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 세상의 주인이었다
아버지는 자동차 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셨다. 8남매 중 공부를 가장 잘하셨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삼촌들 중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신 분도 있었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마친 분도 있었다. 아버지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셨지만, 여건상 대학에는 가지 못하셨다.
취업 후 아버지는 자동차 회사에서 지점장 자리까지 올랐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기에 양복이 많으셨다. 어린 나에게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는 비밀 금고 같았다. 아버지가 출근하면 몰래 양복 주머니를 뒤져 동전 몇 개를 발견하곤 했다. 용돈을 받지 못했던 시절, 그 동전은 내게 세상 가장 큰 보물이었다. 아버지가 알면서도 모른 척하셨던 것 같다. 그 일로 혼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는 내게 보물창고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아버지는 전화를 하실 때 영업 특유의 말투를 쓰셨다. 그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을 즐기고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는 수줍고 내성적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그런 나를 뛰어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IMF가 닥치며 아버지는 명예퇴직을 하셨다. 퇴직이라기보다 퇴출당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뒤 아버지는 잠시 집에서 쉬시다가 전기 관련 사업을 시작하셨다. 함께 하던 동업자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이 부도가 났다. 아버지는 그 과정에서 재산을 거의 다 잃으셨다.
그 시절,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누나들은 강했다.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빨리 독립했다. 반면, 나는 큰누나와 작은누나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누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혼자 살고 싶었을 텐데, 철없는 동생 때문에 말을 못 했을 것이다.
군대를 제대한 이후 나는 혼자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쭉 자취를 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내 원룸에 며칠 머무르셨다. 서로 불편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잊고 싶은 기억이 많다. IMF는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 꽤 불행했는데 이제 보상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
‘이 정도면 착하게 잘 살아왔으니, 이제는 모든 게 잘 풀릴 만하지 않나?’
그런 마음을 품었던 나를 떠올리면 애틋하다. 모든 게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도 나는 결국 여기까지 왔다.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더 강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문득 생각하게 된다.
추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의 저를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