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손자 "온달장군"

할머니가 자랑스러워했던 손자이야기

by 별바라기

* 이 글은 제가 쓴 글이지만 이미 다른 곳에 게재가 되어 있는 글입니다.

문득 함께 나누고 싶어서 공유합니다.

2023년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즈음에 별바라기 드림




뻐꾸기 노랫소리가 새벽을 여는 6월의 아침. 주말을 맞아 마늘 수확을 도우러 고향 집에 모인 우리는 마당 그늘에서 한낮의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저온 창고에 넣어 두었던 수박을 먹자는 할머니의 말씀을 귀담아들은 아홉 살의 발 빠른 손자는 쪼르르 엄마를 따라가 수박을 안고 왔고, 손자의 수박을 받아 드시며 할머니는


“우리 산이가 온달장군 아들이라 그런지 힘이 세구나”


“할머니 왜 자꾸만 우리 아빠를 온달장군이라 그러세요?”


“장군이니 장군이라 부르지”


“온달장군은 바보란 말이에요”


“온달장군이 왜 바보야? 그리고 너도 장군 아들이면 좋잖아”


“그럼 저는 바보 아들이 되는 건데, 왜 우리 아빠를 자꾸만 그렇게 부르시는 건지”


조카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수박을 먹으려고 대기 중이던 우리는 마당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동생은 2004년 온달장군 선발전에서 당당히 1등을 하고 그 해의 온달장군이 되었다. 종일 진행된 그 힘들고 격한 대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등은 자랑스러웠지만, 사실 나도 이순신 장군도 아닌 온달장군이라는 호칭에 장군 타이틀은 자랑스러우면서도 쑥스러운 감정도 공존했는데, 동생의 아내도 결혼하고서야 온달장군 선발전 얘기를 듣고 당황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오늘은 아들이 아빠를 온달장군이라 부른다고 울먹이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해 이장 일을 보시던 아버지는 파종할 종자 신청차 면사무소에 들리셨다가 온달장군 선발대회에 선수 추천 부탁을 받으셨고, 동네 청년들은 죄다 군대와 학교로 가고 없어서 마땅한 선수가 없다는 거절에 아드님이라도 추천하시라는 직원의 간곡한 청을 거절치 못하고 지갑에 들어있던 막내의 증명사진을 붙이셔서 신청서를 내고 오셨다 했다.


“막내나? 내가 오늘 면에 갔다가 온달장군 뽑는 대회에 동네 대표로 너를 신청하고 왔는데 나갈 수 있지?


“아니 아버지, 대회를 준비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갑자기 대회라니요.”


“네가 전역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젊은 기운에 한번 해봐라. 교수님한테 말씀 잘 드려보고”


동생은 전화를 끊고 대회라는 말에 부담이 되었지만, 그간 봐온 아버지의 성품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아버지의 입장도 짐작이 되어 고민하던 끝에 지도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고향에 장군 선발대회가 있는데 제가 선수 추천이 되었습니다.”


“장군 선발대회? 무슨 장군인가?”


“온달장군입니다.”


“뭐? 온달장군? 그런 대회도 있었나? 이렇게까지 찾아온 걸 보면 꼭 가야 하는 것 같으니 보내는 주겠네. 대신 꼭 일등하고 와. 안 그러면 낙제야”


드디어 대회 날 아침. 야나할머니와 부모님, 언니와 조카, 나와 큰아이, 그리고 내가 품고 있던 태중의 아이까지 9명의 대가족은 온달 축제장 한편에 마련된 온달장군 선발대회장에 도착했고 아마도 ‘태릉선수촌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할 정도의 건강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출전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출전자들 속에 빈약한 체격의 동생의 모습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숨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등을 돌렸다.


대회가 시작되었고 첫 번째 경기는 달리기였는데 평지 달리기가 아닌 산악 달리기였다. 등산도 힘든 산을 뛰어 올라가 손등에 확인 도장을 찍고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오십여 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세 돌도 채 안 된 조카는 보이지도 않는 삼촌을 향해 “삼촌 이겨라, 삼촌 이겨라.” 폴짝폴짝 뛰며 응원을 했다. 나는 산등성이를 일렬로 뛰어 올라가는 선수들의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들을 보며 부디 동생이 다치지 않고 내려오기만을 바랐다.

한참이 지나 첫 번째 선수가 결승선에 돌아왔고 두 번째, 아! 세 번째 선수가 동생이었다. 나는 그때의 놀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태중의 아이만 아니었다면 소리를 엄청나게 질러 기쁨을 표현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는 긴 장대를 던져 가장 멀리 꽂힌 창이 우승하는 경기로 생각보다 많은 참가자가 실패했다. 장대들이 허공을 가르며 잘 날아가나 싶을 즈음 휘청거리다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옆에 서서 이야기하는 아저씨들의 말을 들으니 작년 우승을 점쳤던 청년이 장대 던지기에서 실패하고 올해 또 출전했다는 것이었는데, 번호를 찾아보니 동생 또래쯤 되어 보이는 체격이 작은 청년이었지만 얼마나 준비했는지를 탄탄한 근육이 알려주었다.

드디어 동생의 차례가 되었고 동생은 심호흡 후 하늘 위로 힘차게 장대를 쏘아 올렸다. 실패했던 출전자들의 장대가 나뒹굴던 그 지점에 도착하자 나도 모르게 숨이 멎었는데, 기가 막히게도 동생의 장대는 쭉쭉 뻗어 허공을 가르고 멀리 날아가 ‘푹’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꽂혔고, 연이은 실패 뒤에 보인 멀리 날아간 장대 때문에 경기장은 박수와 함성이, 조카도 손뼉을 치며 삼촌을 계속 불렀고, 출전자 중 동생은 2번째로 창을 멀리 던졌다.


다음 경기는 씨름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씨름 출전한 선수 중에 같은 유니폼들이 유난히 돋보여 의아해하던 그때 상황을 파악한 언니가 하는 말이


“실업 씨름팀 선수들이 왔나 봐. 삼촌은 기운도 못 쓰고 떨어지겠는데”


나는 지금까지 애써온 동생이 무참히 무너질 것을 생각하니 기운이 빠졌다.


드디어 씨름 시작, 동생의 샅바를 잡은 선수는 도드라지게 체격이 좋은 선수였다. 보나 마나 단판으로 경기가 끝날 것 같았던 예상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동생은 금세 모랫바닥에 꽂혔고 바로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판은 동생이 기가 막히게 버티는 것이었다. 넘어질 듯 버티고, 넘어질 듯 버티고 그러다 뒷걸음질로 상대 선수가 휘청하는 사이 체중을 실어 밀어붙인 동생의 기습 공격에 엄청난 충격과 모래를 튕기며 상대 선수가 넘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씨름판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의 엄청난 함성에 어린 조카는 깜짝 놀라 작은 손으로 귀를 막았고, 숨 막히는 마지막 한판이 시작되었는데 두 번째 판에서 당황한 상대 선수는 동생이 손쓸 새도 없이 기습 공격을 하여 정말 허무할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 경기는 끝이 났다. 그 뒤로 수많은 선수가 씨름판에서 넘어지고 구르기도 하면서 씨름 경기는 종료되었고, 동생과 겨뤘던 실업팀 팬티 선수는 씨름 부문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씨름판 밖에서 남은 경기를 관람하던 동생은 현역 선수한테 한 판을 이겼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은 만족한다며 샅바를 메었던 시커멓게 멍든 자리가 아픈지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씨름 우승자를 포함한 경기마다 올라온 상위권 선수 중 결승전 선수 5명이 결정되고, 우리 가족은 동생이 결승전에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전혀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막상 결승전까지 올라오고 보니 ‘혹시나 등수 안에 들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그때 마지막 경기를 위해 씨름판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씨름판엔 5명의 결승자들이 서 있는데 그냥 바라만 봐도 확연한 체격 차이, 재출전하고 있다는 동생 또래의 젊은 청년도 막강한 우승 후보였다. 최종 경기 종목은 ‘가마니 들기’였는데, 25킬로그램의 모래가마니를 팔을 곧게 뻗어 멀리 위로 가장 오래 들고 서 있는 선수가 최종 우승이라는 방송을 들으면서 동생의 가느다란 팔뚝이 안쓰러운 그때 고막을 찢는 호각 소리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다섯 명의 장정들이 벌을 서듯 모래 가마니를 번쩍 들어 올리자 제일 가운데에 서 있던 동생의 팔은 시작하자마자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고, 그 뒤로 동생 곁에 있던 선수들의 팔도 후들거리기 시작했는데, 십분 같은 10초의 시간이 지날 무렵, 마치 짠 듯이 동생의 양쪽에 있던 우승 후보였던 청년, 그리고 덩치 좋은 선수의 가마니가 동시에 '쿵' 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나는 이제 3등 안에 든 것이니 그만 가마니를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장내가 조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련이 난 듯 더 후들거리던 동생의 안쓰러운 팔이 머리 위로 내려올 것 같이 불안 불안하던 그때 갑자기 “으아”하고 넣은 동생의 기합 소리가 씨름판을 맴돌아 온달산성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 덕분이었는지 동생의 팔은 내려오지 않고 안정을 찾으며 기운을 차리는 게 보였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동생과 나란히 서 있던 선수의 모래 가마니가 '쿵' 하고 떨어지더니 또다시 남은 선수의 가마니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동생은 자신이 언제 부들부들 떨었냐는 듯이 가마니를 머리 위에서 종잇장처럼 흔들며 일등의 감격을 표현했고, 호각 소리와 함께 경기는 종료되었다. 동생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신 분은 아버지셨다. 종일 아들의 경기를 관중들의 한 발 뒤에서 숨죽여 지켜보시며 기도하시던 아버지도 그 순간만은 기쁨을 주체하시지 못하고 열 살 난 소년처럼 단숨에 달려가시어 동생을 안아주셨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동생이 일등으로 모든 경기가 끝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근육통에 절룩거리며 피멍 든 다리로 걷는 안쓰러움이 몰려와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 내었다.


그날 저녁 종일 긴장으로 보낸 엄마는 아들 잡을 뻔했다며 아빠를 타박했고, 아빠는 당신의 무모한 신청이긴 했지만, 덕분에 아들이 장군이 되었고, 당신은 장군 아버지가 되셨다며 매우 기뻐하셨다. 그리고 열심히 응원한 조카의 정성도 한몫했다며 번쩍 안아주셨는데, 동생이 씨름하며 쥐가 났던 종아리에 파스를 붙이며 하는 말이 가마니를 들자마자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응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도저히 포기되지 않아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곁에 있던 선수들이 먼저 포기해 줘서 오기가 생겼고, 정말 너무 죽을 거 같아서 기합을 넣었는데 그 기합 소리와 함께 다른 선수들의 가마니가 떨어져서 본인도 놀랐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삼촌의 시상식과 축제를 즐기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학교로 돌아간 동생은 교수님께 우승했다는 보고와 함께 빠진 수업을 대신해 과제 제출을 하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고 선·후배 사이에서 장군이란 단어는 실종된 ‘온달’, ‘바보형’ 휴대전화에 이름 대신 ‘바보온달’이라고 입력되었고, 탔던 상금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술값으로 지출했다는 후기를 전해왔다.

이십 대 젊은 장군이었던 동생은 이제 마흔 중반의 아빠 장군으로 살고 있고, 온달장군에 대해 자세히 알 리 없는 어린 조카는 수박 먹는 것도 잊은 채 아빠 옆에 딱 달라붙어 계속해서 묻는다.


“아빠 근데 정말 아빠가 바보여서 일 등 한 건 아니지?”


“바보여서 일 등 한 거 맞는데, 근데 내가 바보면 너는 바보 아들이야.”


아들의 얼굴에 수박씨를 한 개 붙여주며 웃는 온달장군의 말에 아들이 눈을 흘겼고, 우리는 부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과 함께 더위를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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