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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리집을 엿보고 있다!

by 산들바람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갈 무렵 우리가 살던 정 반대편 방향으로 이사를 했다.

딸아이도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나름의 처세가 필요했던지 그전처럼 등교거부를 하지는 않았다. 물론 집에서의 우울함과 무기력함과 반항은 그렇다 쳐도 밖에서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 것 같은 눈치다.

그렇게 10월의 중하순쯤 되는 어느 날 저녁, 경찰관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이가 성추행 사건으로 직접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사건의 요지는 이러했다.

방과 후 친구와 둘이서 우리 아파트 건너편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주위엔 운동하는 사람들, 그네 타는 아이를 밀어주는 사람 등 특별할 것 없는 공원 풍경이지만 아이는 불길함을 감지한 듯하다.

다른 글에 후술 하겠지만 아이는 어릴적부터 무척이나 예민했고 예지력과 오감이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니 같은 풍경을 보고 듣더라도 우리는 간파하지 못하는 수십 개의 정보를 취할 수밖에....

눈이 밝아서 자신의 방 안 먼발치에 누워서도 빼곡하게 꽂힌 비슷한 색상의 공책들 중 자신이 원하는 얇은 공책을 정확하게 알고 한 번에 꺼내온다.

어쨌든 심상찮은 분위기의 공원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던 중 담벼락을 대신해 둘러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한쪽 눈만 내놓은 채 자신들을 지켜보는 작은 눈동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태연한 척, 친구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단다.

그러나 집에 가면 늘 혼자인 친구는 우리 딸과 계속 함께 있고 싶은지 조금만 더 얘기하다 가자더란다. 계속 졸라대는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다 오후 다섯 시 반쯤 됐을 무렵이라고 했다.

11월이 가까워오는 공원은 어느새 어둑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 둘만 남게 된 상황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두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복싱을 하는 듯 자연스레 뜀뛰기를 하며 벤치 가까이 다가간다.


"너희들 우리 집에 따라가지 않을래?"


"네? 우리가 왜 할아버지 집에 따라가요?"


"우리 집에 가면 맛있는 것도 있고, 예쁜 강아지도 있어..."


"싫어요!! 처음 보는 할아버지 집에 우리가 왜 가요!! 시연아! 빨리 집에 가자!!!"


"이것들이 어딜 도망가겠다는 거야!!!"


남자가 우악스럽게 딸아이의 바지 뒤편 속으로 손을 넣으려 했다. 아이는 더 이상 그 남자의 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엉덩이를 벤치에 딱 붙이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앉아 있었다.


"에잇!!!"


옆에 앉았던 친구가 낮에 가지고 다니던 우산을 들어 아저씨의 다리를 힘껏 후려 때리자 얼굴에 독기를 가득 품은 남자가 오히려 우산을 빼앗아 공격하려는 자세다.

그 남자가 나타났을 무렵부터 딸아이는 외투 속에 손을 넣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녹음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나마 단서가 될 것 같아선지 아이는 그 남자의 목소리를 더 구체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연기를 시작했다.


"아~ 갈게요.. 갈게... 할아버지 집에 따라가면 되잖아요... 할아버지 집이 어딘데요?"


한쪽에서는 시간을 끌고, 친구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상황이 들리도록 전화기를 켜두고 있다.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거친 손으로 딸아이를 잡아끌어 일으키려는데 마침 공원 입구에서 "거기 서!!!" 하는 소리와 함께 야광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경찰관들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 상황을 인지한 그놈은 부리나케 도망을 갔고, 경찰이 집까지 데려다준 것이었다.

다음날은 삼 남매가 함께 등교를 했고, 아이가 하교를 하려고 교문을 나선 순간이었다.


"안녕?"


어제 그 남자가 능글맞은 웃음을 웃으며 딸아이 얼굴만큼 허리를 숙이더니 머리를 갸웃하며 인사를 하더란다.


"뭐야!! 이 멍멍이 열여덟 어쩌고저쩌고 새끼야 꺼져!!!!"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욕이란 욕은 모두 다 쏟아부었다고 했다.

어린 여자 아이가 눈을 똑바로 뜨고 반격을 하니 그놈도 적잖이 놀랐는지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하더란다. 그 틈을 타 전력질주를 해서 도망 왔다고 했다.

나는 학교와 아파트 게시판에 사건을 공개했고, 학교에서는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무리를 지어 하교할 것과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것을 당부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그리고 길 하나 건너인 학교주위와 아파트 근처에 경찰차가 수시로 순찰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었다.


며칠 후, 사건 당시 함께였던 친구의 엄마가 아이들을 위로도 할 겸 영화도 보여주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겠다며 함께 집으로 오라고 했던 모양이다.

친구집 방향을 향해 재잘대며 걷고 있는데 그놈을 정면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아이들도 기함하도록 놀랐지만 그놈도 경찰에 쫓기는 몸인지라 당황했는지 그날은 곧바로 뒤돌아 어느 빌라 주차장 사이로 들어가더란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당장 휴대폰 녹화 버튼을 켜고 그 남자의 동선을 따라 함께 달려가긴 했지만 그놈을 따라잡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아이가 녹화한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며 다시 한번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여전히 그놈은 잡히지 않았고, 딸아이는 관할지역 해바라기 센터에서 심리치료 및 사건 진술을 녹화하는 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인터폰을 확인해 보면 현관 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뭔가 덮여 있는 듯하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고, 겨우 용기를 내어 밖을 내다보면 초인종 카메라매일 다른 전단지를 붙여 놓는다.

아파트 게시판에 이 사실을 알리자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했고, 젊은 남자 어른들도 서넛이 그룹을 만들어 번갈아가며 아파트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몇몇 남자들은 우리 집을 찾아와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신축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 다시 이사를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앞이 막막하고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날도 초인종이 울린다!!!

가만히 다가가 인터폰 카메라를 확인하니 이번에는 전단지가 아닌 식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카메라를 가리고 있다.

'뭐지? 사람 머리카락인가?'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용기를 내어 현관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아아아아아악!!!!!"


나는 문을 채 열기도 전에 얼른 문을 다시 닫고는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때, 키 작은 내 눈앞 가득, 어떤 물체가 흔들흔들하며 내 앞을 막아서는데 그게 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공포에 질려 문을 닫아버렸다.

다시 문을 열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동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이야기하자 몇몇 남자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현관에 붙어 있던 것을 사진을 찍고는 안심하라고 했다.

빗자루였다.......

하지만 그것을 누가, 왜 꽂아두었을까?

전단지부터 빗자루까지... 이것은 필시 우리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보고 놀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인데 과연 누구일까...

그놈이 우리 집을 알고 이런 범행을 하는 것일까?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더욱 불안함에 휩싸였고, 여전히 성추행범도, 동일범일지도 모를 현관 테러범도 잡히지 않는다.

CCTV를 설치하자니 타워형으로 네 가구가 사는 집이 모두 동의를 해 주어야 한다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고, 경찰 측에 아이의 신변보호를 요구했지만 그것도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여전히 범인은 오리무중......

우리 집을 비롯한 딸을 기르는 집, 아파트 전체, 더 나아가 온 동네가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과연 범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집앞을 염탐하고 심리적인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이는 누구일까? 같은 놈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었다.

사건은 종류만 다를 뿐 여러 다양한 모양으로 우리 딸아이와 우리 가정에 닥칠 기묘하고도 끔찍한 일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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