 거친 천을 덕지덕지 덧대 기워 입으셨던 할머니의 낡은 내복.
당신의 방에 찾아온 손주들의 입에 하나라도 더 맛난 것을 담아 주고 싶으셨던 할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암만 흐려진 기억력을 탓해도 왜 이렇게까지 미련하게 누리시지도 못하고 사셨을까? 생각을 하니 눈물이 더 쏟아졌는데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당황했던 것은 분명 장롱 안에 보따리가 쌓여 있었을 땐 얼마 되어 보이지 않던 짐들이 보자기를 푸는 순간 방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건강할 땐 모른다.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실 건강할 땐 잠이 모자랄 정도로 전투적으로 잤고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뭉그적거렸었다. 그런데 몸뚱이가 아파 잠을 뺏기고 나면 시간은 어찌나 더디 가고 시곗바늘은 주책같이 왜 그리 큰소리를 내며 밤새 도는지 얼른 날이 밝았으면 좋겠는데 밤은 쉽게 새벽을 내주지 않았다.
연말 할머니의 추도식과도 맞물려 있는 즈음이라 그 긴 밤을 뒤척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 생각으로 시작된 생각은 장례식이 끝난 뒤 할머니방을 정리하던 가족들이 할머니의 장롱은 한 개를 두 개로 두 개를 네 개로 만들어 내는 동화 속 요술항아리 같다며 그 작은 냥반이 뭔 짐을 이리도 바리바리 쌓아 놓았냐며 혀를 내두르던 기억까지 끄집어 올렸다.
그 많던 할머니의 보따리.
할머니는 보따리 안에 당신의 세월과 마음과 소망을 담으셨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꾸려가고 있는 마음 보따리.
나는 지금 보따리를 잘 싸고 있나?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의 보따리의 크기는 얼마만 할까?
사심이 넘치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진 않았나?
택도 없이 너무 큰 것을 담으려고 했나?
진정 비워야 할 것을 잘 비워내고 꼭 필요한 것만 담아두고 있나?
내 보따리 안에 넘치고 여유 있는 것들이 있어 남들에게 나눠줄 만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이런저런 생각과 후회를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그 기다리던 새벽이 밝아왔다.
시원찮은 몸뚱이 때문에 거창한 새해 계획도 세우지 못했고 다짐 같은 것도 없었는데 할머니 보따리를 떠올리다 새해 계획을 세워본다. 할머니가 미처 다 풀지 못하고 가셨던 슬픈 보따리들을 기억하며 올해 나는 마음 보따리를 잘 풀고 묶어가며, 살피며 살고 싶다. 내 보따리에 사심으로 과한 것이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 같은 물건 때문에 곁에 있는 누군가를 찌르고 있지는 않은지, 두 눈 크게 뜨고 잘 살피며 살고 싶다. 내 깜냥만큼만 보따리를 잘 꾸리는 올해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말 : 제 주변인들은 제가 글을 쓰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가족들도 아직 다 몰라요. 처음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은 저와 같은 맘으로 오셔서 그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라이킷 수와 통계에 촉을 두고 있는 저를 보면서 이 글을 계속 써야 하나? 그런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내가 혹시 창작물을 쓰면 어쩌나? 이런 염려도 하면서요.
만약 그렇게 되면 필히 절필을 해야겠구나 생각도 했었지요. 후훗 ^^;
연말 마음 보따리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뼈저리게 든 생각은 늘 방문하셔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맘 도장도 남겨 주시는 고마운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