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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와 단 둘이 여행

by 산들바람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자살 위험률에 대한 검사에선 항상 위험군으로 분류되던 딸아이 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중학교 1학년인 그 당시에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자살 시도를 두어 번 했었고, 자해를 일삼았다. 그러고도 발산되지 못하는 부정적 에너지를 일탈 행동으로 채워나갔다.

도대체.... 무엇이... 어떤 일들이 너를 이토록 아프게 했을까....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이 모든 일이 엄마인 내 탓인 것만 같아 매일, 매시간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곤 했다.

어떤 계기가 있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러 방법을 모색해 봤고, 실행해 봤지만 그 아이의 마음 가득 차지한 그 무언가를 걷어내기에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시엉겅퀴로 가득한 그 아이 마음에 잠시 쉼을 줄 수 있을까 싶어 하루쯤 여행을 가 보자는 결심을 해 본다.

한치도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 남편과 다섯 살 막내둥이, 발달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아들, 중학생 큰 아들을 두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매번 이런 이유로 순위에서 밀려난 딸아이에게 기다리라는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는 그 아이에게 사실 말을 붙이기도 쉽지 않았다.

용기 내어 겨우 여행 의사를 물어본 건데 어쩐 일인지 흔쾌히 수긍하는 답을 얻었다.

체험 학습 신청도 했고, 담임 선생님도 적극 응원해 주신다.


"어머니, 그날 영상 학습은 안 해도 상관없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소영이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다 오세요"


코로나 시기여서 전국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영상수업을 듣던 때였다.

바다가 보이는 부산역 바로 옆 숙소를 예약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말고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아이를 위한 배려였다.

ktx에 몸을 실은 우리는 별 말도 없었다.

딸아이는 이어폰을 끼고는 휴대폰 속 친구들과 나누는 메시지에만 정신이 빠져 있는 모양이다.

별다른 계획 없이 도착한 부산역....


"숙소부터 갈까?"


"아니!!"


"그럼 어디 가고 싶어?"


"PC방........"


"그다음은?"


"롯데리아...."


"그다음엔?"


"숙소 가서 자고 내일 집에 가야지...."


나는 인내심 많은 좋은 엄마는 아닌 듯하다.


"너 이러려고 부산까지 왔니? 우리 잘해 보려고 여기 온 거 아니었어?"


"................"


뭔가 대단한 것을 바라고 온 것은 아니지만 이곳까지 와서 어깃장을 놓는 사춘기 딸아이가 외계인만큼이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설왕설래하다 PC방은 안 가겠단다.

나도 한 발 양보해서 부산역 앞 롯데리아로 간다...

아이는 나와 눈도 맞추지 않고 휴대폰에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킬킬 웃고 있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니... 숙소에 가서 자야지"


'야.... 뭐 이런 애가 다 있냐?'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올 듯 하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아본다.

아이는 내가 건네는 모든 말이 귀찮다는 듯 거울을 꺼내더니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바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어느새 하염없는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려 테이블 위로 두둑 두둑 떨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닦아낼 마음도, 의지도 모두 상실해 버렸다.


아이가 어린 시절 깨나 영특했었다.

겨우 만 세 살이었을 때도 뉴스를 보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국제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기 하며 기도제목을 만들어 기도하곤 했었다.

으례껏 이런 아이는 공부도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공부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억지로 공부시킬 생각은 없었기에 요즘은 걸음만 떼면 보낸다는 학원도 보내지 않고 한글도 떼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초등학교 3학년이 되니 학교에서는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된다.

알파벳도 모르고 3학년이 된 아이가 수업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 마음이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군은 어린 시절부터 영어 유치원은 기본이고 학년이 오르면 유학을 가는 사례도 빈번한 동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첫 듣기 평가 시험이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80-90점인 친구들도 많았는데 딸아이가 만점을 받아 온 것이다.


"우와.... 학원에도 한 번 안 가 보고, 알파벳도 익히지 않았는데 어떻게 만점을 받았어?"


"응.... 언어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들으려고 노력하면 들을 수 있어요.... 비록 녹음된 음성이지만 사람이 감정을 담아서 녹음한 거잖아요..."


'언어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롯데리아에서 성 난 얼굴로 화장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니 초등학교 3학년 그 당시 아이가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너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너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엄마가 더 많이 이해하려 노력했어야 하는 건데 엄만 참 부족한 사람이구나...'


립스틱을 고쳐 바른 아이가 불쑥 내뱉는다.


"엄마는 참 바보 같아! 난 그냥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엄마랑 함께 있기만 하면 좋은 건데.... 엄마는 나랑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아....."


나는 순간 오열하고 말았다.

나로서는 한 번도 그러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본 적이 없어 내 속으로 낳은 내 딸의 마음을 전혀 알 길이 없는데... 그저 엄마가 싫다고 했던 그 표현들은 엄마와 단둘이, 더 가까이 있고 싶다는 반항의 표현이었구나....

나는 너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온전히 엄마를 갖고 싶은 십 대의 네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구나...


나는 그 시간 이후, 아이의 모든 것에 맞춰주기로 했다.

비록 해변을 걸으며 다정하게 얘기할 수는 없어도 남포동 올리브영에 가서 함께 화장품을 고르고, 옷가게에 들러 어른스러운 옷을 사겠다는 아이의 떼를 들어주고,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과 즉석음식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잠자리를 정리하다 아이의 가방을 다른 곳에 옮기려 들어보니 묵근하다.


"아령이라도 들고 왔어? 왜 이렇게 무거워?"


"영상 수업 하려고 노트북 들고 와서 그래....."


"뭐? 집에서는 수업도 안 듣고 속을 그렇게도 썩이더니 여행 와서는 수업을 듣겠다고 이걸 들고 왔다고???.... 아냐... 아냐.... 그래.... 알았어....."


다음날 아침 가족 카톡으로 사진 한 장과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각장애인 아빠가 막내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생전 처음 머리를 묶어주었다는 것이다.

있는 대로 한껏 제 나름의 멋을 부린 막내딸 사진을 보니 마음이 사르르 녹는 듯 잠시나마 웃음이 난다.


"아쉽다. 부산까지 왔는데 바다 한 번 못 보고 집에 가게 생겼네..."


늦잠을 자고 난 딸아이가 이제야 마음을 열었는지 툭 내뱉는 말이다.


"대신 창문 밖으로 항구가 보이잖아... 이렇게 봤으면 됐지 뭐... 다음에 바다 보러 또 오자...."


"........... 응..............."


물론 그날의 이벤트로 어둡고 깊은 사춘기의 터널을 단번에 빠져나올 수는 없었지만 먼 훗날 딸아이의 기억 속에 그날은 어떻게 기억되고 작용될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본다.


'언어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학문이야... 그래서 들으려고 노력하면 들을 수 있어.....'

딸아이가 만 9년을 살며 터득한 제법 설득력 있는 그 말을 지금까지도 종종 곱씹어 본다.

남편과 또는 다른 이와 의도치 않은 마찰이 빚어지더라도 딸아이가 했던 말을 생각하며 타인이 표면적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보다는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기로 했다.

타인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싶어서 말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되려 나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곧 성인이 될 내 딸....

나는 너를 양육하며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때로는 내려놓을 줄 알고, 감사할 줄도 아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도 꽤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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