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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아이...

by 산들바람

큰딸아이는 정말 예민했다.

막 태어난 누운 자리 아이가 울음소리는 또 왜 그렇게 큰지, 밤새 열두 번도 더 깨고, 잠이 들었더라도 바닥에 발바닥이 마찰되는 소리에도, 살짝 내려놓는 수저 소리에도, 셔츠가 사각거리는 소리에도, 잠든 아이 옆에서 성경책을 읽다 종이를 살짝 넘기는 소리에도 정말 너무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울어댄다.

또 잠투정은 어찌나 심한지 많은 아기들이 그렇듯 이 아이도 등에 센서가 달려 있어 잠든 아기를 바닥에 눕히려 등이 살짝만 닿아도 센서기가 민감하게 작동하며 온 집안과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댔다.

그러니 딸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아이를 데리고 어딜 가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다.

식당에 갔다가도 식사가 나오는 도중에라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울어대서 혼비백산 나오는 때도 종종 있었고, 어딜 가더라도 그랬으니 말이다.

교회에도 갈 수 없고, 구역예배도 나갈 수 없었다.

그러니 교인들 사이에서 표면적으로 말은 않지만 혼자만 아이를 기르는 것도 아닌데 왜 저리 유난을 떠는가 싶은 생각도 들게 뻔하다. 나라도 겪어본 적이 없다면 그렇게 얘기했을지도 모르니까....

그 당시 구역장은 나와 동갑인 데다 이미 초등학생, 유치원생 등 세 명의 아이를 둔 집사님이었다.

전화를 여러 차례 하며 아이가 우는 게 뭐가 어떠냐, 애들 키우다 보면 다 그렇지 않으냐며 이번에는 꼭 구역예배에 참석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결국 생후 5개월 된 큰 딸아이를 안고 예배 장소인 구역장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막 예배가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딸아이가 그 큰 목소리로 울며 잠투정을 시작한다. 울음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열명 남짓 부르는 찬송가 소리도 다 뚫고 나올 만큼 우렁차다.

보다 못한 구역장은 혹시 바닥에 눕혀보면 어떻겠느냐 묻는다.


"눕히면 정말 난리가 날 거예요...."


"아휴.... 누군 애 안 키워봤나?"


아이를 이불을 깔아 둔 바닥에 눕히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듯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교인들도 구역장도 모두가 깜짝 놀란 눈치였다.

내가 한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구나 충분히 이해한 듯 하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결국, 예배 인도를 하려던 전도사님이 자신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겠단다.

차 안에서도 어찌나 울어대던지 운전을 똑바로 할 수는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 후로는 아무도 나에게 예배에 나와라, 믿음이 없어졌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어쨌든 세월을 훌쩍 넘어 사춘기가 되니 그 어린 시절의 기질이 또 유감없이 발휘되어 참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재작년쯤 그나마도 사춘기의 기운이 조금씩 사그라들 무렵 어릴 때부터 얼마나 예민했는지 모른다며 생후 5개월의 에피소드를 얘기할 때였다.


"나 그거 기억나 엄마, 아니 근데 전도사님은 설교한다면서 왜 그런 옷차림으로 오셨어?"


"뭐? 그거 너 태어난 지 5개월, 만 4개월 때의 일인데 기억이 난다고?"


"응, 옆에 삼선 있는 트레이닝복 바지에 맨발이었잖아"


"그럼 차도 기억나?"


"응, 짙푸른 남색 트럭이었던 거 나 다 기억나!!"


"와!! 정말? 너 그럼 물어보자, 버스 안에서는 왜 그렇게 울었던 거니? 난 버스 타고 목적지까지 제대로 가 본 적이 별로 없어! 네가 얼마나 울던지 사람들한테도 민폐 끼치는 것 같고..."


"그건 내가 예민하다 보니까 주위 소리들이 다 신경 쓰여서 잠을 잘 수 없는 거야... 간신히 잠이 들어도 오토바이가 버스 옆을 지난다던지 기사님이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하면 깨서 울게 되는데 어느 날은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더니 가로수가 가득 덮인 길을 걸어가는 거야... 난 그게 너무 좋았어...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한 가로수 사이를 걷는 게 너무 좋아서 그다음부터는 그 쯤 가까이 되면 별일 없어도 울기 시작했지... 그럼 엄마는 또 나를 안고 내려서 가로수 사이를 걷더라고......"


"뭐야???? 그럼 내가 너의 꾀에 당하고 살았던 거네??!!!"


그랬다. 아이들이 태어나 살던 우리 동네는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가 있었고, 그 아파트 안과 밖, 그리고 도롯가와 길가엔 오래된 나무들이 참 많은 그런 동네였다.

그런데 생후 몇 개월도 안된 갓난아이 때 보았던 장면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단지 시각적인 기억뿐만 아니라 그 당시 상황과 감정, 또 엄마의 심리를 이용한 고도의 전략이 있었다고?


"그럼 택시 안에선 왜 그렇게 울었던 거야?"


"엄마가 키가 작아서 수평으로 앉으려고 해도 다리가 길지 않으니 경사가 지고, 그러니 불편해서 울어댄 거였어..."


"돌잔치 때도 기억나, 사진사 아저씨랑 밖에서 스냅사진 찍을 때, 내가 그때까지 걷지 못해서 기어 다니고 있는데 그 있잖아, 갈색빛 머리카락에 노란 남방 입었던 그 친척이 팔짱을 끼고 날 빤히 내려다보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 그래서 왜 저런 눈으로 날 쳐다보나 했었다니까?"


"응... 맞아.. 그 당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 그걸 다 기억하는구나...."


"그럼 카시트에 눕히면 왜 그렇게 울었는지 기억나? 정말 몇 시간을 쉬지도 않고 끝없이 울더라고.... 이러다 애기가 잘못되는 거 아닐까 싶더라니까? 그때가 너 태어난 지 백일 무렵이었는데..."


"응, 알아 지나가다 본 가로수도 기억나고, 분홍색 원피스가 발목까지 내려와서 날 감싸고 있었어... 난 엄마 품이 좋은데 그 윙윙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덩그러니 앉혀 놓으니 당연히 울지..."


"엄만 만 두 살, 세 살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만해도 사람들이 기억력이 좋다고 하거든... 그런데 우리 딸은 별 걸 다 기억하네...."


"응, 내가 엄마랑 떨어져 따로 누워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날 데리고 엄마가 있는 병실에 데리고 갔고, 거기서 외할머니가 꽃바구니 가지고 왔던 것도 다 기억나는걸?"


"그날, 네가 태어난 날이었어.... "


엄마 뱃속에 있을 때를 기억한다는 말을 텔레비전인가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러한 기억도 유아기를 지나며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자신이 태어난 날부터 약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또렷이 기억하는 아이가 나의 아이라니....

그러니 후각, 미각, 청각, 오감이 민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와 여러사람이 유모차를 밀고 가다 신호등 앞에서 유모차를 미는 사람이 바뀌어도 일초도 안되게 단박에 알아채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유모차를 끌도록 의사표현을 했었다.

그런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려니 편리한 점도 많았겠지만 불편하고 거슬리는 것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다른이의 마음속 저의를 훤히 알아채니 모른채 하는 것도 힘들테고, 자신의 예민함을 일일이 표현 할 수 없어 그것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것도 굉장한 스트레스였을지 모른다.

그런 아이를 살뜰히 살핀다면서도 방법과 시기를 잘 몰라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미안할 때도 많았다.

그런 모든 요소들이 사춘기라는 도화선이 되어 그렇게 크게 폭발 할 수 밖에 없었나?

아이는 사춘기가 되며 둔감해지려 애를 쓰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오감을 닫아버리는 듯 했다.

그저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 같았다.

엄마의 감정이 상하던 말던...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속이 상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자신만 오롯이 쳐다볼 수 있도록.....

그렇다면 영아기때 그때처럼 엄마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일까?

너무 많은 기억이 상처가 되어 애써 잊으려 일탈을 일삼는 것일까?

내 모습을 뒤돌아보자면 나에게 닥쳐오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곤 한다.

아마 사춘기에 다다른 이 아이도 지난 우울한 기억을 잊기 위해 일종의 회피성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힘들어 저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탓에 어미의 마음을 이리도 헤집어놓는 것일까?

사춘기의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아이가 넷이나 되어도 매번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엄마의 자리는 늘 풀기힘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사는 극한 직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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