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4학년 2학기에 들어선 어느 가을쯤이었다.
'선생님, 저 오늘 학교 가기 싫은데 안 가도 돼요?'
담임 선생님께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아마도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사춘기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건이지 않았을까?
결국 그날 한 살 터울 오빠와 역시 한살 차이인 남동생과 공모하여 등교하지 말자는 합의를 했던 듯하다.
다들 가방을 메고 인사를 하고 나가긴 했지만 각 반 담임 선생님께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한꺼번에 세 아이의 담임선생님들께 전화를 받으려니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그 당시 늦둥이가 20개월쯤 되어 갈 무렵이었고, 막내가 태어나기 전, 일일이 아이들 보호가 힘들 때를 대비해 폴더폰을 하나씩 사 주었어서 연락을 해 보니 모두들 같은 곳에 있다고 했다.
선생님들께 아이들 모두 학교로 간다고 했단다.
남편은 둘째는 주동자, 큰아들은 공모자, 셋째는 단순 가담자라 하며... 어쨌든 사태는 그렇게 수습이 되었다.
그런데 둘째가 막 5학년에 접어든 3월부터 본격적인 등교거부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작년처럼 어설픈 등교거부가 아니라 격한 반항이 동반된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항상 호기심 가득한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던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수없는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시를 쓰고, 글을 읽고, 재치가 번뜩이던 그 아이는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
대신 하루 종일 젖은 빨래처럼 의욕 없이 누워 있는 게 그 아이의 주된 일상이다.
누구보다 게으르고, 누구보다 이기적이며, 냉소적이고 부정적으로 로 변해가는 그 아이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처음 얼마간은 달래도 보고, 혼을 내 보기도 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메고 집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선생님은 아직 아이가 학교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오히려 어디로 갔는지 너무나 걱정이 되어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어느 날은 아파트 계단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온다고도 했고, 잠깐 외출했다 집에 오면 학교에 간다던 아이가 다시 들어와 LP판에 바늘을 올리고 음악을 듣고 있기도 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시각장애인 남편과 볼일이 있어 길을 걷는데 저 만치서 비를 맞으며 초점 없이 걷고 있는 딸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지 아빠와 엄마가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내 앞에 다가온 아이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러본다.
"소영아!! 소영아!!!!"(딸아이의 가명)
"아이, 싫어!!!!"
빗 속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엉겁결에 잡은 것이 가방이었고, 아이는 가방을 벗어던지고는 빗 속 어딘가 사라져 버린다.
내 등엔 막둥이가 업혀 있고, 옆엔 시각장애인 남편이 서 있으니 다 팽개치고 잡으러 가 볼 수도 없다.
옆을 지나던 남자가 걱정이 되었던지 내게 확인한다.
"저 아이 본인 아이 맞죠?"
"네................"
빗속에서 축 늘어진 아이의 가방을 들고 망연자실 서 있는 내 모습이 그가 보기에도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던지 이내 가던 길을 걸어간다.
당시 담임 선생님과는 거의 24시간 연락을 할 만큼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그나마 아이가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학교에 가거나 지각을 하거나 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또 전화가 온다.....
'오늘도 학교에 안 갔나?'
"어머니, 오늘 소영이가 늦게서야 학교에 왔는데 마침 비가 왔나 봐요... 비를 한가득 맞고 옷이 다 젖어서 왔어요.
갈아입힐 옷이 없어서 제가 체육시간에 입는 옷을 대신 줬어요. 어머니가 옷을 좀 준비해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양호실에 있습니다"
'허구한 날 학교를 안 가더니 왜 하필 비 오는 오늘은 갔을까....'
옷을 챙겨 들고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보안관님이 말씀하신다.
"소영이 사춘기가 왔나 봐요.... 우산도 없이 비를 철철 맞고 학교에 오더라고요... 소영이 많이 다독이셔야겠어요...."
아이는 그전까지 학교에서 깨나 유명인사였다.
누구보다 창의적이며 똘똘하고, 명랑하며 어떤 이에게도 생글생글 웃어주는 밝은 기운이 가득했던 아이...
날아가는 새들도, 길가에 난 잡초도, 마주치는 강아지조차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
보안관 선생님도 물론 우리 아이를 그렇게 기억했고, 나도 학부모들 사이에선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앗!! 엄마다!!!! 엄마가 와서 너무 좋아!!!"
양호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가 발딱 일어나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사춘기 접어들어서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더니... 이 세상에서 엄마만 없어지면 소원이 없겠다던 그 아이가 마치 사춘기가 오기 전 모습으로 되돌아온 듯 양호실에 옷을 싸 들고 온 엄마를 보며 반색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밝은 모습에 반갑고도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또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계속될 뿐이다.
급기야는 선생님이 제안을 하신다.
학교에 3일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그것도 아동학대의 사유가 되고, 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조사를 나온다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곤란에 처한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겠냐는 게 선생님 생각이었다.
"글쎄요... 제가 여태 길러본 소영이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테지만 지금 이것저것 가릴게 못 되니 한 번 해 보긴 해 보죠..."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거짓 신고를 하고, 구청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일단 아이를 대면하여 조사를 해야 한단다.
그러나 아이는 당연하듯 그들과의 대화를 거부했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학대는 아닌 듯했던지 나의 하소연만 듣고 돌아갈 뿐이었다.
오래전 초등학교 2학년 상담시간이었다.
"어머니 알고 계세요?"
"소영이가 수업시간 중 좀 지루하다 싶으면 뒤로 나가 치마를 펄럭이며 춤을 춰요...."
"네???? 전혀 몰랐습니다. 너무 당황스럽네요 선생님"
"원래 위인들의 어린 시절은 모두 특이하잖아요... 소영이는 그런 학생이니까요....."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을 모두 보내고 딸아이만 남긴 채 교실에 전자피아노를 가져다 놓고는 아이가 1학년때 직접 작곡했다는 곡을 연주해 보라 하셨고, 연주가 끝나자 아주 놀라워하셨다.
1학년 성적표의 생활기록부에도 담임선생님은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행동양상이 영재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고 기록해 주셨었다.
어쨌든 보통의 아이들과는 너무도 달랐던 이 아이가 사춘기를 만나니 감당 못 할 아이가 되어간다.
결국, 우리는 이사를 하고, 전학을 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 해 보기로 했다.
과연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앞으로 어떤 일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