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어린시절, 아버지는 내 세상의 주인이었다
어린 시절, 내성적인 나는 태권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는 모든 아이들이 다니는 통과의례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처음 학원에 들어설 때 느꼈던 낯설음과 두려움은 아직도 기억난다. 내 몸은 작고 왜소했기에, 태권도 도복을 입고 도장에서 뛰고 구르는 게 그리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1년을 꾸준히 다녔고, 1품까지 땄다. 딱히 왜 그만두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시절 내겐 나름대로의 도전이었을 것이다.
딸이 요즘 태권도 학원에서 배운 동작을 보여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어린 시절 내가 배웠던 태극 1장과 품새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마치 자전거를 배우면 잊지 않는 것처럼 내 몸도 기억하고 있더라.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 후로 피아노 학원을 잠깐 다닌 기억이 난다. 정확히 3일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삼남매가 학원을 다니는 건 큰 부담이었으니까. 특히 큰 누나는 발레를 배웠다. 발레는 학원비도 비쌌고, 장비도 필요했으니, 아마 그때 둘째 누나와 나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을 거다. 그래도 둘째 누나는 항상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학원 없이도 공부를 제일 잘했다. 반면, 나는 몇 개의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그때마다 느꼈던 미묘한 감정은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
특히 속셈학원은 내게 오래 남은 기억이다. 내가 다녔던 <셀라속셈학원>의 원장 선생님은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셨다. 늘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와 약간 쉰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학원비를 제때 낸 기억이 거의 없다. 매달 노란색 학원비 통지서를 받을 때마다 아버지께 보여드리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그 순간의 무거운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몇 달씩 밀리다 결국, 원장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혹시 부모님께 말씀드렸니?"라고 물으셨던 날,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학원에 나가지 않았고, 그 후 원장님이 다시 나와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이미 마음이 닫혀버렸었다.
이 모든 기억들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고, 가끔 꿈에서도 떠오른다. 내가 학습지를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면 분명히 그런 감정들이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아이만 있을 때, 한 명만 키우면서 원하는 학원을 다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든 걸 채워주고 싶었던 내 마음은 결국 내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테지.
그리고 이제는 문득 그때 <셀라속셈학원>의 원장님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해 주고, 끝까지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분. 이제라도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때는 죄송했다고, 그리고 지금은 잘 자랐노라고, 선생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다.
추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의 저를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