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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가출

by 산들바람

여지껏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도록 딸아이가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연락도 없다.

그 당시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의 부모님께 연락을 해 보니 우리 딸이 그 친구 집에 놀러를 갔고, 집에는 아버지가 함께 있었단다. 셋이서 저녁 식사를 하며 아버지는 반주 겸 술을 마시고 잠이 든 상태였고, 아이가 집에 가겠다고 하니 친구가 데려다주러 나간 상황인데 아직 소식이 없다고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하지만 초조한 시간은 점점 흐르고 이제 늦은 밤이다.


'납치가 된 건 아닐까?'


아직 그놈이 잡히지 않은 데다 집 앞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니 혹시 딸아이의 실종이 범인과 연관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범행 다음날도 우리 딸 앞에 공공연히 나타났던 자가 아닌가....

결국, 경찰서에 신고를 마치고 술이 깬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동차로, 우리 부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반대편 그놈의 동네로 건너가 후미진 골목과, 외진 곳 구석구석 이 잡듯 찾아보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남편은 귀에 들리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짐승처럼 예민하게 반응한다.

낡은 건물 계단도 올라가 보고, 컴컴한 학교에도 들어가 본다.

어두운 놀이터에 들어가다 플래시를 비추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어떤 남자가 보인다.

남편과 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다가간다. 상대방도 우릴 보고 의심스러운 걸음을 걸으며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알고 보니 우리의 신고로 수색 중인 경찰관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시간째 걷고, 걷고 또 걸으며 아이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아이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의 부모님과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모두 허사다.

그런데 친구의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그 친구는 이전에 가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데 지금 불길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으로 봐선 자발적인 가출이며 별일이 없을거란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상대 부모와 편을 나누어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계단을 꼼꼼히 살펴보기로 한다.

그때 시각 새벽 두 시... 교대 근무를 하기 위해 출근한 경찰 두 명이 우리 집 앞 공동현관으로 찾아왔다.

모두들 그곳에 집결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

낯선 번호로부터 내 전화기의 벨이 울린다.


"빨리 받아봐요.. 빨리..."


"스피커폰으로 해 놓고 받아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얘기 하지 말고..."


경찰관이 옆에서 재촉한다.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지는 상대방 전화....


"다시 얼른 걸어봐요.. 얼른...."


친구네 부모님도 애가 탄다.

재발신을 누르자... 끈적끈적하고 느린 팝송이 흘러 나은다. 마치 영화 속에서 보던 납치범의 시그널인가 싶은 공포감이 확 밀려온다.


"아아아...."


나는 쓰러지려는 몸을 벽에 기대며 간신히 정신을 바투 세웠다.

한참 뒤 전화기를 통해 삼십 대쯤으로 느껴지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남자가 아니네?)..... 여보세요?"


"아이들 잃어버리셨죠? 어머니이신가요?"


"네! 누구세요? 우리 아이들을 보셨나요?"


"새벽에 어린아이들이 공원에 있길래 위험해 보여서 제가 경찰서에 데리고 왔습니다"


"저희 경찰입니다. 지금 이야기 사실입니까?"


옆에 선 경찰이 다급하게 묻는다.


"네, 사실이에요!"


"그럼 경찰관 바꿔봐요.. 빨리!!!"


"네... *** 소속 **** 입니다!"


경찰관은 옆에 있는 부하직원에게 눈짓으로 얼른 신원 조회를 해 보라는 시늉을 한다.


"예, 사실이랍니다. 지금 지구대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하니 빨리 가 보는 게 좋겠어요!"


우리 집에서 약 2.5킬로 떨어진 곳의 지구대를 향해 차를 타고 이동한다.


"소영아!!!!!"


지구대 안에 앉아있던 딸아이가 우리를 보자 고개를 숙인 채 벌떡 일어선다.

부모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간단한 인적사항을 기재한 후 아이들을 데리고 밖을 나왔다.

그때 시각 새벽 세시...

집에 오니 얼추 네시쯤 되었다.


상대 친구의 부모는 주말부부였고, 엄마는 식당에서 일을 하시는데 새벽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단다. 매일 혼자 있는 게 너무나도 싫어서 자주 우리 집에 오곤 했는데 계속 집에 오는 것도 눈치가 보였는지 그날은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던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집에 가려하자 친구가 데려다 주기로 했던 모양인데 자신의 가정에 불만이 많았던 친구가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느냐며 계속 졸라대다 엄마가 일 하는 식당에 엄마를 찾으러 가자고도 했다가 갈팡질팡 하더란다.

걸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새벽 늦게까지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의 일터를 찾아가다 너무 힘이 들어 공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가는 길에 여러 대의 경찰차를 봤다고도 했다.


"시연아! 이쪽으로 와! 저거 우리 찾는 경찰차야"


"어떻게 알아?"


"야.. 지금 우리 성추행 사건으로 범인 아직 안 잡혔는데 우리가 집에 안 들어온다고 생각해 봐.. 그럼 당연히 신고를 했을 거고, 범인이 아직 안 잡혔는데 저렇게 많은 경찰이 우릴 찾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너 오늘 안 들어가고 싶다며!! 늘 혼자 있게 하는 부모님한테 반항하고 싶다며! 그럼 안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


철없는 이 녀석들이 정말 철없는 짓을 한 것이다.


"너도 친구랑 같이 있고 싶었던 거야?"


남편이 묻는다.


"친구와도 같이 있고 싶었지만 밤구경이 하고 싶었어요...."


아이가 일곱 살 되었을 때다.

길 하나 건넌 곳에 우리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어서 아이들 저녁을 차려준 후, 다시 예약손님 일을 마치고 아홉 시 가까울 무렵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빠, 엄마! 우리 모험을 떠나고 싶은데 지금 떠나도 돼요??"


오빠와 동생을 데리고 모험을 떠나겠다며 지극히도 만화영화 같은 질문을 하는 딸아이다.

아이는 항상 이렇게 엉뚱했다.

이런 기질이 자라면서 조금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사춘기에 들어서니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추진력도 생겼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항상 복선을 주었지만 우린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알았다 한들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테고....


담임선생님께는 초저녁쯤 대략의 상황을 알렸고, 아침이 되어 상세히 설명을 드린 후, 등교를 시켰다.

아무래도 성향이 비슷한 두 친구가 친해지다보니 자의든 타의든 여러 문제가 생겨난다. 선생님은 궁리끝에 당분간 임시 분반을 해서 둘 사이를 갈라놓아야 할 것 같은데 둘 중 어떤 학생을 다른 반에 보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저는 소영이가 다른 반에 가더라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걱정을 끼치고 잘못한 데 대해서는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요... 선생님이 부담 느끼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며칠 후 선생님께로부터 전화가 온다.


"어머니, 제가 분반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방과 후 소영이가 저를 찾아왔어요.. 제가 고민하는 걸 어찌 알았는지 자기가 다른 반에 가겠다는 거예요"


'선생님, 지금 누구를 다른 반에 보낼까 고민 중이시죠? 혹시 누구 한 명이 상처받을까 봐 그러시는 거면 제가 갈게요... 저도 잘못했다는 거 알고 있고요.. 시연이보다는 제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고민 안 하셔도 돼요'


그리고 다행히도 성추행범이 잡혔다고 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이 안도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집 앞 테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관 테러범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성추행범이 잡혔다는 소식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뿐... 더욱 불안한 마음이 자릴 잡는다.

그리고 며칠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다.


"어머니, 범인을 특정했습니다"


"그래요? 어떤 사람이죠?"


"아래층에 사는 6학년 학생이 한 짓입니다!"


"네???? 그 아이가 왜...?"


경찰은 증거로 아이의 몇 주간의 동선이 담긴 사진을 보내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15층에서 내려 우리 집 방향으로 꺾어 들어와 범행을 끝내고 계단으로 걸어내려 가거나 계단으로 올라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등의 사진이었다.

학생과 그의 부모와는 모두 통화를 하고 범행을 자백받은 상황이라 했고, 범행 이유는 아파트 게시판에서 우리 이야기를 부모를 통해 듣고, 불안감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했다.

그 아이의 말처럼 우리 집은 그동안 극도의 공포에 싸여있었으니 계획대로 되긴 했지만 촉법소년인 데다 어찌할 다른 방도가 없으니 그쪽 부모와 아이에게 사과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며칠 후, 과일 봉지를 들고 우리 집을 찾은 그 아이의 엄마는 그대로 현관에 선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아니.... 우리 애가 그랬다면 미안하긴 하지만 꼭 우리 아들이 그랬다는 증거 있어요?"


"제가 아드님 화면을 일일이 보여드려야 믿으시겠어요? 같이 자식 키우는 처지에 그런 사진 보시면 마음 아플 것 같아 안 보여 드린 건데... 어찌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지금 하는 말이 사과입니까?"


"아니... 나도 혼을 내기는 했어요..."


그러나 아들을 데리고 와서 직접 용서를 구하는 일은 없었다.

자식은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부모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어찌 되었든 우리 집에서도 다른 집에서도 십 대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 마음껏 질풍노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그들의 범행은 결코 단순한 십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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