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짓밟혀도 그대로 꽃....

by 산들바람

오늘부터 연달아 연재할 몇 편의 이야기들은 딸아이가 중학생 시절 겪었던 폭력과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좌충우돌 헤쳐나가는 저와 아이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굳이 밝힐 필요가 있을까 여러 번 망설였지만 사춘기라는 이름 뒤에 숨어 그들의 재미를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마구 짓밟으려는 악한 마음은 절대로 합리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려 함입니다.

특히 오늘의 주제는 딸아이와 저에게 치명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있을 이야기와 부분적으로 연계성이 있기에 혹시라도 훗날 거짓이라는 오해를 얻고 싶지 않은 까닭에 꺼내봅니다.

또한 앞으로 다른 이야기에서 언급될 수도 있는 오늘의 이야기를 이후 다른 글에서는 '1차 사건'이라 표현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글은 에둘러 쓰거나 은유적으로 표현하더라도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소영이 어머니, 큰일 났어요!!! 소영이가 다른 학교 남학생에게 큰 일을 당한 것 같아요!!"


"네?????? 뭐라고요???"


"어머니, 빨리 소영이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일요일 오후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급하게 걸려온 통화 내용이다.


"여보, 나 아무래도 지금 나가봐야 할 것 같아!!!"


떨리는 내 음성을 들으며 남편이 묻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혹시 소영이한테 무슨 일 있대?"


한창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일탈을 일삼는 아이가 밖에서 무슨 사고라도 꾸몄을까 걱정하며 묻는 남편이다.


"응.... 담임 선생님인데.... 어떤 남학생이 우리 딸을......."


"....... 절대..... 감정적이면 안돼!! 알았지??? 첫째도, 둘째도 소영이의 안전만 생각해.... 절대 감정적이면 안돼!!!"


모든 일에 침착한 남편은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식에도 마치 자기 스스로에게 당부하듯 몇 번이고 담담하게 부탁을 한다.

아직 어린 막내가 있는 데다 시각장애인인 자신이 물리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선지 함께 나서지는 않지만 몹시도 괴로운 듯하다.

집 밖으로 나와 급한 대로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자 전화기 너머로 울부짖는 소리가 가슴을 무너뜨린다.

일을 당한 후, 사건 현장을 빠져나와 어찌할 바 모르던 우리 아이가 그냥 한 길에 서서 울고만 있단다.


"우리 아기.... 엄마가 빨리 갈게... 기다려...."


아이를 만나러 가는 동안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먼저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기로 했다.

여성청소년과에서는 지금 사건을 접수했으니 아이를 데리고 지역 해바라기 센터에 가 보라고 했다.

지난 초등학교 5학년, 동네 공원에서 있었던 성추행 미수 사건으로 한 번 방문했던 경험이 있어선지 그나마도 낯설지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각종 검사를 받고, 사후 처방 주사를 맞기도 하고, 동영상으로 진술녹화를 하는 등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자정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는 그대로 자기 방으로, 나는 안 방에 들어와 아이 앞에서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던 울음을 끅끅대며 삼킨다......


월요일인 다음날 아침, 아이는 아무 일 없는 듯 등교를 한다.

어제 사건을 겪은 후, 엄마에게 직접 말할 수가 없었던지 담임 선생님께 먼저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까닭에 학생과에 이미 학폭위로 사건접수가 된 상황이라 나와 아이가 함께 담임선생님과 학생과장 선생님을 마주했다.

아이는 어제 해바라기 센터에서 진술한 것과는 별개로 또다시 괴로운 기억을 되살리며 진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소영아, 좀 조심하지 그랬어.....!"


담임 선생님이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에게 불쑥 꺼낸 말이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소영이는 피해자입니다. 그 학생이 가해자인 것이지 소영이가 잘못한 건 없어요"


사십 대 중반쯤 되는 학생과장 선생님이 아이를 대신해 변호한다.

평소 아이를 대하는 담임선생님의 행동으로 봐선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나온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쩌면 나 조차도 조심하지 그랬냐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 뻔 한 걸 간신히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술서를 찬찬히 읽어가던 학생부장 선생님은 참담한 표정이 역력하다.

물리적인 힘 앞에서 어쩔 수 없던 여린 여학생... 피해자임에도 자신이 부주의했다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서글픈 처지.... 아직은 어린 만 열세 살 아이였다.

그런 딸에게 학생부장 선생님은 세상의 모든 남자를 대신해서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는 듯했다.


사건이 접수되자 상대측 부모가 땅에 머리가 닿도록 잘못했다며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모양이었지만 거절했다. 목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사과조차 받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깊은 괴로움을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는지.....

사건 이후, 울며 걷는 아이를 목격한 같은 학교의 남자 선배가 이유를 묻자 사실에 대해 털어놓았단다. 그러자 그 남자 선배가 마침 그 남학생의 집을 알고 있어 직접 집으로 찾아갔고, 부모를 만나 해당 사실을 모두 이야기하며 따져댔던 모양이다.

건너 건너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대측 남학생은 2남 1녀 중 막내인데 위에 형과 누나는 모두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는 성실한 형제들인데 이 아이가 여기저기 다니며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다 급기야는 이런 일을 벌인 것이란다.


어찌 되었든 촉법소년인 그 학생은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고 보호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리는 날이었지만 나와 딸은 참석할 수 없었다.

가해자 학생과 부모는 의무 참석이지만 피해자는 선택사항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은 1호에서 9호까지 이르는 학폭위 징계 중에서 최고 징계인 퇴학조치 전단계인 8호 처분인 강제전학을 가게 되었다.

학교도 다르고 사는 동네도 조금은 떨어져 있지만 다른 행정구역으로 전학조치를 하는 것으로 피해자인 아이의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을까 그나마의 배려를 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잘 이겨내고 있었다.

학교도 잘 가고, 마음속에선 그 고통을 잊어보려 발버둥을 치는 게 엄마인 내 눈에는 빤히 보였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녀석의 처절한 몸부림지켜보며 내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이것은 숱한 날을 살아오며 겪을 수 있는 어떤 사고의 한가지 형태뿐인 거다.

미안함에 어찌할 줄 모른다는 그 부모를 생각해서 상대 학생에게 민사소송은 따로 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진술과정에서 나와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다.


그렇지....

짓밟혀도 꽃은 그대로 꽃인 거다.

아무렇게나 짓밟혀 꽃잎 하나 떨어져 나간다 해도, 이즈러졌다 해도 꽃은 그대로 꽃인 거다.

다시 물 주고 햇볕 받으며 바람맞는 일상생활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사랑스러움 가득한 그대로 꽃인 거다.

더 없는 생명력으로 깊게 뿌리내리고 더욱 활짝 피어나야 할 소중한 존재인 거다.

아무도 꽃을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하며 침 뱉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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