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롱이를 집에서 키우자고?

by 산들바람

"엄마, 둥지에서 떨어진 새가 있는데 집에 데리고 가도 돼요?"


"새라고?"


"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데 학교 후문 나무둥지에서 떨어졌나 봐요. 혹시 어디 다치지는 않았는지 동물병원 여기저기 데리고 가 봐도 새를 봐줄 수 있는 곳은 없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아이가 밖에서 전화를 걸어 새를 집에 데려가도 되느냐고 대뜸 묻는다.

그리고 얼마 후, 위가 훤히 뚫린 종이상자를 집으로 들고 들어온다.

하교하다 나무 아래 풀숲에 있던 아기새를 발견하고 함께 있던 같은 반 남학생과 함께 아파트 재활용장을 뒤져 적당한 종이상자를 구해왔다고 했다.


"바닥에 뭔가 깔아줄 게 없을까? 너 셔츠 안에 뭐 입었어?"


"나?? 러닝 입었는데 이거라도 벗어서 깔아야 할까?"


"응, 그거 벗어서 깔자..."


"그... 그래... 어차피 나도 이거 버리려고 그랬어...."


남학생의 러닝셔츠를 깔고 종이컵을 구해 윗둥을 잘라 물을 담은 상자를 들고 동네 동물병원을 데리고 가 봤지만 모두들 거절하자 버스까지 타고 다른 동네 병원까지 둘러보고 다녔단다.


"엄마, 우리가 대신 아기새의 엄마가 되어주어야 하니까 마트에서 밀웜을 사다 어미 부리처럼 나무젓가락으로 먹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는 솔직히 새가 참 무섭다.

열 살 때였다. 평소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던 길인데 옆집 수탉이 나의 어떤 행동에 기분이 상했는지 날 한 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달려와 내 다리를 쪼기 시작한다. 덩치도 큰 데다 알록달록 색깔도 화려한 수탉이 빨간 볏을 요란하게 흔들어대며 도망가는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따라오며 집요하게 쪼아댔다. 내가 기겁을 하며 툇마루에 올라가 방문을 닫기 전까지 맹렬하게 쪼아댄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모든 조류에 대한 공포증이 생겨 버렸다.

그런데 새를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그래도 아이가 새를 데리고 오기 전 까지는 참새 또는 까치의 새끼정도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삐약' 소리와는 다르게 아기새라 하기엔 덩치도 다소 크고 부리는 둥글게 구부러진데다 발톱은 날카롭고 두꺼운 것이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당장 사진을 찍어 이미지 검색을 해 보았더니 황조롱이란다.

황조롱이? 매?

네이버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황조롱이는 매과의 조류로 1982년 11월 16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단다. 숲과 가까운 아파트에 종종 둥지를 틀어 부화를 하는 녀석들인가 보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이 동네에서는 절대 포식자인 맹금류였다.

이제 나는 연습을 시작하는지 앉은자리에서 한 번씩 날개를 넓게 펼쳐 푸드덕댈 때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발작을 한다.

결국 아빠가 나서서 딸아이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너도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누군가 다른 곳에 옮겨두고 연락을 해 주지 않으면 영영 엄마를 못 만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원래 있던 자리로 데려다 주자'라는 말에 어렵사리 다시 그 장소에 가져다 놓았던 모양이다.

밤새 아기새를 걱정하던 딸아이는 이른 아침이 되자마자 학교 후문으로 찾아갔지만 새가 없어졌는데 족제비나 다른 짐승이 물고 간 것 아니냐면서 울기 시작했다.

아기새가 불쌍하다며 밤늦게까지 얼마나 울고 울었는지 나중엔 열이 펄펄 끓어오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땐 119에 신고해 새를 다시 둥지 위로 올려달라고 부탁을 한 모양이다.


마음이 참으로 따뜻한 아이였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초등학교 입학해서도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쉬는 시간 다른 반에 가서 그 친구와 놀아주곤 했었다.

그러니 담임 선생님들은 적응이 힘든 친구들을 딸아이의 짝으로 앉히기도 했다.

해마다 그러한 친구들이 한 명쯤은 있어서 그 친구를 도와주는 일은 자의든 타의든 딸아이의 몫이었다.

6학년일때도 경도의 지적장애인 친구가 같은 반이어서 외톨이인 그 아이를 도와주고 함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여간 고마왔던지 그 부모님이 딸아이를 따로 불러 햄버거를 사 주며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하더란다.

같은 반 여자친구들끼리 다가오는 공휴일에 다 함께 롯데월드에 가자며 단톡방을 만든 모양인데 지적장애 친구만 대화방에 초대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딸아이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너희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반 친구들이 다 같이 가면서 **이만 쏙 빼놓고 비밀로 하겠다고? 우리가 조금씩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니야? 야!! 늬들끼리 가! 난 안 갈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던 딸아이의 태도에 반친구들은 당황하며 사과를 했고, 그 친구를 대화방으로 초대하고 롯데월드에 함께 가기로 했단다.


"어? 오늘 친구들이랑 롯데월드 가기로 한 거 아니야?"


"어, 나는 안 가!"


"그 친구도 데리고 가기로 했다면서 그런데 왜 너 안가?!"


"난 그 친구를 롯데월드에 함께 가게 하는 게 목적이었어! 반 친구들한테 실망해서 난 안 갈 거야!!"


딸아이는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도 불만을 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가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잖아, 그런데 선생님은 반 친구들 보고 무조건 이해하래... 아니 걔들도 이제 6학년이면 사춘기인데 고분고분 말을 듣겠냐고.... 내가 선생님이라면 지적장애 친구가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너의 행동으로 다른 친구들이 왜 기분이 나쁜지 설명하고 사과를 하게 한 후, 반 친구들한테는 이렇고 저러니 우리가 도와주자 또는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자고 말할 것 같아.

선생님이 무조건 그 애만 감싸고 도니 사춘기 여자애들이 반감만 생기고 걔를 더 미워하는거잖아 !"


사람뿐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동네 길고양이 먹이를 챙기고,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구석에 핀 작은 꽃 한 송이에도 자신의 친절함을 가득 베푸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사춘기가 시작되며 가족들에게는 왜 그렇게 쌀쌀맞게 대했을까? 왜 그렇게 이기적으로 변했을까?

그나마 늦둥이 여동생한테는 친절하지만 그렇게도 살뜰히 챙기던 남동생이 누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뭘 봐!"라며 면박을 주었다.

저래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는 가능한지 참으로 궁금한데 다행히 밖에서는 나름의 처세를 하는 듯 보인다.

길을 지나던 오토바이가 할아버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쓰러지신 모양이다.

모두가 제 갈길 가느라 관심도 없는데 딸아이가 달려가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다친데는 없는지 물었던 모양이다.

나한테는 퉁명스레 대해도 밖에서는 반대라니 서글프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2병을 경험하는 어떤 부모가 말했다. 사춘기 이전에 부모가 부르면 '네'라고 하다가 사춘기가 되면 '뭐요?'라고 한단다. 말끝마다 욕을 하는게 아니라 욕이 접두사, 접속사, 접미어 그 모든 것이다.

나 때는... 라떼는 안 저랬는데 왜 저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참을 인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 중얼거리며 집안일을 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십대 후반이 되어가니 눈에서 나오던 강렬한 레이저도 힘을 잃고, 설거지 하는 나를 고양이처럼 와서 안고 비비기도 한다.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제법 비싼 아빠 생일 선물을 척척 사고, 밥도 사 주는 걸 보면 토네이도처럼 정신없이 몰아치던 사춘기도 지나간 것 같아 다행이다.

요즘은 중2병이 아니라 초 4병이라던데 마지막 관문인 초등학교 4학년인 늦둥이가 요즘들어 말투가 고분고분하지 않다.

이제 슬슬 발동을 거는 모양인데 최고치는 어느 정도까지이며 기간은 또 얼마나 될까?

고난의 시간을 나는 또 얼마나 지나야 할까...

부디 언니가 지나온 사춘기의 십분의 일이면 좋을텐데 말이다.

어쨌든 어린시절의 엉뚱함과 상냥함을 그대로 간직한채 사춘기에서 묻어나온 시크함까지 겸비한 큰딸은 이제 곧 아가씨가 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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