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 세상의 주인이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늘 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넓은 의자에 한쪽 다리를 꼬고 신문을 읽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저녁에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가족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일요일엔 방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꾸지람을 피하기 위해 공부하는 척하는 게 상책이라 여겼다. 어린 나는 TV가 보고 싶었고, 아버지가 TV 보는 모습도 궁금했다. 아버지는 동물 프로그램을 좋아하셨고, 그 시절엔 <동물의 왕국>을 자주 보셨다.
내 방은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 작은 미닫이문을 열면 거실의 TV가 살짝 보였다. 그때 나는 도둑처럼 까치발을 들고 몰래 TV를 보았다. 아버지가 일찍 방으로 들어가시면 나는 거실로 나와, 소리를 낮추고 잠깐씩 TV를 봤다. 그렇게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신 날은 마음이 편안했고, 반대로 집에 계신 날엔 방에 머물러야 했다. 몰래 TV를 보던 그 장면이 지금도 꿈처럼 생생하다.
한 번은 아버지가 예상보다 일찍 귀가하셔서 모두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놀라서 서둘러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그 순간 현기증이 나며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엔 이를 ‘경기’라 불렀다. 목욕탕에서 갑자기 일어섰을 때 느끼는 어지러움 같은 증상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소아 경간이라는 증상과 유사해 보인다. 정확히 발작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 앞에서 쓰러진 기억이 또렷하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만큼 본인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셨다.
식사 때는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라고 꼭 인사를 해야 했고, 다 먹은 그릇은 물에 담가 두어야 했다. 어머니가 안 계신 탓에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셨던 것 같다. 여름엔 수박을 먹으며 씨를 삼키라고 하셨다. 수박씨가 아무렇지 않다며 다 먹으라 하셨고, 나는 배에서 수박이 자라날까 걱정하면서 씨를 삼켰다. 포도도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포도씨를 뱉지 않는 습관이 남아 있다.
아버지에게 권위는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다. 아니, 사랑이 없었다기보다 내가 그 사랑을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한없이 엄격하고 단호한 분이셨지만, 내가 더 깊은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그 속에는 분명 묵묵한 애정이 깔려 있었던 듯하다.
지금 내 아이들에게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려 한다. 아이들과 수박을 나눠 먹으며 “씨를 뱉어도 괜찮아”라고 말할 때, 지금도 그 당시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은 권위만은 아니었다. 시간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불완전한 사랑과 노력, 그 흔적을 이해하게 되었다.
언젠가 내 아이들도 그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오겠지. 그렇게 이어지는 아버지의 마음은 나를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추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의 저를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