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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와이파파 Nov 11. 2024

밀양 가는 기차에는 그리움이 함께 탑니다.

1부 :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 세상의 주인이었다

어린 시절, KTX는 없었다. 부산에서 밀양까지 가는 길이 멀지 않았고, 굳이 비싼 기차를 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에서 밀양 큰집까지 갔다. 밀양역에 도착하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큰집에 닿을 수 있었다. 지금은 운전해서 50분이면 갈 거리지만, 그때는 4시간이나 걸리던 일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차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자동차 회사에 다니셨는데도 말이다. 명절이 되면 기차를 타고 큰집에 가는 것이 당연했다. 기차를 기다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큰집에 도착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어린 나는 그게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큰집에 도착하면 마당에 주차된 삼촌들의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삼촌 차, 저건 큰 형님 차" 하며 차를 구경하는 순간이 설레었다. 때로는 친한 사촌 형님에게 부탁해 차 안에서 운전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차가 없던 우리 가족에게 큰집에서만 가능한 일이어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명절이 끝나고 부산으로 돌아올 때, 가끔 사촌 형님이나 먼 친척이 기차역이나 터미널까지 태워주었다. 그 덕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감사함이 어린 마음에도 오래 남았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돈을 벌면 꼭 차를 사야지"라고 다짐했다. 큰집 마당에 우리 집 차를 세우고 싶었고, 삼촌들처럼 자기 차를 타고 편하게 오가고 싶었다. 차를 소유하고 싶은 꿈은, 어쩌면 나에게는 작은 자랑거리이자 목표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8남매 중 넷째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집안의 어른으로 계셨다. 큰아버지 댁에 아버지 형제들과 그 자녀들까지 모이면 집 안은 정말 북적거렸다. 또래 친척들이 많아 어울려 노는 것도 즐거웠다. 큰집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해서 남자들이 먼저 밥을 먹고, 여자들은 부엌에서나 남자들이 다 먹은 후에야 밥을 먹었다. 설날에는 특히 추운 마루에서 제사를 지내야 했고, 우리는 발이 시린 것을 참으며 제사를 지냈다.


제사 중간에 조상님들께 식사를 올리는 시간이 오면 얼른 사랑방으로 들어가 발을 녹이곤 했다. 사랑방은 아이들만의 아지트였고, 따뜻한 방에서 발을 녹이며 <머털도사> 같은 만화를 보면서 행복해했다. 그러한 시간이 우리에게 작은 자유이자 행복이었다.


큰집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면 잠자리를 정해야 할 순간이 왔다. 아버지의 서열은 넷째였지만, 그 순서가 잠자리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숙모들이 방을 미리 차지했고, 나와 누나는 늘 남은 방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어린 마음에 섭섭했고, 아버지에게 서운했다. “우리도 가족끼리 같이 자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말을 꺼낼 용기는 없었다.


이제 큰제사는 큰 형님이 주관하게 되면서 더는 시골집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한두 번은 새 차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가 보았지만, 갈수록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각자의 사정으로 더는 큰집에 모이지 않게 되면서 우리 가족도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도 처음엔 섭섭해하셨지만, 이내 적응하셨다. 명절이 되면 다 함께 모이던 풍경을 그리워하실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북적거림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밀양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이면 홍시를 따 먹었던 그 시절의 정취가 여전히 그립다.


추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의 저를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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