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블와이파파 Nov 25. 2024

진짜, 전학 가기 싫었어요.

이사를 자주 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엔 3번 정도 옮겼다. 하지만 그중 정말 싫었던 이사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때였다. 단 한 학기를 남기고 전학을 가야 했다. 이전 학교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좋았던 기억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지금도 기억나는 친구들이 있다. 남자 둘, 여자 둘. 우리 네 명은 몇 년간 같은 반이 되어 정말 친했다. 4 총사라고 불릴 만큼 친밀했다. 나중에 그중 한 여자 친구와 대학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적도 있었다. 잠시의 만남이었지만,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반가웠다.














초등학교 시절은 6학년 1학기와 그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전학 후, 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스스로 마음이 열리지 않기도 했고, 이미 커버린 다른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활달한 성격이었으면 나았을까? 하지만 나는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타고, 주눅이 든 성격이었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도 내게 다가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몇 주 동안은 이전 학교 친구들만 생각했다. 틈만 나면 그리웠다. 한 학기만 더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버스를 타고라도 이전 학교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어린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아버지가 중학교에 가기 전에, 새로운 학교 친구들과 미리 친해지기를 바라셨던 건 아닐까. 아버지 입장에서는 더 좋은 선택이었다고 믿으셨겠지. 하지만 그때 나는 그런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늘 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나를 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혹시라도 지적받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모든 게 아버지 탓 같았다.

나 같은 성향의 아이에게 환경의 변화는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지금도 초등학교를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은 이전 학교에, 힘들었던 기억은 이후 학교에 머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 기억난다. 아버지가 졸업식에 오셨다. 사진 속에는 햇살에 찡그린 내 표정과 그 옆에 서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그날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가끔 두 학교를 찾아가곤 한다. 두 길을 걸으며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르다. 이전 학교는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 학교는 외로움과 적응하지 못했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저는 전학 가기 싫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추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의 저를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전 08화 아버지와 IMF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