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의 세상의 주인이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작은 주택에 살았다. 1층 집이었고, 집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통로를 지나야 했는데, 그 끝에는 보일러실이 있었다. 아버지는 늘 식물을 가꾸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집은 온갖 화분들로 가득하고, 직접 고추, 레몬, 오이를 키우며 즐거워하신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집 안 곳곳에는 난이 있었고, 다양한 화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일러실에는 노란빛이 많이 도는 잉꼬 한 쌍이 있었다. 그 새들은 작은 새장 안에 있었고, 나는 자주 그곳을 찾았다.
사실 나는 잉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셨고, 그래서 나도 그 새들을 보러 가곤 했다. 특별히 애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에게 혼이 났을 때도 그랬다. 나는 보일러실로 피신하듯 갔다. 그곳은 나만의 은신처였다.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는 주로 회초리를 사용하셨다. 하지만 힘들었던 것은, 아버지가 나를 혼내실 때마다 "나가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는 점이다. 그때는 옷을 벗고, 팬티만 입은 채로 나가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나는 어린 나이에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좁은 통로를 지나 보일러실로 향했다. 새장 속 잉꼬들을 보며 한참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사실 아버지도 내가 그곳으로 갈 거라는 걸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나가라"는 말은 정말로 바깥으로 나가라는 뜻은 아니었을 테니까. 한참을 보일러실에 있다가, 내가 스스로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라고 느낄 때쯤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특별한 말씀 없이 나를 받아주셨다. 그렇게 우리의 침묵 속 화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방법은 서툴렀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에게는 그 서툰 사랑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도망치듯 잉꼬들을 찾아갔지만, 어쩌면 그 작은 새들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처럼 행동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화가 나면 “나가!”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똑같은 말을, 그때 나보다 더 어린 내 아이에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와 달랐다. 진짜로 아이를 내보내지는 않았고, 금방 후회하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상처는 사과로 모두 덮이지 않았다. 이미 내뱉은 말은 아이의 마음에 깊이 남았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아이가 나중에 그 시절의 나처럼 자신을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가 아픔으로 남았던 것처럼, 내 아이가 나와의 기억 속에서 그런 상처를 떠올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추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의 저를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