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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특이한 딸이 있어요!

by 산들바람

"어머님, 소영이가 많이 아픈 것 같습니다.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조퇴시키려는데 어머님 의견은 어떠세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한참 설거지를 하는 중인데 큰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온다.

젖은 손을 급하게 대충 문지르고 문자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는 답장을 보낸다.


"네, 알겠습니다. 집으로 보내주세요"


'에휴.... 오늘은 또 어디가 아픈 거야... 학교에 가는 날 보다 조퇴하거나 지각하거나 안 가는 날이 더 많네....'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등교거부 이후, 위태로운 세월을 보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초등학교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자 전국적으로 영상수업이 시작되었고, 많은 학생들은 무기력증에 빠진 듯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후 연재하게 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아이는 또다시 학교를 거부하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학생이 되어서도 등교를 게을리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 시기엔 모두가 등교를 안 하니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중학교 2학년이 되며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학교가 다시 정상화되자 아침마다 전쟁 중이었다.

얼마 전 선생님과 기나긴 통화를 하며 아이의 사연을 듣던 선생님은 자신의 둘째도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는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후 등교를 거부하다 이제 겨우 가방을 메고 학교는 다녀온다는 말씀을 하시며 이후부터 딸아이를 충분히 이해해 주셨다.

어쨌든 아프다며 조퇴를 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여느 때처럼 집에 돌아오자 마자 교복을 벗어던지고 음악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또 어디가 아파서 돌아온 거야?"


"엄마, 나 사실 어제 남자 친구랑 싸웠거든...."


"만나지도 않고 계속 집에 있었는데 어떻게 싸웠어?"


"문자로 싸웠어... 그래서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지만 마음이 너무 괴로운 거야...."


안 그래도 어제저녁 내내 분위기가 냉랭하더니 그런 일이 있었는가 보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남자친구와 다투고 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며 윗옷은 사복, 아래는 교복치마를 입고 등교를 했단다.

교문 앞에서는 무섭기로 소문난 학생부장 선생님이 선글라스를 끼고 등교지도를 하는 중이었다고 했다.


"어? 너 복장이 그게 뭐야?"


"............"


" 왜 윗옷은 사복을 입고 왔어?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이름이 뭐야?!"


사춘기의 반항기를 한껏 머금은 중학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묘한 기싸움을 하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선제압을 하는 게 이들의 저항을 수그러들게 하는 방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그간의 경험치로 얻은 선생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복장불량으로 교문 앞에서 제동이 걸린 딸아이에게도 예외 없이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하며 기선을 제압하려는데 이 아이의 반응이 압권이다.


"저, 지금 외로워요!!!!"


그리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함께 등교를 하던 같은 반 남학생은 자신에게도 괜한 불똥이 튈까 봐선지 '야! 나 먼저 들어간다~ 나중에 봐!'라며 먼저 교문 안으로 들어간다.


"뭐??? 뭐라고? 지금 너 뭐라는 거야?"


"저 지금 외롭다고요!!!"


아이는 방금 전보다 더욱 격하게 울며 어깨를 들썩였다.

보통 이런 상황일 때 "뭐가요!!"라며 반항을 하거나 움츠러들거나 하는 게 예상된 시나리오일 텐데 난데없이 교문 앞에서 외로움을 외치며 울고 있는 학생이라니...

선생님을 혼란에 빠뜨리려 일부러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도 그런 말을 내뱉어놓고 언뜻 위를 올려다보니 선생님도 예상에 없던 이 상황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지 선글라스 틈으로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야! 너 안 되겠어! 마스크 벗어봐!! 몇 학년 몇 반이야??"


"저, 지금 기분도 안 좋고요! 쌩얼이에요!!!"


"뭐.... 뭐라고???.... 하아.... 너 일단 교실에 들어가 있어!!"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얼마 후, 담임 선생님과 학년부장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더란다.


"소영아!!!"


"선생님!!! 으흐흐흐흐흑......"


"소영아, 왜 그래... 너 혹시 남자 친구랑 헤어졌니?"


"네, 맞아요 선생님. 흑흑흑... 어제 문자로 준영이랑 싸웠는데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래... 그랬구나..."


"소영아, 절대 네가 먼저 다시 만나자고 하지 마!!"


학년부장 선생님이 훈수를 둔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정말 형편없는 아이예요...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해놓고, 오늘 아침 제가 먼저 만나자고 얘기해 버렸어요!!!! 으흐흐흐흐흑"


"야!!! 그러지 마! 네 인생의 주체는 넌데!!!!"


학년부장 선생님이 답하자 아이는 더욱 격하게 울어댔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도 거든다.


"안 되겠다. 소영아, 그냥 집에 가서 쉬는 게 낫겠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대신 물어볼게"


설거지 중 아파서 조퇴해도 되느냐 물었던 데에는 이런 믿기지 않을 만화 같은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교문 앞에서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한 학생부장 선생님이 아이를 먼저 교실로 보내고 난 뒤, 교무실에 가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자 담임선생님과 학년부장 선생님은 이런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할 학생은 딸아이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교실로 찾아온 것이다.


또 어느 날도 아파서 학교를 못 가겠다고 했다.

가기 싫은 학교 생각에 그 증상이 신체화로 고스란히 나타나는 이 아이를 나도 선생님도 어쩔 수 없으니 알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후쯤, 잠시 산책을 하겠다며 밖에 나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니 천안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중이란다.

위에서 언급했던 남자친구를 만나고 왔단다.

그 친구는 같은 반이었는데 천안으로 전학을 간 친구라 담임 선생님도 잘 알고 있는 학생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간 아이가 선생님께 이야기한다.


"선생님, 어제 아침엔 정말 아파서 학교에 못 왔어요. 죄송해요...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몸이 낫길래 지하철 타고 천안 가서 준영이 만나고 왔어요.."


"그래?"


"네, 천안에 갔지만 둘 다 돈이 없어서, 함께 벚꽃길을 걸었어요. 음료수 한 잔 마실 돈만 겨우 있었지만 함께 손을 잡고 걷는 벚꽃길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몰라요..."


이 외에도 아이의 엉뚱하고 이상한 에피소드는 일상이었고, 어려서부터 참 별나고 독특했다. 또한 무척이나 영특하고 따뜻했기 때문에 그러한 독특함은 다른 이들에게는 특별함으로 인식됐었다.

게다가 너무도 솔직하고 거침없는 행동이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물론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나와 남편이지만 말이다.

누군가 아이의 이런 일화를 듣고, 마치 '빨간 머리 앤'이 연상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아이는 거침없는 알파세대에 가까운 MZ 세대.... 거친 말도 잘하고, 반항스러움이 물씬 묻어 나오는 사춘기의 기운이 다분한 이 아이를 굳이 표현하자면 '빨간 머리 앤 매운맛 버전'쯤 될 듯하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살면 어쩌나, 평범하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된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몇 년 후, 자신도 돈을 벌어보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곳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식장 써빙 알바, 전단지 알바, 식당 알바를 거쳐가는 그 아이가 일머리도 빠른 데다 어찌나 성실한지 동료들과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게 아닌가....

지금도 아이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요령도 부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에 모든 어른들이 예뻐하신다. 시급도 올려주시고, 보너스도 주신단다.


"엄마, 똑똑하고, 예민하고, 독특한 것도 좋지만 그걸 너무 드러내놓고 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어. 그냥 평범하게 지내다 필요할 때만 꺼내서 쓰려고..."


얼마 전 함께 침대에 누웠는데 딸아이가 문득 내뱉는 말이다.

그렇다고 뼛속 깊은 이상함이 자신도 모르게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것을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나름대로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나도 어릴 땐 꽤 별나다는 소릴 많이 듣고 살았지만 지금은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 평범한 듯 사는 것 보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쉬움도 있는데 말이다.

나보다 훨씬 엉뚱함이 가득한 업그레이드 버전인 딸의 삶은 어떨까.... 걱정과 신뢰의 그 어디쯤의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인 거다.


'그래, 너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지난날의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너의 삶은 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어! 세상에 많은 부모가 그러하듯 나 또한 너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도록 노력할게....

가끔 속이 터지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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