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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Jul 07. 2022

두 사람이 살고 있다.

내가 보인다.

내가 보이기는 하는 걸까?

어떤 모습일까?

타인에게 보이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타인이 보는 나를 가꿔 가는데 온 정신을 쏟으며 살았다.

이렇게 보이면 안 되지

또 이렇게 보이면 어떨까?

이렇게 보이지는 말아야지 어렴풋한 낮은 다짐은 머리에 쐐기를 박고 끊임없이 떠올려 지금의 내 모습이 되어 버렸다.

내가 아닌 나를 표현하는데 이질감이 생긴다고 불같이 화를 내다가 언제쯤인지부터는 나도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 공동 현관에 다다르자 닫힌 공동현관문 안쪽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초등 저학년 남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키도 지 않는 공동현관을 혹시나 안 열릴까 표정 가득 조바심을 내며 점프를 해서 문을 열어준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 문을 열어주느라 닫혀버린 엘리베이터를 급히 눌러  타고는 안에서 열림 버튼으로 문을 잡아준다.

내가 들어온 걸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는다.

내가 뭐라고 이런 과분한 배려를 받아도 되는 건지....

마음은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쭈그러진 어른답지 못한 어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고마운데 어떤 말도 못 하고 어물쩍 서 있으니 아이도 쑥스러운 듯 딴짓만 하다가 6층에서 내리려 한다.

잘 가라고 인사를 했더니 당황한 듯 달리며 재빠르게 내려 버렸다.


아이에게 나는 그냥 어른이었다.

어른으로 보였나 보다.

내가 어른인걸 한 번씩 잊어버린다.

바닥을 친 자존감과 맞서 싸울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린다.

아이에게 내 겉모습은 어른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는 어르신이 되어있겠지

겉모습만은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수도 없이 확인하고 확인한다.

아직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내가 너무나 중요하다.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톡톡 찍어 주름을 없애고 트러블도 없애고 톡톡 톡톡 아침마다 삶을 지우듯 그렇게

가끔은 너무 안일하게 꾸밈이 없고 가리는 게 없는 사람들을 보며 핀잔도 하고

하지만 뭐가 옳은지 그른지 정답은 없다.

단지 남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뿐.

남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그 누군가가 모여 전부

그들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 있는가!

그렇게 질문하고 회의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내가 거부하던 그였다.

남들 속에 늘 남을 신경 쓰며 살던 걱정 많은 그가

그냥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거기 있었고, 나는 조금은 약했고, 가식이라 생각했던 그 모습이 진정한 내 모습이었고

내가 늘 떠올리며 나라고 생각했던 마음속의 그는 내가 아니었다.

실제 내 모습을 거부하는

 '원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게 아닌데 아 정말 내 모습대로 살고 싶다.'

하는 나는 비현실적인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구였다.

과거에 내가 어쨌든 그 속에 내가 맘에 드는 부분만 골라 내고는 또 다른 나를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남들에게 뾰족이 당당히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

그런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나를 거부하며....

 허구의 나를 추앙하는 내 모습에는 변화도 발전도 오지 않았다.

마치 두 사람이 살고 있는 듯 망상장애 환자처럼 더 맘에 드는 그를 추앙하며 살았다.

그리고

자금의 나를 찾는 데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내가아닌나#또다른나#자화상#망상#내안에나#나를찾는길#내가#나는#가식#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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