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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유언장

by 산들바람

"여보세요?"

"**이 어머님이시죠? 저는 ** 초등학교 위클래스 상담교사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네, 어머님, **이와 지난주 상담 했었고요. 어머님과도 상담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6년 전, 아이가 6학년 때의 일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며 5학년 1학기부터 등교 거부를 해 왔기에 교장실, 상담실은 익히 여러 번 다녔었고, 전학 후 마음을 잡는가 했는데 이젠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아이가 학교 상담은 거부하지 않았는지 학부모인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어머님 요즘 **이에 대해 어떤 고민이 가장 크세요?


"아이가 자꾸 자해를 하는데요.. 어떤 도구로 하는지 알거든요. 그런데 아이의 성격상 그걸 빼앗으면 생각지 못한 더 한 것을 가져다 자해를 할까 봐 초조하게 지켜보는 중이에요"


"아... 그러시군요..."


그리고는 아이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상담이 이루어졌다.

상담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선생님이 불쑥 말을 꺼낸다.


"그런데 어머니 **이 자살 시도 한 거 혹시 알고 계세요?"


".........!!!!!!"


순간 머릿속이 텅 빈 듯 하얘지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내가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도 모를 만큼 혼돈스러울 뿐이다.


'이거였구나...

오늘 상담을 하자고 한 이유는 이 사실을 내게 알리기 위한 구실이었구나...."


자식을 양육하며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지라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순간이다.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는 것도 모른 채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엄마라면서...

다 이해한다면서...

다 안다면서....

그런 선택을 하려 했던 자식의 절박했던 마음도 모른 채 엄마라고??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고???

교문을 나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바닥에서 짐승 같은 절규를 쏟아내며 소리 내어 엉엉 운다.

지나가는 이가 쳐다보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자식이 죽으려 했다는데...


"선생님께는 얘기하던가요? 몸은 멀쩡하다던가요? 어떤 방법이었다고 하던가요?"


아득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나에게....


"진통제부터 구급함에 있는 약, 집에 굴러다니는 모든 약을 다 먹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다음날 멀쩡히 일어났다고 저한테는 얘기하더라고요"


"다행이네요... 누구에게라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렇지만 가슴이 너무 아파요...

심장이 찢어질 것 만 같아요. 선생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나를 어린 선생님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어떤 말도 건넬 수 없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의 자책은 계속될 뿐이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큰아들과 작은 아들 비염약이 모조리 사라졌다.

아이들 약을 챙겨 주려는데 여기저기 살펴봐도 도통 보이지 않으니 약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갔나 했었는데 설마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집에 있는 약을 다 모아서 먹었다더니....

아이다운 어설픔이 참 다행이지만...

열세 살 아이는 그런 방법을 택할 만큼 세상살이가 버거웠던가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내가 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다시 떠나버릴까 절대로 아는 체를 해서는 안된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일 없는 것처럼 요즘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어색한 안부를 물을 뿐이다.

그리고 딸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책상에 앉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모르는 듯 편지를 써서 자주 보는 책 사이에 꽂아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의 일이었다.

편지 위에 자칫 눈물이라도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며칠 후 아이의 방을 청소하다 책상 정리를 하던 중 꽂아둔 책과 책 사이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진다...

줄무늬 노트에 뭔가를 적어 꼬깃꼬깃 접어두었는데

종이가 접힌 겉면엔 빨간색 수성펜으로...


'이젠 정말 모두 안녕'이라 쓰여 있다.


"헉!!!!" 하는 외마디 소릴 내며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펼쳐본다.

노트의 반절 정도 채워진 글은 보기에도 섬뜩할 만큼 시뻘건 색으로 가득했으며 지난날 상담 선생님께 들었던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던 그 무렵의 날짜가 적혀 있다.


내용인즉슨....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싫고, 자긴 아나키스트가 좋단다. 무정부주의가 되었으면 좋겠단다.

또한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다 싫어하고 욕하며 손가락질받는 게 싫으니 내가 죽어주면 될 게 아니냐란다.


아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 친구들이 회장 후보로 나가라는 걸 자긴 감투가 싫다며 정 그러자면 다른 아이를 회장으로 밀어주고 자긴 부회장을 하겠다고 해서 선출된 지 얼마 안 되었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이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 자기들끼리 묘한 경쟁을 하는 것을 쭈욱 봐 왔었다. 지금도 아이의 말이라면 반아이들도 거의 수긍하는 분위기이고, 담임 선생님도 그러한 정황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는데....

우리 가족이야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대체 누가 자신의 행동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을까....

게다가 아나키스트를 바란다니....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 일곱 살에 막 들어섰던 어느 날 놀이기구를 타려고 롯데월드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있을 때였다.

거울 속에 비친 다른 이들도 나란히 허리를 숙이고 한참 손에 비누칠을 하고 있을 때 내 옆에 선 아이가 불쑥 묻는다.


'엄마 왜 사람들은 신을 믿어요?'


롯데월드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일곱 살 아이에게 받았던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할지...

지극히도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롯데월드 화장실에서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응... 으응... 그건... 사람은 생각보다 나약한 존재일 수도 있어...."


"그럼 인간은 모두 다 흔들리는 존재예요?"


"그래... 흔들린다는 게 기준이 다를 수는 있지만 엄마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몇 발만 더 걸어가면 롯데월드 입구가 나오는 데다 아이의 흥을 깨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그렇게 대화를 마쳤던 그 기억이 아이의 유언장을 읽는 지금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다른 이들은 정신과에 가봐야 되지 않겠느냐, 상담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나라고 시도를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연계해 준 상담센터에는 결국 아이가 거부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아이 것까지 24회기를 모두 내가 받아야 했다. 정신과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로도 아이는 계속해서 자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 보통은 자해를 보이지 않는 부위에 하는데 훤히 보이는 곳에 한다는 것은 나를 좀 봐달라... 이런 뜻이거든요"


상담 선생님의 말이었다.


문을 닫고 조용히 있어도 엄마의 느낌으로 아이가 또 그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인 나는 느낄 수 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했던 어느 날 나는 머리를 하나로 단단히 올려 묶고 전투태세를 갖추고는 문 밖에 선 채


"너 지금 하고 있는 거 멈춰!! 엄마는 네가 뭐 하는지 다 알고 있어"


"............"


"난 경고했어. 너의 안전을 위해 엄마는 이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결국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가니 아이는 등 뒤로 그것을 후다닥 감추려 했고, 내가 그것을 낚아채려 하자 아이는 더욱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나도 각오를 단단히 했던지라 고된 육박전을 치르고서야 겨우 그것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부모란 때로는 아주 냉정해져야 할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그 후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중학교 입학 후 한 번 더 그런 시도가 있었다.

페이스북에 자신이 먹고 난 다량의 약껍데기 사진을 올리고 휴대폰을 꺼 둔 채 사라져 버린 아이......


다른 반 친구가 그것을 자신의 담임 선생님께 알렸고, 또 우리 아이 담임 선생님이 알게 되어 나에게 연락을 해 오셨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서 나 또한 온 동네를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잡듯 찾아다니고 있었다.

선생님께 최초로 연락을 받았던 시간이 오후 네시 반쯤이었는데 밤 열 시쯤 아이에게 메시지가 온다.


'엄마,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나 안전하게 잘 있고, 엄마가 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어 집에 들어갈게...

대신 배고프니까 밥 먹고 들어갈게...

사랑해...'


'살아있구나...!!!!'

'안전하게 살아서 널 볼 수 있는 거구나!!!'


이런 심각한 상황에도 밥을 먹고 오겠다는... 아이의 엉뚱함은 여전하다... 내 딸이 분명했다.

일단 아이가 안전하게 잘 있다는 것과 집에 오겠다는 말에 안심하면서도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흐른다.

약을 먹은 채 행방불명된 아이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 하다가도 차라리 보내줘야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죽음이 소원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면... 너와 나의 인연이 고작 만 십삼년 밖에 안되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세상에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너의 존재만으로도 엄마는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었다고...

내가 그럴 권리는 없지만... 엄마가 너를 잘 보내주겠다고.....


혹시 내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먼저 경찰서에 연락해서 아이가 보낸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잡혀 오는 것처럼 하고 싶지는 않으니 죄송스럽지만 모두 철수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믿고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아이를 찾아다니느라, 마음 쓰느라 초췌해진 나의 모습을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뒤 아이의 방을 청소한다.

아이의 침구를 정리하며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계속 닦아낸다. 연신 중얼중얼 기도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린다.


열한 시 반쯤, 아이가 아파트 입구쯤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얼른 밖으로 달려 나가 아이를 맞이했다.

오열하지 않고, 담담하게....

슬퍼 보이겠지만 말없는 미소를 얼굴에 가득 머금으며....

아이의 손엔 시장에서 먹고 남아서 싸 들고 왔다는 곱창볶음이 든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아이의 겉모습만 보고도 어떤 직감이 왔는지...


"나도 너 비슷한 딸 키워봐서 아는데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얼른 들어가....

가서 새 마음먹고 잘 살아.. 지금 우리 딸은 스물일곱 살인데 지금은 얼마나 예쁘게 잘 자랐는지 몰라"


만약 지금도 그런 슬픈 모습의 아이였다면 나는 결코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지난날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에 아이가 오랫동안 잠을 자는 것일 뿐인데도 걱정스러운 날을 보낸 지가 채 얼마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가게 일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들어가 조용한 아이 방에 들어가니 미동도 없이 자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아이가 안전한지 숨소리라도 듣고 싶지만 찬 바람을 맞고 들어간 그 기운에 잠에서 깰까 그러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서 있자니 너무나 걱정이 되어 얼른 손을 덥혀 가만히 발을 만져본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러자 아이는 잠결에 짜증스러운 듯....



"아이, 왜 깨워..."


'이 녀석.... 엄마가 왜 그런지..... 혹시라도 나중에 자식 낳아 길러보면 엄마 심정 알 거야....'


"으응..... 너무 오래 자는 것 같아서....... 너 잘못된 줄 알았어...."


"아이고... 엄마... 내가 왜 죽어... 이제 안 죽어...."


"응.... 고마워....."


글을 쓰면서 폭풍 같았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여러 감정이다.

또한 예민하고 섬세하게 태어나 치열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몇 곱절 더 힘들 텐데 잘 버텨주어서 고맙고, 그럴 때마다 이 아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혹시라도 자녀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계시는 부모님들이 계시다면 꼭 힘내시길 바란다.

잘 버티고 이겨내셔서 달라진 아이의 어여쁜 모습을 함께 보는 그런 날이 오기를...

작은 힘을 보태드리고 싶다.


이 아이의 이야기를 쓰자 해도 소설이 몇 권이다...

그래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이 아이의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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