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고도영재라고?

by 산들바람

딸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이나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아이였다.

더군다나 왕성한 호기심과 실행력이 뛰어나며 무척이나 창의적이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을 가졌다.

보통 주위 사람들은 이 아이를 영재라 정의 내렸고, 영제 테스트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꽤나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특히 우리나라에서 인정하는 영재는 어느 한 가지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거나 학습적으로 뛰어난 학생이다.

초등학교 1학년, 영제 테스트를 받으러 한 기관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상담자와 마주 앉으려는데 '아이가 지금 어느 학원에 다니고 있죠?' '지금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나요?'라며 묻는다.

'아.... 내가 확실히 잘못 온 게 맞구나...'

그리고는 의아하다는 듯 '여기 왜 오셨어요?'라는 말에 제대로 한 방 맞은 듯했다.

소위 말하는 아이큐는 100으로 지극히 평범한 데다 수학적 사고는 경계 수준에 이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어휘력은 최우수 그룹이었고, 경계수준인 수학 영역중 도형과 공간 영역은 최우수 그룹인 언어영역보다 더 높아 그래프 끝까지 치솟아 있었다.


사교성이 좋아 어른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잘 지내긴 하지만 정작 자신과 생각이 온전히 통하는 친구는 없었다.

모든 행동이 특이하고 창의적이니 친구들이 '와~'하며 감탄하고, 리더십이 뛰어나 조직을 모으고, 놀이를 주도하니 따르는 친구는 많지만 결코 그 아이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유 할 수 있는 친구를 찾지 못해 마음 한켠엔 공허함이 많았다.

주위 학부모 또는 이웃들은 '와~ 대단하다!' '어디로 가면 이런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호응은 하지만 정작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려 줄 수가 없다.

딱히 수치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주위에서든 집에서든 범상치 않음을 느끼게 하는 이 특별한 아이를 나는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한채 사춘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자해, 자살, 등교거부 등 소위 노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나로서는 아이에게 맞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을 연구했다는 '지형범 교수'가 운영하는 영제센터를 알게 된 것이다. 온라인 카페를 둘러보던 중 창의력이 뛰어난 우뇌형 고도영재에 관한 설명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아이큐 검사 대부분은 좌뇌형 영재를 판별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웩슬러 검사에서도 자신을 숨기는 우뇌형 고도영재가 많다는 것이다.

간이 테스트를 위한 십여 가지의 문항 중 약 7-8가지의 특성에 해당한다면 이 아이는 창의력이 뛰어난 우뇌형 고도영재아이며 비록 아이큐 검사와 웩슬러를 통한 검사에서 수치가 뛰어나지 않다 하더라도 고도영재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교육법과 양육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이 테스트 결과 모든 항목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우리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곳 오프라인 모임엔 검사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우리 아이와 비슷한 우뇌형 고도영재의 친구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근거림도 잠시..... 이제 아이는 아무런 동기 유발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이미 때가 많이 늦은 뒤였다.

그나마 지형범 교수님이 권해준 몇 권의 책들 중 매일 경제신문사에서 발행한 '영재공부'라는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영재아가 보이는 행동 특성과 양육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책인데 사춘기 이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책에서도 학과 성적이나 지능검사는 대체로 좌뇌적 특성에 관한 것이며 우뇌적 특성이나 지능에 대한 적절한 평가 지표가 미흡하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문제 해결에 있어 창조적인 접근 방식은 정형화된 검사로는 측정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좌뇌, 우뇌에 따른 선호도 차이에 대한 도표가 있었는데 그중 딸아이가 속한 우뇌형 영재아의 선호도 차이를 보자면 이러하다.


1. 사각적 해석 신호

2. 이미지를 활용한 기억

3. 종합적인 정보처리

4. 직관적 사고

5. 멀티플레이어 능력

6. 조직활동 선호

7. 즉흥적인 방식

8. 개방적인 경험 선호

9. 전체적인 흐름 선호

10. 유쾌한 접근


위의 열 가지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특성을 보이는 아이였다.

특히 직관적 사고력이 뛰어나다.

예를 몇 가지 들자면 오후 4시 30분까지 집에 와야 하는데 밖에서 놀다가도 시계도, 휴대폰도 없는 아이가 정확한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는 일이 며칠째 반복해서 일어났다. 신기한 생각에 어쩜 그렇게 정확한 시간에 올 수 있는지 물어보니 발등에 오는 그림자의 길이를 보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른 아침에도 창문을 열어보고 구름이 많고 흐린 날인데도 오늘은 날이 맑을 것이라 말한다. 그 이유는 새가 높이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압의 높낮음을 느낄 수 있으며 흙냄새로 그날의 날씨를 예측한다고 했다.

어느 날은 수영 선생님께 전화가 온다. 보통 저학년 학생에게 영법에 대한 설명을 할 땐 그것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딸아이는 한 번에 완벽하게 터득한다고 했다. 너무 신기했던 선생님이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예전에 박태환 선수의 영법을 본 것이 기억나서라고 했단다.

수영을 배울 계획도 없었고, 예사로 스치듯 보았던 영상을 오래도록 정확하게 기억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데 자신이 판단하기에 단순한 생각을 할수록 보를 낼 확률이 높고, 그다음엔 주먹, 그다음엔 가위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보를 낼 만한 친구에게 가위를 내어 이기지 않는단다. 그럼 친구가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보를 내어 몇 번은 비기다가 나중에 가위를 내어 이기고, 다시 가위바위보를 할 땐 내가 가위를 내어 이겼으니 친구가 자신을 모방해 가위를 낼 것이라 예측하고 주먹을 내서 이긴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대가 어떤 수를 내는 친구인지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고, 직관적으로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낸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도 명절 음식을 도우며 부침개를 굽는데 한 번만 뒤집으면 된다고 한다. 아래쪽 면이 수분이 없어져 덜 지글거리는 그때가 적당히 익은 것이라 했다.

길을 걸을 때도 지나가는 남녀가 연인인지 부부인지 판단한다. 연인은 많이 친해지고 싶어 스킨십이 많고, 부부는 이미 친해진 관계이기 때문에 스킨십이 별로 없다는 게 그 아이만의 이론이었다.

책을 읽어줄 때도 직관력은 남다르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아이의 영특함을 알아보시고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권해 주셨다.

아이는 혼자서 속독을 터득했지만 읽기 능력보다는 듣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서도 초견 능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한 번 피아노를 연주해 주면 따라 칠 수 있었다.

어쨌든 방학 동안 틈틈이 여섯권이 합본된 1115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직접 읽어주었다.

내용 중 친구들이 길을 걷다 냇가에 사람의 형상인 거대한 금덩이를 발견해 그것을 꺼내려한다는 내용이 나오자 딸아이는 말한다. '안돼! 저걸 꺼내려고 팔을 넣는 순간 물속에 들어간 만큼 모두 금으로 변할 거야!' 아닌 게 아니라 아이가 말한 것처럼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책을 읽어 주기 전 제목만 읽어도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나라를 구한 꽃!'

"아~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려는 걸 딸이 대신 막아서다 죽었구나.. 그래서 꽃으로 피어났고, 그에 대한 전설을 설명한 책이구나!!"

그러니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아도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럼 친구들은 항상 묻는다.

'너 이거 전에 봤지?'

또한 복잡한 클래식 곡을 한 번만 들어도 모두 기억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같은 곡의 어느 소절이라도 흘러나오면 전에 들었던 어떤 곡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냈다.

어느 날 아이가 가방만 던져놓고 다시 나가 놀아야 한다며 잠시 현관에 서 있던 중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을 잠깐 듣더니 모차르트는 확실히 장난꾸러기이며 변덕쟁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으니 '저것 봐요.. 소리가 급격하게 작아졌다 또 급격하게 커졌다 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잖아요'라고 했다.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던 만 6세 끝무렵, 다음 해엔 표범무늬 원피스와 신발 등을 많이 사달라고 했다.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비슷한 패턴의 옷과 신발, 장신구 등을 사 주었는데 그다음 해 표범무늬가 세계적인 유행이었다.

더 나아가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영적으로 나쁘고 좋은 기운을 느끼고 종종 우리가 듣지 못하는 영역의 소리와 귀신을 본다고도 했다. 기가 센 아이여서 때로는 호통을 쳐서 물리치기도 기도를 하기도, 타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아이들은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체계를 거부하고, 따분해하기 쉬우며 학교에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학과 시스템이 맞추어져 있어 학교 교육에 동기 유발이 사그라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또한 사춘기에 들어서면 우울증이 발병되기 쉬운데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지나친 성취 욕구에서 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소외감에서 발생하고, 세 번째는 존재론적 우울증이다. 이 모든 유형의 우울증에는 '분노'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과 공감 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없어 소외감을 느꼈고, 존재론적인 가치에 있어서도 괴로움을 느껴 자살시도를 하고 자해를 하곤 했다.


딸아이가 영유아기였던 시절, 나로서도 이 아이가 조금은 남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양육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래서 수고스럽더라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함께 뒹굴며 놀곤 했다.

비 오는 여름이면 물웅덩이를 세게 또는 잔잔히 밟으며 촉감을 느끼고, 가을이면 낙엽을 밟고 부수고 던지며 미세한 소리를 듣고, 거실엔 비닐을 넓게 깔아 그 위에 밀가루를 뿌려놓고 뒹굴기도 하고, 물을 부어 반죽을 하고, 욕조에는 무독성 물감을 풀어 색의 변화를 살피고, 벽에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몸에 색을 칠하며 놀곤 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주었는데 학령기 전까지 읽힌 책이 약 오만여 권쯤 된다.

학교 가기 전엔 세 아이들을 앉혀놓고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한 후 등교시키고, 잠자리에 들기 전엔 아빠의 아이디어로 오늘 하루 동안 두 명의 형제들에게 칭찬 할 거리를 두 가지씩 이야기해 보도록 하는 일명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존재했다.

아이디어가 넘쳐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고 발명하는 것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책가방 안에 작은 현미경을 사다 넣어주기도 했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갑자기 글을 써야 하고, 작곡을 하는 아이였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노을을 보고 감탄하고, 살랑이는 바람에도 감상에 젖어 따로 떨어져 나와 온전히 느껴야 하는 아이...

항상 유쾌하고, 밝고, 정의에 불타 오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구마구 발산하던 그 아이가 일순간 변해 절여진 배추처럼 하루 종일 누웠거나 일탈행위를 일삼는 것을 어찌해야 할까....

뒤늦게서야 딸아이와 비슷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지만 이제 너무 늦어버린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척이나 괴로울 뿐이었다.


어릴 땐 아이에 대한 기대도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이가 어두운 터널을 안전하게 빠져나와 이전처럼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미안한 것 투성이라 만족할 만한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리지만 미래의 너를 믿고, 꿋꿋이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엄마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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