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며 그네를 타고 싶다.
그네를 타면 하늘이 예쁘다.
하늘을 보면 구름이
천사 모양이다.
그네를 타면 바람이 내 얼굴을 만져준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난 하늘이 예쁘다.
그네는 내 친구다.
2014년 7월 12일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여름이었다.
책을 읽다 알게 된 것인지 '산문'과 '운문'에 대한 차이를 묻는다.
아이가 알아듣기 편하도록 산문은 일정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쓴 글이며 운문은 어떠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함축적 의미, 은유적 표현이 담긴 글을 쓰는 것인데 '시와 동시'가 이에 속하는 글이라 했다.
"그럼 지금 생각 나는 주제로 잠깐 시를 써 봐도 돼요?"
"그래? 소영이가 생각나는 대로 한 번 써 볼래?"
"네! 엄마, 나는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게 참 좋거든요... 그래서 그네에 대한 시를 한 번 지어보고 싶어요"
그리고는 공책과 연필을 들고 방에 들어간지 약 십여분쯤 지났을까? 처음 지어보는 동시라 잘 못 써서 부끄럽지만 그네를 타면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단다.
세상에 태어나 생전 처음 써 본다는 동시를, 수줍어하는 아이 대신 남편에게 읽어주니 금새 눈가에 눈시울이 맺히고 코가 빨개진다.
아주 짧은 글이지만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그네를 타며 느끼는 그 감성이 우리에게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일까?
연연년생의 삼 남매, 조금 부족한 동생, 시각장애인 아빠를 도와 가게일과 집안일을 하느라 늘 분주한 엄마....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야무지게 제 신변을 챙길 줄 아는 딸아이에게 손이 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덜 쏟는 것은 아닌데 여덟살 아이가 그러한 엄마의 속을 다 알기엔 아직 어리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상황을 너무 잘 알아서 엄마의 품이 그리워질 때면 아이는 놀이터로 향했는가보다.
그네를 타며 엄마의 정신적인 빈자리를 채워갔을 아린 속이 이 짧은 글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져 더욱 뭉클했다.
딸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운문으로 표현하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주제가 생각날 때마다 동시를 지어봐야겠다고 한다.
'그래.... 네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매체에 너의 생각과 감정을 더 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글을 쓰렴.....
엄마는 그런 너의 표현을 존중하고, 응원할 거야....'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약 5-6년간 겪은 사춘기라는 어두운 터널을 함께 지나오며 무수한 날들을 좌절과 우울, 슬픔과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뒤덮곤 했었다. 그럴때면 딸아이가 썼던 글을 읽으며
해맑던 아이의 지난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앞으로 써 나갈 이야기 중간중간 이러한 글을 함께 연재해 보려 한다.
그 시절, 그 순간 너의 마음은 이러하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