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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와이파파 Dec 02. 2024

그날,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기 싫었습니다.

살면서 아버지의 눈물을 본 기억은 두 번 뿐입니다. 제가 성인이 된 이후의 일입니다. 첫 번째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머니의 입관을 보지 못했습니다.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입관 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머무는 3일 동안, 저는 눈시울이 붉어진 아버지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할머니에게는 8남매의 자식이 있었지만, 엄마가 없는 저희를 특히 더 신경 써 주셨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무렵, 할머니가 저희 집에 계신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부산에 있었기에 돌아가면서 함께 지내시기도 했지만, 엄마가 없는 저희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를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혼자 있거나 어른들이 없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 생각이 정말 나빴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손주들의 마음까지도 다 아셨을 텐데도, 묵묵히 밥을 해 주시고 반찬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마지막에 저를 부르셔서 꼬깃꼬깃한 돈을 펴 주시며 “맛있는 거 사 먹으라” 하셨습니다.


고등학생시절, 방학 중에 친구들과 함께 할머니 댁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할머니 혼자 계셨지만, 손주의 친구들까지 챙기며 밥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아버지도 그리워하셨을 겁니다. 할머니는 8남매에게 사랑을 고르게 나누어 주셨겠지만, 아버지도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많이 그리워하셨을 것입니다. 


엄마가 없는 설움이 컸던 저는 한때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계시잖아요. 그러니 저희 마음은 모르시겠죠.’ 이 말은 속으로만 했던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물을 본 순간, 제 마음이 시렸습니다. 아버지를 보듬어 드리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표현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버지 옆에 있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눈물을 본 첫 번째 기억입니다.


두 번째 기억은 둘째 누나와 제가 아버지와 대화하던 날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술을 거의 하지 않지만, 이날은 가볍게 한잔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다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8남매를 키워야 했던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큰 형님에게 혼이 나기도 했고,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야 했던 이유도 있었겠지요. 아픔은 대물림된다고 합니다. 제가 받았던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와 지나친 표현들 또한, 아버지가 더 큰 강압 속에서 자란 결과였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대물림을 끝내야 한다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문득 김종원 작가님의 글이 떠오릅니다.




“자신에게 예쁘게 말하는 좋은 사람이 되자.

남들에게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고 갑자기 당신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내면에 없는 것을 꺼낼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에게 예쁜 말을 자주 하고 싶지만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그게 되지 않는 이유도 내면에 예쁜 언어가 존재하지 않아서 꺼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마음을 전하고 싶고 예쁘게 말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이유도, 그걸 누군가에게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꾸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보여주고 싶은 그걸 내 안에 담자. 그리고 좋은 마음과 예쁜 말을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자. 받아야 그게 뭔지 알 수 있고, 뭔가 있어야 꺼낼 수 있으니까.

가장 예쁘고 좋은 것은, 누구보다 당신이 먼저다.”




아버지도 그런 언어를 배우지 못했기에, 어떻게 나눌지 몰랐을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다르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와 저의 부족함을 아들이 닮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좋은 마음을 배우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아버지에게 품었던 부정적인 감정을 아버지 또한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쯤, 아버지께 꼭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길 바랍니다.



추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의 저를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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