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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SNS 세계(학폭 가해자가 되다)

by 산들바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등교거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춘기를 알렸던 아이....

하루 동안의 어설픈 가출, 자해, 자살시도 등 질풍노도의 상징이라 할 만한 모든 행동을 총망라할 기세다.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수십 번 생각했고, 별 탈 없이 졸업만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나온 세월이었다.

다행히도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럭저럭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는 듯 보였고, 출석도 충실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영이 어머니, 소영이가 학폭 가해자로 신고되어 학생부장 선생님이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게 될 것 같아요"


"네??? 학교폭력이요????!!!!"


나중에 듣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학기 초 실시했던 심리검사 중 자살위험률이 높았던 딸아이에게 담임선생님은 아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역할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듯하다. 궁리 끝에 학급 출석정리를 담당하게 하셨는데 같은 반 학생 중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남학생이 있어 잘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에 살갑게 대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그 친구가 자신의 sns 계정에 딸아이의 실명과 함께 '잘 챙겨준다. 친하다'는 내용을 올렸는데 다른 학교에 다니는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그것을 보고 sns 메시지를 통해 딸아이에게 불쑥 연락을 해 온 것이다.

A(자신의 남자 친구이자 딸아이와 같은 반 남학생)를 아느냐, 그렇다면 그 애와 친하냐는 질문에 친하다기보다는 그냥 앞 뒤로 앉아서 자주 얘기를 하는 편이라 하니 그 이후부터 계속적인 욕설과 어디서 만나자는 얘기를 하더란다.

처음엔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그런 메시지를 보내니 딸아이도 감정 섞인 말을 하게 되고 싸우게 되었다.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고 싶지 않았던 아이는 먼저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며 메시지를 차단하자 자신의 친구를 시켜 또 다른 방법으로 끈질기게 연락을 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화해를 하더라도 만나서 하자며 아는 선배가 있으면 데리고 나오라더란다.

사춘기 들어서는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털어놓지 않았었기에 혼자 전전긍긍하던 중 SNS에서 '고민이 있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라는 사람의 글을 보게 된 것이다.

살갑게 대해주는 고등학교 2학년인 그 언니에게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어떻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느냐 묻더란다.

상대가 아는 선배를 데리고 나와 함께 이야기하자는데 자신은 아는 선배도 딱히 없는 데다 서로 오해도 풀고, 화해를 하고 싶으니 중재를 해 줄 수 없겠느냐 물었단다.

가상의 세상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언니였지만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주며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모습에 마음이 열린 모양이었다.


결국 얼굴도 모른 채 메시지를 보내 괴롭히던 상대와 어느 편의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시비를 걸어오던 상대편은 아는 언니들과 함께 온다고 하니 자신은 sns에서 알게 된 친절한 언니와 함께 가면 될 거라 생각하며 안심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낯선 남자가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묻더란다.

어리둥절한 아이가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언니가 직접 오는 게 아니었느냐' 물으니 나와 친한 선배라며 안심하라고 했단다.

사춘기 이전엔 참으로 똘똘하고 상황 파악도 잘하던 아이였는데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진 이 아이는 이젠 판단력도 흐려져 있다.

그 언니의 말을 믿고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상대 쪽에서 어느 노래방으로 오라며 약속 장소를 변경했다.

큰 의심 없이 처음 만난 그 성인남자와 함께 해당 장소에 도착하니 몇 주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여자 아이는 보이지도 않고, 중학교 2학년 남자 네 명과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같은 반 남학생, 다섯 명만 와 있더란다.

이상하다 싶으면 애초에 그 자리를 피했어야 했지만 판단력도 흐려져 있고, 철없고, 세상경험 없는 사춘기 아이가 그나마 처음 만나게 된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더 큰일이 났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딸아이와 함께 온 그 남자는 상대측 남학생들에게 잘못을 시인하라며 자신은 안양의 어느 조직폭력배 조직원이라 하더란다.

상대측 남자 아이중 대장격인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소리를 높이며 대들자 숨겼던 흉기를 꺼내어 위협했고,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

자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 놀라운 상황을 지켜보는 딸아이도 눈이 휘둥그레질 뿐 어찌해야 하는지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자신을 조직폭력배라고 소개한 성인 남자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딸아이는 상대를 협박하기 위해 조직폭력배를 불러 사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지역에선 중고등학생 일진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 일진 조직들이 함께 나와 서로 세를 과시하며 싸움을 하는 것이 으레 껏 있는 일이었던가보다.

그런데 딸아이는 순수하게 화해를 하는 자리로 생각했고, 친절하게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던 언니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것이었지만 상대방은 전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순수한 생각으로 나온 이들은 아니었기에 그 사건을 이용해 역으로 우리 딸아이를 협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대장이라 하던 남학생이 sns상에서 '합의방'이란 것을 만들어 자신이 연결된 다른 아이들 몇몇을 불러와 딸아이를 강제로 초대해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 번째, 학교에 이야기하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다.

두 번째, 부모에게 연락해 너의 잘못을 알리겠다.

세 번째, 이 모든 것을 눈 감아 줄 테니 자신들이 제시한 날까지 백만 원을 합의금으로 달라.


출석부 정리를 하던 자신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에 휘말리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미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의도한 잘못은 아니었기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사건을 빌미로 자신이 또 다른 협박을 당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릴 증거를 만들기 위해 세 번째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날 이후부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러 명이 메시지로 연락을 하거나 남학생이 학교 정문 앞에 찾아가 딸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등 무언의 압박을 하던 중이었다.

매일 학교 앞을 서성대는 다른 학교 교복 차림의 남자아이에게 수상함을 느꼈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왜 우리 학교 앞을 배회하는지 묻자 우리 딸아이가 조직폭력배를 사주해 자신들을 흉기로 위협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사건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측 중 네 명은 부모와의 관계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닌지 사건에 대해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았고 유아무야 넘어가기를 원했지만 합의방을 만들었다는 그 아이의 부모는(물론 경찰서에서 연락이 갔을 것이다) 딸아이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다. 물론 그 아이는 자신이 합의방이란 것을 만들어 금전을 요구하며 매일 협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어쨌든 이 모든 사실을 듣게 된 나로서도 보통 충격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의 실수에 대해 질책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이후 사건의 일정에 따라 학생과에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으며 상대측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처음 도움을 요청했다던 그 여학생에게 혹시라도 금전을 주겠다며 그 대가로 범죄를 청탁한 것은 아닌지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그저 상대와의 분쟁에 있어 순수하게 화해를 시켜주는 중재자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혐의 없음이 되었다.

그간 오간 메시지 내용과 도움을 주려던 여학생과, 그날 나타난 조직폭력배, 딸아이를 직접 조사하며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상대측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느냐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해 왔고,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울고 울고 또 울기만 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불같이 화를 낸다.

결국 나는 상대방 아드님 또한 '합의방'이라는 것을 만들어 백만 원이라는 금전을 요구하고 있으며 매일 학교 앞에 찾아가거나 메시지로 협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 어머니는 매우 당황하며 증거가 있느냐 물었고, 나는 그간 딸아이가 저장해 둔 대화 캡쳐본을 전송하며 그 무리들 중에는 소년원에서 출소한 지 며칠 안 되는 아이들도 다수 섞여있음을 알렸다.

나 또한 학교 폭력으로 신고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상대 어머니는 자식을 잘못 키워 자신도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고, 더 이상 전화를 해서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다.

그 어머니는 이혼 후, 홀로 두 아들을 양육하다 아들의 실상을 알게 되며 받은 충격이 보통이 아닌듯했다.

그러나 학교폭력 신고는 철회하지 않았기에 교내뿐 아니라 교육청까지 사건이 접수되었고, 아이와 나는 교육청에서 열리는 학폭위에 출석해 여러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물론 담담하지만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떨리고 울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며 아이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 중엔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왜 흉기를 막고 상대편을 구하지 않았느냐는 다소 억지스러운 호통을 치던 이가 있었는데 모두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이제 겨우 만 열세살 여자 아이에게 할 소리냐 원성이 자자하자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경찰조사 결과가 고의성이 없음으로 나와 교육청 학폭위와 교내에서 각각 1호 처분(서면사과)을 받았으며 아이는 진심을 다 해 자신의 잘못을 피해자 측 학생에게 전달했다.

우리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반성했고, 역으로 받은 협박에 대해서는 고발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나마 자의든 타의든 벌어진 결과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진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쓴 진심의 글이 상대방의 마음을 누그려뜨렸는지 용서하겠으며 다시는 이 사건에 대해 문제 삼지 않겠다는 회신도 받았다.


경찰과 검찰 조사결과 sns에서 청소년들의 고민상담을 들어준다던 여고생은 타 지역의 폭력조직원이었으며 자신이 보낸 남자와는 다른 조직이라 했다.

미끼성 문구로 청소년들을 유혹해 금전을 빼앗거나 성매매 또는 유흥주점의 포주 노릇을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지키셨는지 우리 딸에게는 진심으로 순수한 호의를 베풀었으며 경찰조사에서도 같은 진술을 했단다.

어쨌든 딸아이의 사건이 단초가 되어 여죄가 드러나며 4년형을 확정받고 소년원으로 송치되었으며 퇴학처리가 되었고, 성인 남자는 벌금 삼천만 원에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경찰을 통해 알게 되었다.


SNS라는 무형의 세상속 이면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청소년을 비롯해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선한 얼굴로 마수의 손을 뻗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순간이다.

또한 일부 청소년들 스스로도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도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고, 상대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을만큼의 고통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자신을 지켜주는 안전지대라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피해자도 가해자도 결코 그 세계를 단절할 수는 없었다.

그 속에서 친구를 만들고 위로를 받고,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는 그것에 이미 중독되어 결코 스스로 결박을 풀 수 없게 하는 기이한 세상이었다.

결국, 금단의 현상이 나타나고 다시 그것을 찾게 되는... 그런 요물스러운 세상이었다.


그 사건 당시 해당 학생 중 한 명이 딸아이를 앞에 두고 자신의 일진무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얘기했단다.


"야, 아는 선배(아는 일진) 다 불러오라고 했더니 진짜 조폭을 데려왔어! 얘 완전 미친년 아니냐?"


그 사건으로 딸아이는 본의 아니게 그 지역 일진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그들의 타깃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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